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의 조울 사이클과 5번의 이직
1. 콜센터
콜센터에서는 교육을 5일 간 진행했는데 나는 첫 날도 아닌 마지막 교육날 '못하겠다'라고 말하고 일을 그만뒀다. 교육을 받는 내내 ADHD가 있는 나는 일단 그 지루한 강의를 듣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예를 들면 전화가 울리면 A버튼을 누르고 고객에게 B라는 인사말을 한 뒤 C 버튼을 누르라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보면 단순하고 쉽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물론 교육을 해주시는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주의력 부족과 충동성이 말썽을 일으켰다. 일단 강의를 듣지 않았고 강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건 실전에서 한번 해보는 게 더 빨리 배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은데. 꼭 이렇게 1시간을 들여서 설명을 들어야 하나?.', '강의 내에 반복적으로 무의미한 내용이 많은 것 같다.' 등등 정말 내 입을 꿰매고 싶을 정도의 말들이 튀어나왔다. 거기에 더해 고객을 실제로 마주하는 교육에 들어가니 아니 눈에 훤히 보이는 버튼을 못 눌러서 전화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걸 해결해 주는 것에서 성취감을 얻기보다 화병을 얻었다.
그렇게 교육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둥, 고객들의 획일화된 문의를 그냥 AI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처리해야 한다는 둥의 주장을 5일 내내 하다가 나는 콜센터를 그만뒀다. (사실 그쪽도 내가 그러길 바란 것 같다.) 처음 콜센터에 들어간 것도 당장 돈이 급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일을 준비하는데 저녁에 일할 수 있는 시간대 중 가장 나은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큰 오산이었고 교육을 하는 분들의 입장도 황당했겠지만, 타인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어줘야 하는 이 직업이 나에게는 정말 안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시험감독
그다음으로 한 것은 시험감독 일이었다. 이것은 꽤 쉬웠다. 정말 성인들의 자격증 시험 등을 감독하면 되는 일이었다. 2~3시간 정도 꼼짝하지 않고 허공을 응시하는 것. 그게 이 일이 관건이었다. 물론 시험 감독을 한다고 하지만 시험 시간이 1시간이 지나면 커닝을 하는 사람도 없고 그럴 기미가 보이는 사람도 이미 걸러지는 시간이다. 그 뒤는 나 혼자 고독한 싸움이 시작된다.
ADHD에게 가장 최악의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다. 특히 시험감독은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가 수험생에게 감독관 때문에 집중이 안 되었다 혹은 감독관이 부산스러웠다는 등의 주의를 받기 십상이다. 그러니 가만히 석상처럼 있는 것이 이 일의 핵심이다. 그래도 ADHD 약을 먹어 집중하고 과잉행동을 하는 것은 잡아줘 시험감독 일을 하는 것은 쉬웠지만 돈이 되지 않았다. 시험은 비정기적으로 열렸고 지속적인 수익을 원하는 내겐 이 일이 적합하지 않았다.
3. 대형마트
대형마트의 경우 몸을 쓴다는 점에서 사무직처럼 앉아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았다. 나는 마트 뒤편에서 PB용 식품을 만드는 일을 담당했었다. 여기도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마트이니 몸은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음식을 만들고 포장하고 하는 단순한 일이 오히려 속이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도 잠시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매일 보는 사람들 간의 대화가 이제는 할 말이 없고 내게 큰 자극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간 일을 하고 마트 일은 그만두었다. 마치 내가 대기업의 가장 밑에 있는 부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무직
사무직일은 좀 다른 사무직 일이었다. 그냥 일반 행정이나 경리 일이 아니라 날것의 데이터를 각색하고 정리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니 회사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회사의 분위기 자체가 자유로웠고 일을 시킬 때 모든 사람들이 메신저로만 소통을 했다. 회사는 음악이 틀어져 있었고 중앙에 간식바가 있어 출출할 때면 과자나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칼퇴근을 시켜줬다. 물론 아르바이트니 당연하긴 하지만 아르바이트라도 칼퇴를 시켜주지 않는 곳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부분도 높은 점수를 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에 드는 회사를 왜 나왔느냐 묻는다면 사실은 잘렸다. 나는 객관적으로 날것의 데이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있어도 그것을 정리하고 포장하는 일은 쥐약이었다.
데이터를 분야나 형식에 맞게 정리하는 것을 난 정말 못했다. 나도 인정한다. 내 실력이 형편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회사도 그런 내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2주 만에 해고 통보를 했다. 지금도 내 책상을 보면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 물건들이 서랍 어딘가 들어가 있지만 체계나 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쑤셔 넣고 위에만 깔끔해 보이면 된다는 게 나의 정리 철학이다.
게다가 메신저로 일을 하는 것은 좋았지만 모든 것을 서면으로 남기고 그 서면을 확인하면서 일해야 한다는 게 나에게는 어려웠다. 고백하자면 난 글을 잘 읽지 못한다. 글자를 못 읽는 게 아니라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고 어찌 보면 난독증일 수도 있다. 중요한 내용을 강조해주지 않거나 지금의 나처럼 줄글로만 글을 쓰는 경우 급 피로감을 느끼며 글자들이 삐죽빼죽 돌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다:)
5. 카페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은 카페 일이다. 카페에서 혼자 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실수도 많고 우당탕탕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그런지 실수들이 많이 줄었다. 카페에서 혼자 일하면서 느낀 것은 나에겐 유능한 비서나 서포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의 성향 또는 재능(?)상 무슨 일을 시작하고 추진하는 것은 잘한다. 예를 들면 음료는 빠르게 잘 만든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에서 놓치는 것들이 많다. 예컨대, 일정이나 주문확인, 손님응대 등이 있다.
그런데 혼자서 모든 일을 하려니 멀티태스킹 능력이 필요한 카페 일은 나에겐 좀 버거운 일이었다. 물론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까지 한 일 중에선 5개월로 가장 길게 일을 했던 일이기도 했다. 만약 그 사건이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카페라는 장소는 걸러지지 않은 사람들을 무작위로 만나게 된다. 지금 온 이 손님이 친절한 사람인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아니면 화가 난 상태로 카페에 온 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그를 응대하고 음료를 준 다음 빨리 카페에서 내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느 날은 화가 잔뜩 난 사람이 카페에 와선 소리를 지르고 폭언했다. 그날 나는 공황증상을 겪었고 그 사람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채로 30분을 버텨야 했다. 그날로 나는 카페에서 아니 무작위로 사람을 만나는 일은 반드시 피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