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후에 남은 것은 삶이 아닌 공백이었다.
"이미 마음에 자물쇠를 채워 놓았어요. 열쇠는 오라버니가 맡아 두세요."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말,
이 말속에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사랑이 삶의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전제.
하지만 오필리아에게 사랑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던 거의 유일한 축이었다.
오필리아는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인물이다.
그녀의 말은 늘 누군가의 말 뒤에 붙어 있었고,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타인의 판단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조심하라고 말했고, 오빠는 그녀의 감정을 경계했고, 연인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을 지키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도 온전히 자신을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햄릿에게 사랑이란 복수와 사유 사이에서 언제든 미뤄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사랑은 중요한 감정이었겠지만 존재를 지탱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을 밀어내고도 언어를 붙잡을 수 있었고,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고, 비극 속에서도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달랐다. 그녀에게 사랑은 관계이자 정체성이었고,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증거에 가까웠다.
사랑받는 딸, 사랑하는 연인, 누군가의 기대 안에서만 규정되던 그녀는 그 기대들이 동시에 무너졌을 때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단순한 상실이 아닌 보호의 붕괴였고, 세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햄릿의 태도는 그 붕괴를 붙잡아 줄 마지막 손마저 없애버렸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격렬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논리를 세우지 않으며,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노래한다. 의미를 잃은 말들을 흘리고, 끊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반복한다.
그것은 광기라기보다 언어가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때 감정이 택한 마지막 방식처럼 느껴진다.
사랑이 끝난 뒤, 오필리아에게 남은 것은 삶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갈 이유도, 되돌아갈 자리도 사라진 뒤 그녀 앞에 펼쳐진 것은 텅 빈 시간, 공백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공백 속으로 사라진다. 저항 없이, 설명 없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오필리아의 죽음은 사랑의 실패라기보다 사랑 이후를 살아갈 수 없는, 한 인간의 조용한 소멸에 가깝다 느껴졌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문장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 말고도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오필리아에게는 그 ‘다른 무언가’가 없었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삶이 아니라,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