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진짜로 원했던 것은?

- <강구바이 카티아와디> 보고 난 후

by 유진
사진 출처: 구글


이 영화는 강구바이라는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사회가 얼마나 쉽게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배우라는 꿈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던 강구바이.

꿈이 많은 순수한 소녀가 마피아퀸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차가운 세상 속에 스스로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권리’


참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였다.


영화 도입부를 보며,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게 왜 집을 나갔대?” “본인이 선택한 거 아니야?”


현실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누가 옷을 그렇게 입으래?” “밤에 돌아다니니 범죄를 당한 거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말의 무게를 알아야 한다.

피해자를 향한 질문은 곧 책임을 전가하는 말로 바뀐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2차 가해자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에선 강구바이의 사랑하는 애인은 그녀를 속여 사창가에 팔아버린다.


카마티푸라.


그곳엔 같은 처지의 여성들이 가득하다.

누구는 부모가, 누구는 남편이, 누구는 애인이 또 누구는 친척이.

대부분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오게 되었고, 더 이상 돌아갈 곳조차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강구바이는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사창가 여성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운다.



모순적이게도 영화의 배경인 인도는 실제로 여성과 관련된 신이 매우 많다. 정작 현실 속 여성들은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영화 속 강구바이는 먹고 살기 위해서 ‘성매매 합법화‘에 특히 힘을 들이지만, 사회에선 이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탄압하며 규제하며 또 비난한다.


이에 강구바이는 절규하듯 대규모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매매를 합법화해야 해요. 봐요, 우리가 있으니까 사회가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고 있잖아요.”


자신들의 존재 덕분에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마치 어쩌면 누군가가 희생해야지만 사회가 유지된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강구바이의 연설을 들으며 의문이 들었다.


성매매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실제로 성매매 합법화는 종종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합법화에 찬성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부분 성매매를 규제해도 어차피 암암리에 존재하기에 차라리 합법화해서 세금을 걷는 등 제도 안으로 들여 통제하면 국가발전에 기여될 것 같다고 한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해결책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성매매가 합법화된다고 보자.

분명 위와 같은 장점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단점 또한 명확하다.


예컨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경력단절이 된 여성에게 국가가 합법이라는 명목하에 '성매매'를 직업으로 제시한다면?

즉, 국민을 지켜야 할 국가가 포주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매매 시장은 점차 레드오션이 되고, 범죄가 줄어든다는 기대감과 반대로 인신매매, 성 착취, 청소년 유입등 2차 범죄가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는가.


무엇보다 무서운 건, 여성이 상품이 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여성들까지도 성적 대상화라는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결국 성매매 합법화는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권리를 축소시키는 억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성매매를 합법화한 독일,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오히려 인신매매, 성 착취, 청소년 유입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보고도 있다.

즉, 성 산업이 제도화되면서 성이 상품화되고, 여성의 몸에 값이 매겨지게 되며 국가가 이를 방관하고 나아가 추진하는 순간 여성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소비가 가능한 자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강구바이가 말한 ‘합법화’는 어쩌면 우리와 같은 조건 속에서 선택한 것이 아닌,

그녀와 그녀의 또 다른 가족들을 살리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녀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몸을 팔았지만, 결코 존엄성까지 팔지는 않았다.

즉, 그녀들은 죄를 지은 것이 아닌,

죄를 지은 사회 속에서 살아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엔 선택할 자유조차 없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이는 걸로만 그들의 삶을 판단하기 전, 우리가 가진 게 어쩌면 특권이 아니었을지 돌아봐야 한다.


영화에서 강구바이와 그녀의 동료들이 외친 것은 단 하나였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존엄하게 살 권리를 찾을 거예요.”

어쩌면 그녀들이 요구한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닌
단지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최소한의 권리 아닐까?


“어느 사람이 찾아오든 우리는 비난하지 않고, 똑같은 값을 받아요. 그런데 당신들은 왜 우리를 비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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