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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헌 Oct 07. 2015

태연의 완성

[SCIOLIST대중음악리뷰] 태연,I-The1stMiniAlbum

태연의 “I”는 보아의 여러 노래를 생각나게 한다. “I see me”나 “Fly,” 또는 처음으로 전체 프로듀싱을 직접 했던 일본 7집 “IDENTITY”의 첫 트랙 “This is who I am.” 이 곡들의 공통점은 보아가 직접 곡을 쓰고 가사를 붙였거나, 최소한 작사를 했다는 점이고, 그 가사가 자신의 전체를(정체를?) 돌아보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보아가 자신의 삶을 정의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 고독,이다. 가사는 물론 인터뷰 등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얘기다. 터무니 없이 어린 나이로 이국에서 지칠 때까지 춤추고 노래하던 시간. 일본어를 배우며 가장 와닿아서 얼떨결에 처음 외운 한자는 淚.


‘아이돌이 아닌 아티스트로 거듭 난 스타가 자신의 전부를 한 곡에 담아낸다,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뭉쳐져 온 고독까지도 내면의 성숙과 예술적 능력을 통해 찬연한 색으로 풀어내어 당신들에게 다시 전한다, 이 아티스트의 성장을 보라!’ 라는 식의 기획은 SM이 즐겨 쓰는 흔한 아이템인지 몰라도 그게 매번 다른 데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소 작위적일지 몰라도) 감동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실험적인, 절제된, 강한

태연의 경우에는 가사뿐만이 아니라 그간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곡을 선택했고, 심지어 그 곡이 대중성이 아슬아슬하게 부족한 실험적인 곡(몹시 세련되고, 따라서 당연히 낯설게 느껴지는 곡, 다시, 그래서 아름다운 곡)이라는 점이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갖는 비장미를 극대화한다. 곡이 끝에 가까워짐에 따라 웅장한 느낌의 코러스는 차츰 더 부각되어 가는데, 절대 전면으로 등장하지 않는 확실한 절제는 이 곡의 철학에 부합한다. 


버벌진트의 랩은 자칫 허전할 수 있는 부분을 채워준다. 그의 등장은 태연의 곡 속에서 타인의 목소리로 “strong girl”이라는 단적인 정의를 제시함으로써 태연이 확립하고자 한 것, 그리고 이 곡의 정체성에 못을 박기 위함이다. 



 '아득했던 나'로부터 '온 밤하늘을 채우는' 당신에게로


아직 2번 트랙의 “UR”까지밖에 들어보지 못했는데, 이 곡은 곡 자체가 무겁게 아름답고, 태연은 아무리 정교한 곡이라도 곡을 이기지 못하거나 곡에 눌리는 법이 없으니, 이번에도 역시 입체적으로 잘 표현해내었다. “I”를 타이틀로, “UR”를 커플링곡으로 한 싱글이라고 가정할 때, 한 곡은 내면으로, 다음 곡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어찌 보면 다소 키치한 균형을 이루는, 혹자는 '그 어떤 작위의 세계, 라는 소설 제목이 떠오른다'라며 빈정거릴지도 모르지만 '좀 작위적이면 어떠랴 이렇게 완성될 수만 있다면' 싶을 정도로, “완벽한” 프로듀싱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을 이어 들으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작은 빛을 따라서
아득했던 날
저 멀리 보내고
찬란하게 날아가


난 다시 떠올라



"I"는 무언가와 싸워오느라 내내 이를 악물고 있던 자아를 헤집고, "움츠렸던 시간 / 모두 모아 다 삼켜내"고, 그 뒤에 "Life is beautiful"이라는 중립적인 긍정도 아니라 "My life is a beauty"라는, 무려 명사로, 한 줌으로 정의내려버릴 만큼의 확신으로 고개를 들고, 이렇게 다시 자기의 밖으로 향하는 단단한 문을 기꺼이 직면한다. 자아에의 천착에서 타인에 대한 진심으로, 자신의 심연에서 세계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성장과 완성이 갖추어야 할 첫째 속성이다. "My life is 'the' beauty," 혹은 "the right way"라는 미숙한 오만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그러나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 없이, 정말 단 한 번의 자조도 없이, 길마다 규칙 없이 섞여드는 수많은 삶의 방식이 만드는 색채의 휘감김 속에서,  내가 구축해 나아가고 있는 것 또한 조화의 미학을 갖춘 안온하게 아름다운 것임을, 그러나 동시에 "나만의" 것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충분히 독창적인 것임을 확신하게 될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리고 실은 그보다, 1번 트랙의 노래를 끝낸다고 해도 트랙을 건너 "내게 내린 빛과" "너무 고운 꿈"인 당신에게 갈 수 있을 것인가, 언제쯤 다시. 그러다 보면 나는 아직 "아득했던 나"를 가진 "어제" 속에 속해있구나 결론짓고, 해체되는 의식을 다시 음에 의지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대로, 태연의 가창력은 그룹 속에 묻혀만 있기에는 아까운 것이었고, 혼자만의 아우라를 마음껏 일렁이게 할 수 있는 이런 기회가, 이런 곡이 그녀에게 꼭 필요했고, 또 그게 그녀에게 주어진 것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홀로서기"나 "첫 걸음"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색하다. 이 앨범은 태연의 시작이기에 앞서, 태연의 완성이다.


태연, "I - The 1st Mini Album" 
2015.10.07
S.M. Entertainment


글: 감정과잉현학리뷰 SCIOLIST
사진: 태연 인스타그램 / 네이버 뮤직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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