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이후에 남은 것들 - 햄릿

사랑 이후에 남은 것은 삶이 아닌 공백이었다.

by 유진


출처: 구글



"이미 마음에 자물쇠를 채워 놓았어요. 열쇠는 오라버니가 맡아 두세요."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말,

이 말속에는 전제가 하나 숨어 있다.
사랑이 삶의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전제.


하지만 오필리아에게 사랑은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던 거의 유일한 축이었다.


오필리아는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갖지 못한 인물이다.


그녀의 말은 늘 누군가의 말 뒤에 붙어 있었고,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타인의 판단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조심하라고 말했고,
오빠는 그녀의 감정을 경계했고,
연인은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 사랑을 지키지 않았다.


그녀는 한 번도
온전히 자신을 말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햄릿에게 사랑이란 복수와 사유 사이에서 언제든 미뤄질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게도 사랑은 중요한 감정이었겠지만
존재를 지탱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사랑을 밀어내고도
언어를 붙잡을 수 있었고,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고,
비극 속에서도 본인의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달랐다.
그녀에게 사랑은 관계이자 정체성이었고,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증거에 가까웠다.


사랑받는 딸,
사랑하는 연인,
누군가의 기대 안에서만 규정되던 그녀는
그 기대들이 동시에 무너졌을 때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아버지의 죽음은 그녀에게 단순한 상실이 아닌 보호의 붕괴였고,
세계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햄릿의 태도는
그 붕괴를 붙잡아 줄 마지막 손마저 없애버렸다.


그래서 오필리아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무너짐은 격렬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
논리를 세우지 않으며,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대신 노래한다.
의미를 잃은 말들을 흘리고,
끊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반복한다.


그것은 광기라기보다
언어가 더 이상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때
감정이 택한 마지막 방식처럼 느껴진다.


사랑이 끝난 뒤,
오필리아에게 남은 것은 삶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아갈 이유도,
되돌아갈 자리도 사라진 뒤
그녀 앞에 펼쳐진 것은
텅 빈 시간, 공백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공백 속으로 사라진다.
저항 없이, 설명 없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오필리아의 죽음은
사랑의 실패라기보다
사랑 이후를 살아갈 수 없는,
한 인간의 조용한 소멸에 가깝다 느껴졌다.


우리는 흔히
사랑이 끝나도 삶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문장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 말고도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오필리아에게는
그 ‘다른 무언가’가 없었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삶이 아니라,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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