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d hatter [Columbia /SG,1940]
콜롬비아에서 제작한 단편 애니메이션 “Mad hatter “
SNS에서 5분 만에 출근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귀여운 단편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어린 나이 처음 나도 이 영상을 접했었을 땐, 그저 웃어넘겼지만
성인이 된 이후 다시 그 영상을 다시 보았을 때, 그 안에서 웃음보다 훨씬 오래 남는 아주 오래된 고통의 잔향을 볼 수 있었다.
‘Mad Hatter’: 미친 모자장수
19세기 유럽, 모자가 옷처럼 당연한 시대.
펠트를 만들기 위해 양모를 질산수은으로 처리하던 탓에 모자장수들은 매일같이 독성에 노출되었다.
시력이 어두워지고 청력이 흐려지고, 정신은 조금씩 뒤틀리고, 표정은 넋이 나간채로 일그러졌다.
사람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불렀지만, 사실 그들을 미치게 만든 것은 수은이 아니라 구조가 아니었을까?
노동자를 보호하지 않았고, 그들의 병을 질병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하나의 ‘과정’으로 삼았을 뿐이었던 “그 구조”
그래서인지 애니메이션 속 장면들이 유난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갇혀서 모자를 찍어내는 사람들, 서서히 눈빛이 텅 비어 가는 모습, 그렇게 미쳐버린 이들이 만든 모자를 아무렇지 않게 쓰고 환호하는 군중.
그리고 오직 고양이만 그 장면을 보고 몸을 부풀리며 하악질한다.
본능은 알아본다. 그곳에 폭력과 죽음이 섞여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애니메이션이 결국 산업재해를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업이 커지는 동안, 인간의 몸은 너무 쉽게 도구로 바뀌곤 한다. 그리고 그 도구가 닳아버리면 사람들은 그저 새 도구를 찾을 뿐이다.
최근에도 젊은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어떤 죽음은 보도조차 되지 않고, 어떤 고통은 “업무와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말로 단숨에 지워진다.
수은이 아니어도, 인간은 언제든지 구조에 의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목격한다.
특성화고를 막 졸업한 사람들 혹은 생계를 위해 선택권 없이 위험한 현장에 배치되는 사람들.
그들은 보호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현장은 그들에게 기술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목숨을 담보로 ‘경험’을 치러야 하는 자리처럼 보인다.
무엇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자리. 잃고 나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자리.
우리는 이런 죽음 위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한다. 맛있게 먹고, 편리하게 사용하고, 빠른 배송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다쳤는지, 누가 무너졌는지, 누가 잃었는지를 잊는다.
소비는 고통을 가장 조용하게 숨기는 방식이니까.
우리는 비명을 듣지 않아도 되고, 듣지 않는 만큼 더 쉽게 잊을 수 있다.
산업은 이렇게 과거를 반복한다. 그저 피 냄새만 지워지고, 예쁘게 포장되었을 뿐.
방식은 변한 것이 없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우리가 ‘완벽하다’고 말하는 이 제품들. 과연 그 완벽함은 정말 누구의 것인가? 나는 너무 편안하고 멀쩡한 얼굴로 편안함을 누리고 있는데, 그 편안함을 위해 누가 대신 부서졌던 걸까?
“Hats hats hats to the right of us, hats to the left of us. Let’s pause a moment and pay tribute to those unsung heroes, those forgotten men — our hat designers.”
우리가 잊어버린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의 편안함 아래, 우리의 무심함 아래.
그리고 가장 무거운 사실은,
우리는 알면서도 여전히 소비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