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순간에서 최고를

결심

그것은 바로 잔인한 장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같은 반 친구들은 전반적으로 <스승의 은혜>, <아저씨> 같은 총 쏘고 피 튀기는 영화를 재미있다며 보는데 나는 그게 무서웠다. 반에서 혼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푹 숙이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원빈에게 흑심이 있어서 올린 사진은 아니다. (쿨럭..) 역시, 두 영화를 검색해보니 둘 다 청소년 관람불가다. 에잇, 그럼 그렇지! 이렇게 잔인한 영화들을 보며 무서워한 나는 이상한 게 아니었어. 이미지 전체보기를 하면 피투성이야! 하루에도 수없이 '진짜 피'를 보며 사는 지금 봐도 무섭다.


간호사를 직업으로 삼으려면 좋으나 싫으나 피를 봐야 하고, 갖은 상처들을 관찰해야 할 텐데..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만 들었다.


나의 이런 상황을 알아차리고는-간호사가 되겠다는 내 말을 들은-친한 친구 N이 전화를 걸어왔다.


"현아.. 너 무서운 거 못 보잖아..."

".. 그렇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

".. 응."



어머니께 고민을 털어놨다. 나는 징그러운 것들 못 본다고. 빨간 피가 무섭다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배우다 보면 자연스레 괜찮아질 거라 말씀하셨다.


반신반의했지만 생각해보니 그럴듯했다. 영화에 나오는 그런 장면들은 극적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일부러 자극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수술방 간호사들은 수술을 마친 후에도 바로 밥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비위가 강하다고 한다. 그들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위 말해서 먹고살려면(혹은 더 큰 꿈을 이루려면) 바뀔 수밖에 없었겠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환자를 돌봐서 회복시키는 간호사의 역할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이었다. 상처가 징그럽다니 무섭니 뭐니 하며 걱정만 하는 것은 건설적이지 않은 마음가짐이고, 열심히 일하는 분들과 환자들에 대한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부족했다. 인생이 걸린 일이니 신중해야 했다.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간호과에 진학하지 않으면 무슨 과를 가야 할까?'

나는 생각이 많고, 그러한 생각을 글로 풀어쓰는 것을 좋아한다. 윤리와 사상 과목 역시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할 뿐,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다. 윤리 수능 점수가 높은 편도 아니다. 졸업한 후에 글로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인 질문의 끝은 어두운 안개 같은 미래뿐이었다.


반면 간호과는 평생 기술이고, 실생활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도 동시에 할 수 있다.


간호과에 도전해보자.

기술도 배우고, 직업적 성취도 이뤄보자.

대학에 입학하게 되면 고등학교 때 놀았던 만큼 열심히 해 보자.

이왕 사는 김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보자.


마침내 잡념은 사라졌다. 오로지 간호과 합격을 위해 고군분투하기로 마음먹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게 힘이 되어주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