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끝내주는 2박 3일간의 정선
다른 사람들은 쉬는 여름 동안, 너무 바쁘고 힘들었다.
그간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고, 방한 인사가 와서 한 일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주요 인사가 다녀가는데 뒤치다꺼리를 해주었고, 그러면 끝인 줄 알았는데 끝도 없이 일은 잘만 생겼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쯤, 미리 잡아둔 짧은 3일간의 여름휴가가 드디어 왔다.
첫째 날은 키아프/프리즈를 다녀왔다. 언니덕에 줄 없이 들어가서 하루 온종일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선물 같은 그림도 받았고,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림을 보았다. 밤에는 삼청나잇에 가서 공예미술관, 아트선재 토크를 듣고, 경복궁 쪽으로 넘어가 와인까지 얻어서 길에서 마시다 왔다. 그야말로 그림을 위한 축제, 이런 축제를 이곳에서 즐길 수 있다니 그저 행복한 하루였다. 사고 싶은 그림도 생겼고. 조금 취했지만 집에 와서 1시까지 자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를 위로해 주었다. 잠이 안 오는 건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다음 날.
가족 여행을 왔다. 정선이라는 곳은 처음이기도 하고 가족 여행도 오랜만이어서 그런 걸까?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보낸 2박 3일은 올해 최고의 시간이었다. 특별히 뭘 한 것도 아니고 목요일 오후에 급식 후 서울에서 출발해서 느지막이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푸르고는 바로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는 폼롤러 수업을 듣고 수영장으로 갔는데, 산으로 둘러싸인 수영장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해가 질 무렵까지 놀다가 씻고 다시 수영장 앞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더니 이미 해는 지고 깜깜한 밤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아직은 여름 같은 9월의 밤
맥주를 한잔 하니 세상만사 근심걱정 모두 잊고, 왜 우리네 아버지들이 자연인이고 싶어 하셨는지 알 것 같은 분위기의 밤
아이들을 채근해서 불을 끄고 온 가족이 모두 9시에 잠들어버렸다.
곤히 자는 아이들. 밤. 구름이 가득한 밤. 밤. 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창밖으로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 헐렁헐렁 느릿한 춤을 추고 있다. 느리고도 가느다란 춤을
남편은 이끼계곡에 가본다며 나갔고, 나는 아침 밸런싱 수업을 들으러 갔다. 모든 수업은 내 몸에 집중하기라는 컨셉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내 몸의 구석구석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다시 수영장. 배는 고팠지만 늦은 아점을 먹기로 했으니 참고 놀아보는데 이제 제법 적응한 어린이들은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둘이서도 너무 잘 논다. 나는 그저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볼 뿐.
밥은 그곳의 뷔페에서 먹었는데… 산나물 비빔밥에 맘을 빼앗기고, 크로아상과 스크램블 에그로 또 맘을 빼앗기고, 당근주스로 마지막 내 맘을 주고 왔다. 이 산나물을 어쩔 것인가… 그저 감탄만 나왔던 메뉴. 같이 오신 분들은 고기와 스시가 없다며 투덜투덜 댔으나, 없는 편이 더 명확한 컨셉이라 좋았다.
점심을 먹고 케이블카를 타러 가려고 하는데, 탁구를 쳐보자고 해서 탁구를 치러 갔다. 왕년에 탁구부였던지라 탁구가 너무나 재미있었으나, 작은 어린이가 나를 놓아주지 않아 피아노를 치러 갔다. 그곳에서 5살 어린이의 도레미 연주를 들으며 탁구 시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산 할아버지들의 구름모자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스키장을 활용해서 더 경사가 높게 느껴진 케이블카를 타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그리고 상품권을 받아서 아이들은 정선 캐릭터 키링과 인형까지 하나씩 손에 들었다. 다시 돌아와 수영가기 전 떡치기 체험이 있어서 해보았다. 작은 어린이는 쑥쓰럽다더니 타고난 팔근육으로 최고의 떡 치기를 보여주었다. 인절미 간식 후 또 수영.
이번에는 남편이 듀오볼 수업을 들었고, 나는 자쿠지에 들어가 산을 보고, 아이들과 놀고, 또 산을 보고, 아이들을 보았다.
여전히 날씨는 흐렸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안 나오겠다는 아이들을 겨우 데리고 나와 씻기고 나는 사우나를 갔다.
사우나에서 바라본 산. 그냥 누워서 보고 또 바라보았다. 산은 왜 나에게 이렇게도 고마운 존재일까.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또 같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점심에 비빔밥을 너무 많이 먹어(코끼리도 풀만 먹는다고 했던가… 맥주만 마시려고 했으나… 감튀와 기본 빵은 못 참지.
밤에 또 탁구를 치고, 이번에는 작은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해서 그림방에 가서 색칠놀이를 했다. 아이는 한 시간을 꼬박 그림만 그렸다. 나도 옆에서 끄적여보았다. 별은 오늘도 보이지 않았다. 또 밤. 밤. 새까만 밤.
다시 아침, 눈을 뜨니 창 밖으로 구름이 너울대는 풍경이 보였다. 레몬티를 한잔 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림을 그리려고 해 봤고 글을 써보려고도 했는데, 그 무엇도 이 기분을 담지는 못했다. 그저. 내가 바라보는 풍경에 감사할 뿐. 아침에 아이들 준비를 마치고 나는 밸런싱 수업을 들었다. 모든 수업은 하나로 통한다. 내 몸을 더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남편이 아이들과 수영장에 간 사이, 나는 짐을 싸다가… 컵을 깼다. 방을 4번 정도 쓸어 담고 나니 마지막 명상 수업이 있어서 부랴부랴 뛰어갔다. 내가 평소에도 좋아하는 수면 명상이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편안한 호흡을 하며 잠을 자는 시간. 그렇게 나는 깨진 컵을 잊었다.
체크아웃 후 또 같은 뷔페에서 아점을 먹고, 요거트/쥬스 - 산나물 비빔밥(한식) - 크로아상과 스크램블 에그(브런치식) & 커피 - 연어 몇점과 구운 야채 - 빵과 커피와 과일 을 깨알같이 먹고 나왔다. 날이 좀 맑아졌길래 케이블카를 다시 탔고,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졌지만, 구름모자는 완전히 걷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매일 매일 변하는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오늘의 상품권 사용은 건조 곤드레
돌아와서 탁구를 한 판 더치고 집으로 향했다. 4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레드불덕분에 잠을 잊은 남편이 집까지 안전운전을 해주었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산에게. 그리고 꺠알같은 시간을 보내게 해준 숙소에게. 그리고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준 우리 가족에게. 이번 여행에 수업과 사우나는 모두 16세 이상이었기 때문에, 다음에 큰 어린이가 16세가 되면 꼭 다시 오겠다고 했다. 사우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어린이라서.
수백 장의 사진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내일이 오는 아쉬움이 더 큰 짧은 휴가의 마지막 일요일.
아직 여름이지만 벌써 선선한 바람
나무의 다양한 모습
수컷 사마귀와 암컷 사마귀의 조우
수영 후 수영 후 또 수영
사우나에서 바라보는 고요한 평화
드뷔시
풀벌레
밤, 구름
밤에 마시는 맥주
인절미 떡치기도 잊을 수 없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