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옳을까.
“태어나 서로 다른 몸이 돼서도 탯줄로 이어진 느낌이 들죠.
떨어져 있어도 항상 아이의 존재를 곁에서 느껴요.”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사랑이 반드시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사랑은 따뜻한 감정 이전에 끊을 수 없는 연결에 가깝다.
이미 한 몸이었던 기억, 그 기억이 사라지지 않은 채 삶 전체에 남아 있는 상태.
그래서 선택이라기보다 숙명처럼 보인다.
호나미에게,
마코토에게,
딸이란 존재는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곧 자기 자신이며, 자기 삶의 연장선이다.
사회는 개인을 분리된 존재로 구분하지만,
책 속에서의 모성과 아이는 끝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탯줄은 끊어졌지만, 관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아이를, 딸을, 지킬 것이다. 그러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이 문장은 모성의 숭고함을 말하는 동시에,
그 숭고함이 얼마나 위험한 경계에 서 있는지도 드러낸다.
'무슨 일이든’이라는 말속에는
도덕과 규범, 옳고 그름을 넘어설 가능성이 함께 들어 있다.
사회는 어머니에게 사랑을 요구한다.
헌신적일 것, 희생적일 것, 보호적일 것.
그러나 그 사랑이 사회가 정해둔 선을 넘는 순간,
숭고했던 사랑은 곧 비난의 대상이 된다.
모성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다.
사회가 기대한 어머니의 모습이면서도,
동시에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형태의 사랑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규범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랑.
그렇기에 존경과 경계의 시선을 동시에 받는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느낀 것은,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감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은 때로 개인을 넘어 사회의 질서를 위협하고,
규칙보다 앞서 나가며,
‘옳음’보다 ‘지킴’을 선택하게 만든다.
성모 속 사랑은 묻는다.
과연 사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사회가 정한 규범 앞에서,
우리는 어디까지의 권한을 줄 수 있는가.
그리고 어쩌면 이 질문은
모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믿어온 모든 ‘옳았던 사랑’에 던지는 질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면죄부가 되는 순간은 과연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누군가에겐 이해받을 순 있어도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