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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영어 교사 Oct 05. 2020

내가 보여요? 참 다행이네요 :0

투명인간 by 허버트 조지 웰스

‘무소불위’: 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처리하는 행동이나 권력(두산 백과사전)
‘커뮤니티’: 지연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공동사회. 주민은 공통의 사회 관념, 생활양식, 전통, 공동체 의식을 가진다. (표준 국어 대사전)
Com(함께) +unity(통합)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여러 꿈들 중에는 성인이 되고 난 후엔 차마 말하기가 민망한 것들이 있다.

하늘을 날고 싶다거나 순간이동, 시간여행 등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는 꿈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자들의 몫으로 넘겨주었다.

대학 합격이나 대기업 취업 등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실용적 안정성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사회의 여엿하지만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구성원이 된다.

그러다 가끔 새로 산 셔츠에 빨간 국물이 튀었다거나 직장에서 처치 곤란한 상사와 한바탕 소동을 겪고 나면, 버리지 않고 갖고 있던 은밀한 꿈 하나가 고개를 든다.

‘투명 인간이 되고 싶다’

다른 순수한 꿈들과는 다르게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는 꿈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왜일까? 성인이 된 지금 왜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더 강렬하게 원하는 것일까?
저걸 확 한대 쥐어박아? 콘서트 표가 벌써 매진이라고? 쟤들 내 험담 하는 거 아냐?
법과 질서가 구속하는 평범하고 성실한 개인의 은밀한 욕구는 투명인간을 더욱더 갈구하게 만든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허버트 조지 웰스의 1897년 소설 ‘투명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시작과 끝을 보여 준다. 만화나 영화, 또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투명인간 이야기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은 생각처럼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투명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책은 신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약을 개발하고 그 약을 스스로 먹은 후의 그리핀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책 속에서 사용된 몸이 투명해지는 원리는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허무 맹랑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당시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그 약은 효과가 분명했다.

“나를 투명하게 만든다면 마술을 능가하겠지. 나는 마음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불가시성이 인간에게 의미할 수 있는 모든 것  비밀, 힘, 자유를 상상했어. 바람직하지 못한 결점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지. 생각해 보게. 초라하고 가난에 찌든 내가, 지방 대학에서 바보들을 가르치며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는 내가 갑자기 이렇게 될 수 있다니. 켐프, 자네라면 어떻게 했겠나? 사실은 누구라도 그 연구에 매달렸을 거야.”

만약 내가 투명하게 만드는 약을 개발한다면? 그리고 그 약을 마신 이전으로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면? 잠깐 망설이겠지만 나는 그 약을 마실 것이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기분에 휩싸여, 자 이제 어딜 가서 무엇을 하지? 몸이 근질근질해 춤이라도 췄을 것 같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남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면 누리고 싶은 일들을 그리핀도 충분히 누렸다. 마치 장님들의 도시에 들어간 사람처럼 지나가는 사람의 모자를 뺏기도 하고 찰싹 때려보기도 하면서 은밀한 장난에 빠져 즐거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모처럼 얻은 자유와 환희는 채 10분이 가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불안과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감기의 초기 증세로 코를 훌쩍거리며 천천히 옥스퍼드 가를 달렸지. 등허리에 생긴 멍이 점점 아팠지만, 내가 탄 마차는 토튼햄 코트 가를 지나갔네. 내 기분은 10분 전에 힘차게 밖으로 나왔을 때와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지.

이 불가시성이란 정말! 나는 오로지 이 궁지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네.”

곧 그리핀은 깨달았다. 투명인간도 음식이 필요하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기는커녕 마차를 얻어 탈 수 조차 없었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투명인간의 이점은커녕 남들 눈에 띄는 이상한 괴물이 되고 만다. 조금이라도 음식을 삼키면 완전히 소화되기 전까지 허공에서 떠다니는 음식의 형태가 남게 되는 것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춥고 더러운 날씨와 북적거리는 문명사회의 도시에서 투명 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부자유스럽고 어리석은 짓인지를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네. 이 미친 실험을 하기 전에는 수많은 이점을 꿈꾸었지. 그런데 그날 오후에는 완전히 기대에 어긋난 것처럼 여겨졌다네. 나는 사람이 원하는 것들을 꼽아 보았네. 눈에 보이지 않으면 확실히 그것들을 손에 넣을 수는 있겠지만, 손에 넣은 것을 즐길 수는 없어.”

