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아 친구와 이별한 날

[일간 이빛소금 / 이야기] 2026.01.15. 木

by 이빛소금

요즘 내가 어떤 말을 생각하고 내뱉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니, “귀찮아”라는 말을 거의 습관처럼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귀찮고, 밥 챙겨 먹는 것도 귀찮고, 나갈 준비하는 것도 귀찮고, 심지어 자리를 옮기는 일조차 귀찮다고 말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 번뜩, 이 친구랑은 이제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귀찮아 친구’와는 헤어지고 ‘그냥 하자’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겠다고 말이다. 그 결심을 하고 바로 사소한 시험이 찾아왔다. 글을 쓰려고 카페에 앉았는데, 하필 앉은 자리가 문 옆 긴 테이블이어서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영하의 겨울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와 손이 계속 차가웠다. 따뜻해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노트북에 키보드, 가방에 노트에 책까지 짐이 한가득이었고, 이걸 다 챙겨서 다시 자리를 찾고 옮기는 과정이 너무 귀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냥 귀찮아하며 앉아 있었다. 추워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응? 나 방금 귀찮아 친구랑 이별했잖아.’ ‘에이, 그냥 하자.’ 생각을 끝내자마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카페 안쪽으로 가 햇볕이 드는 쪽에 마침 빈자리가 하나 있는 걸 봐두고 돌아왔다. 노트북을 덮고, 거치대를 개고, 짐을 가방에 넣어 메고 들어 다시 앉았다. 앉고 나서야 알았다. 왜 진작 하지 않았는지, 아니 왜 늘 이렇게까지 미루고 있었는지. 따뜻했고, 조용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었던 이유는 늘 내 옆에서 “그냥 참아도 되잖아”라고 귀에 속삭이던 ‘귀찮아 친구’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언제나 불편한 자리에 나를 붙잡아 두는 데 능숙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굳이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고 속삭인다. 하지만 ‘그냥 하자’ 친구는 다르다. 귀찮아도 그냥 해보라고, 하면 끝난다고 말한다. 자리를 옮기는 데 걸린 시간은 3분도 되지 않았지만, 그 3분 덕분에 나는 따뜻하고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이상할 정도로 내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아서 미뤄왔던 일들, 귀찮아서 넘겼던 매일의 글쓰기, 귀찮아서 안 했던 수많은 작은 선택들. 그중 하나라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귀찮아 친구는 내 인생을 늘 춥고 불편한 자리에 앉혀 두었고, 그냥 하자 친구는 나를 그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그 결심 이후에도 귀찮아 친구는 끊임없이 찾아올 거다.


오늘은 좀 더 자도 되지 않겠냐고, 귀찮으면 미뤄도 되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전처럼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까짓 거, 그냥 하자.”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몸을 깨워 나갈 준비를 한다. 자리를 옮겨 노트북을 켜고, 쓰기 시작한다. 진작 이별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차린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어제는 글을 다 쓰고 독서모임에서 받은 컬처랜드 상품권으로 영화 〈아바타 3 불과 재〉를 보려고 했다. 결제가 계속 오류가 나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도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그냥 귀찮아하고 포기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한 번 더 말했다. “그냥 하자” 방법을 강구했고, 바코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걸 알아냈다. 직접 롯데시네마에 가서 결제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아바타 2는 못 보고 1만 봤지만, 상관없이 강력 추천이다. 끝장나는 영화다)


귀찮아 친구와 이별하고, 그냥 하자 친구와 함께하니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하루가 꽤 근사해졌다. 당신 옆에도 귀찮아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가 당신을 계속 불편한 자리에 앉혀두고 있다면, 오늘은 한 번쯤 이렇게 말해봐도 좋겠다. “그냥 하자.” 자리 하나 옮기는 데는 3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3분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꿀지 누가 알겠는가.


- 끝 -


[일간 이빛소금 / 이야기 ] 2026.01.15. 木 : 귀찮아 친구와 이별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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