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이 달라지는 메모 습관의 힘(by 신정철)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
2020년이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TV를 잘 보지 않는, 특히 트로트 음악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나도 그의 이름과 얼굴, 노래를 접했을 정도로 무섭게 대중에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내 마음 한 구석에서는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기어 나온다. 전생에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길래 그래? 근데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래?
2002년 로또 복권이 처음 출시가 된 후부터 사람들은 마음속에 1등 당첨이라는 희망이 품었다. 당첨 후의 장밋빛 인생 속 내 모습을 꿈꾸며 매주 신성한 의식처럼 로또를 사던 때가 있었다. 그래 이것만 되면 내 인생은 쫙 필 거야. 문화 기재부 조사에 따르면 한 번이라도 로또를 사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조사 대상자의 62.4%라고 한다. 내 경쟁자들도 만만치 않게 많은 것 같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우연히 길거리 가수 캐스팅에 도전했다. 그 당시 MBC에서 방영한 ‘목표 달성 토요일‘이라는 프로그램의 속 ‘악동 클럽’이라는 코너는 나 포함 모든 초중고 학생들에게 인기 가수가 되는 것을 목표로 만들었다. 그래 내가 한번 해봐? 되기만 하면 공부 이거 왜 해?
20여 년이 지나 어엿하게 직장에 다니고 있는 지금은 출퇴근 길 부동산 창에 붙은 아파트 시세를 습관적으로 들여다본다. 옆동네는 뉴타운에 재개발에 집 값 쭉쭉 오르던데. 딱 두 배만 올라라. 아 다른 데는 몇 억씩 오르는데 우린 뭐야.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주변 사람들은 변해 갔지만, 내 인생은 여전히 닿지 않는 행운의 동아줄만 기다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현재 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자기 개발서들을 읽어 갔다.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을 알아차리면 나도 그런 사람들의 위치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그리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은 책 마지막 장을 덮고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결국 우리가 삶에 의미를 더하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매일의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내 안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길뿐이다. 어차피 범상한 많은 이들의 변화는 점진적이다. 점진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만이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낸다.”
‘일과 삶이 달라지는 메모의 힘’에서 신정철 작가는 ‘메모’라는 도구를 이용한 점진적 인생의 변화를 노리라고 말한다. 인생을 언제까지나 불확실한 운에 맡기고 흘려보낼 수는 없다. 인생을 커다란 물줄기를 타고 흘러가는 배라고 볼 때, 변화를 위한 노는 내 손에 쥐어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는 메모하는 습관이다.
“모든 것을 메모하라.”
하루를 멀리서 보면 매일매일이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나에게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매일 마주하는 동료에게서 괜찮은 정보를 얻은 적도 있고, 버스 광고판에서 본 이미지가 꽤 강렬하게 다가왔던 적들도 있다. 나중에 써먹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필요할 때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기억들. 머리는 믿을 만한 동료가 아니다. 손을 믿어야 한다.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스티브 잡스나 스티븐 킹과 같이 남들이 놀랄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는 나와는 다른 인사이트가 항상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공통적으로 항상 사색하고, 메모하며 자신의 정보량을 늘리고, 어울리지 않는 정보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결실을 만들어 냈다. 다양한 연결에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메모하는 행위로부터 발생한다. 메모가 습관이 되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증가한다.
“메모하고 글 쓰고 공유하라”
내가 가진 정보들을 다양하게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지식은 뿌리를 내린다. 단단한 뿌리는 큰 줄기가 되어 여러 방향으로 뻗어가는 지혜를 낳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물은 다른 사람에게 공유되는 과정을 거쳐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작가는 글쓰기라는 활동을 통해 누구나 지혜라는 성취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얻은 성취를 공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도 덜어줄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도 성장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니, 안 할 이유가 없다.
책을 읽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문체와 사례들을 만나 올해 6월부터 써왔던 개인 ‘독서 일지’를 들여다보았다. 독서 일지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책의 제목, 저자, 읽은 날짜 등을 엑셀에 기록해 둔 것이다. 당시 읽었던 ‘단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는 메모 독서법’이라는 책을 계기로, 그저 읽은 책들을 쭉 습관적으로 기록하다 보니 읽은 권수를 세어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지를 작성하기 전 1년에 5권 남짓 책을 읽던 나에게 독서라는 훌륭한 습관을 만들어 준 독서 일지. 올해 들어 내게 생긴 가장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준 습관이었고, 놀랍게도 ‘메모 습관의 힘’도 같은 저자의 책이었다.
독서 일지를 보다 문득 내 삶에도 크게 드러나 보이진 않지만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긍정적으로.
되돌아보면, 내 인생에도 여러 변곡점들이 있었다. 내 삶을 바꿨던 여러 지점들을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한 채 흘려보냈고,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거나 안심했다. 하지만 이 순간 작은 메모를 통해 그 변곡점 위에 서 있는 내 모습을 확인했고, 부끄럽지만 만족스러워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내게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확실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젠가 더 나아진 내가 지금을 안심하며 돌아볼 수 있게끔 메모라는 노를 놓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