결국 그리핀은 자신의 몸을 누더기 옷과 붕대로 완전히 가린 후, 싸구려 여관에서 몸을 복구할 방법을 연구한다. 가짜 코를 얼굴에 끼우고 수많은 약병을 방에 늘어놓은 히스테리컬한 손님을 마을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을 리 없었고, 곧 그는 마을 사람들과 대판 싸운 후에 여관에서 도망친다.

“「마음을 진정시켜.」 〈목소리〉가 말했다. 「너는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하니까. 나는 그 일을 시키려고 너를 선택했으니까.」
마블 씨는 볼을 부풀리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나는 너를 선택했어.」 〈목소리〉가 말했다. 「너는 저 밑에 있는 몇몇 얼간이를 빼고는 투명 인간 같은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너는 나를 도와주어야 돼. 도와줘. 그러면 충분히 보답할게. 투명 인간은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다.
「하지만 나를 배신한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여관에서 도망 나온 그리핀은 길거리에서 사회에서 낙오된 마블이라는 구걸꾼을 만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버림을 받은 마블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리핀은 마블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함께 계획을 세워 나가려 한다. 하지만 마블은 돈과 책들을 훔쳐 달아 났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또 한 번 버림받은 자신의 처지에 분노한다.
추운 잉글랜드를 떠나 따뜻한 알제리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리핀이 마지막으로 하룻밤을 쉬기 위해 찾아간 집은 우연히도 예전 대학에서 만나 알고 있던 친구 켐프의 집이었다. 켐프야말로 자신을 믿고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그리핀은 친구에게 그동안의 이야기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털어놓지만, 친구는 몰래 경찰을 불렀다.

“우리는 그의 분노를 다소는 이해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제공한 정보가 그토록 무자비하게 그의 목을 조르는 식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날 그는 의기소침했다. 윅스티드 씨에게 덤벼들었을 때를 제외하고 거의 24시간 동안 그는 사냥꾼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밤에 그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잤을 게 분명하다. 아침에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 활기와 기력을 되찾고, 분노와 악의에 가득 차서 세상과의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핀이 켐프의 집에서 말한 계획은 공포정치였다. 자신을 버리고 심지어 공격한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반응은 끝을 알 수 없는 복수심으로 표출되었다.
한 도시를 점령하고 투명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겁을 준다. 명령에 거역하는 자는 죽임으로써 벌한다. 이를 통해 그리핀은 세상에 단절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자신이 갖고 있는 투명인간의 능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고자 한다.
하지만 켐프는 그런 미친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내 들이닥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후 그리핀은 집을 탈출한다.

마을 사람들도, 세상에 버림받은 거지 마블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친구 켐프의 도움도 얻지 못한 그리핀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힘들어한다. 그리고 홀로 자신의 계획을 시작한다. 우선 켐프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공포정치가 시작되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켐프의 집을 쳐들어가지만 실패하고, 결국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얻어맞는다. 그리핀의 숨이 멎었고 차차 그의 몸의 점점 형태가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제야 괴물이 아닌 한 인간의 모습을 한 그리핀을 마주 한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겠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추악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큼 그런 추악함을 잘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까. 나라면 권력 앞에서 겸손한 모습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며 세상의 질서에 따르는 것들은 나에게 무소불위의 힘이 없기 때문인가? 나라면 그런 식으로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얕은 가식이 아닐까?
내가 속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과 동화를 이루고 교감하며 사는 것이다. 내 몸이 투명하지 않아 그들이 나를 보고 웃고 화를 내기도 하고, 동정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신들과 조상이나 히어로가 아니라 바로 내 주변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괴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내가 보인다니. 정말 멋진 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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