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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어느 봄날, 내 일상의 전부였던 소년

꿈을 향해 무어라도 해 보는 자세

 열일곱 소년은 아버지의 낡은 기타가 눈에 띄어 혼자 연주했다.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고, 기타를 독학하기에 이른다. 소년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많은 집 중 한 곳에 살았다. 부시럭거리는 소리도 옆집에 들리는지라 집에서 음악을 하기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옥상, 공원에 가서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기타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어요. 지금도 기운 없어 보이고, 졸려보이는데 그때는 더 그랬어요.


 자유롭고 재미있게 노래하고 싶다는 소년은 전국 단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심사위원 앞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자작곡을 불렀다. 5평이라도 좋으니 내가 마음껏 노래할 수 있게 이사 가게 해달라는, 엄마를 설득하는 내용이였다.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은 소년을 극찬했다. 박진영은 “이건 진짜야. 완전 자기 이야기에요.” 라고 말했다. 유희열은 소년을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소년은 Top 10에 들었다. 부산에서 혼자 음악하던 소년은 ‘싱어송라이터’ 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소년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다시 나왔다. 바로 <프로듀스 101 시즌 2>이다(이하 프듀). 프듀는 소년이 좋아하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할 수 있는 음악과는 거리가 먼 곳이였다. 철저한 합숙 생활을 기반으로, 연습생들끼리 경연을 펼쳐 방출자를 가린다. 최종으로 아이돌 데뷔조 11명을 뽑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프듀 1화, 연습생의 정의를 말할 때 소년은 이렇게 적었다.

연습생이란, 요동치는 파도.

오디션에 잔뼈가 굵은 소년도 연습생 생활이 상당히 힘들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보아 대표는 싱어송라이터인 소년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돌직구를 던졌다.

소년의 대답은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처음에는 그냥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요, 나중에 큰 꿈은 기획사 사장이거든요.


 그래서 나중에는 춤도 춰 보고, 노래도 해보고 작사 작곡도 해보고 하면 좀 더 꿈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소년은 3년 사이에 무척 많이 자랐다. 우선, 얼굴이 성숙해졌다. 키도 많이 컸다. 음악을 배우기 위해 서울공연예술학교로 전학을 갔다. 실기 우수상도 받았다. 기획사도 생겨 체계적으로 음악을 배웠다. 거기다가 260:1의 경쟁력을 자랑한다는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학생이 됐다. 시나브로 가수라는 장래희망을 실현시켜나갈 단계를 밟았다.


하지만 생각 자체가 깊고 넓어진 게 가장 인상적이였다. 음악을 하기 전에는 생각 없이 살았다고 말했던 때가 얹그제 같은데, 이제는 소속사 대표가 되고 싶다며 당당히 자신의 꿈을 알린다. 쑥스러운 표정은 여전했다. 하지만 눈빛은 매우 또렷했다. 야망 그 자체였다.


 보아 대표의 걱정어린 눈빛은 대중의 시선과 통했다. 아이돌 데뷔조를 뽑는 프로그램에서 싱어송라이터가 과연 잘 해낼까? 라고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오산이였다.


이승기를 닮은 호감형 외모, 검증된 노래 실력에 춤까지 잘 춘다. 오죽하면 김동현 연습생이 ‘되게 삐그덕 거리게 생겼는데, 곧잘 춤도 잘 춥니다.’ 라고 말했을까. A~F등급 중에서 B등급으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검증받았으며(등급 평가는 매우 깐깐하게 진행되었다), 조 평가 1위의 성적도 거두었다. 포뇨라는 귀여운 별명도 생겼다.


하지만 국민 프로듀서(이하 국프)가 소년을 눈여겨본 이유는 센스 있는 자기 소개 PR 영상 덕분일 것이다. 긴장감 있는 기타 연주로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후, <Pharrell Williams - happy> 를 부르며 자신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happy’ 라며 시종일관 즐거운 모습을 보였다. 투표를 많이 해 달라는 깨알같은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영상은 현재까지 연습생들 중에서 조회수 7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소년은 다양한 매력으로 분량이 많지 않았음에도 꾸준히 10위권에 들었고, 데뷔조 후보에도 무난히 들었다.


하지만 소년은 최종 12위로 데뷔에 좌절하게 된다. 데뷔라는 꿈을 바로 한계단 뒤에서 지켜봐야 하는 이 마음은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소년은 그 와중에도 침착했다. 오히려 자신을 뽑아준 국민프로듀서에게 감사를 표하고, 다른 연습생을 위로했다.


꿈을 무조건 쫓아가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알고 노력하겠습니다. 성공하려 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곁엔 항상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겠습니다.
소년에게 2017년은 큰 추억을 얻은 한해이길.


소년은 진정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전쟁터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도 인생의 목표는 ‘해피’ 라며 씨익 웃었다. 물론 소년에게는 타고난 목소리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한 가닥 하는 음악의 거장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소년의 성공 요인은 ‘자신의 꿈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의 목소리는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고 보물상자에 갇혔다.


그러니 뭐라도 부딪혀보자. 꿈꾸는 무언가가 있다면 거기에 근접하는 뭐 하나라도 해보자. 소년은 열일곱에 5평이라고 좋으니 노래할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공표했다. 절절한 노래는 여러 사람을 감동시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현실부터 계산하며 주저하기에는 이르다. 남이 보기에 대단해보이는 도전이 아니라도 괜찮다. 삶의 목표에 조금씩 근접해보자. 오늘보다 내일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게 무어라도 조금씩 해보자.


글의 주제를 생각하고, 무엇을 예시로 들까 고민하다가 소년이 생각났다. 소년이 나온 프로그램에서 인상적인 구절을 필사하고 대략의 내용을 구성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이것은 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쓴 글이다.


어릴적부터 책에서 손을 놓지 않던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건 일년이 채 되지 않았다. 소년은 그래도 열일곱에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다. 하지만 나는 반올림하면 서른이다. 어릴때부터 등단해서 작가로 이름난 사람이 많을텐데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내가 잘 할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이 크다. 보통 나이 또래는 취업을 준비하거나 나처럼 일을 한다. 일찍 결혼한 지인은 벌써 아이도 있다.


거기다가 내 직업은 3D다. 무거운 환자를 하루에 수도 없이 들어올리는 고된 노동으로 몸은 파김치가 된다. 다리가 터질 것 같다. 집에 가면 뻗는다. 책읽기도,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현실이 나를 옥죄어온다. 남들처럼 살지 않으면 도태될 것만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게된 이상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소년처럼 어떤 행동을 하면 내 꿈에(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에 작은것부터 해 나갔다.


일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몰입해서 독서를 한다. 자다가 일어나면 다시 자지 않고 뭐라도 하나 더 본다. 방에 널브러져 있는 책을 펴다가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으면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을 본다. 그렇게 해도 안되면 공모전 사이트에 들려 나에게 맞는 대회가 있나 살펴본다. 그렇게 해도 안되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쓴다. 현재 내 단계가 바로 소년이 기타를 독학하며 노래를 불렀던 그 시점 같다.


나는 소년을 좋아한다. 소년의 노래 실력과 잘생긴 외모를 좋아한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소년의 매력은 순둥이 같은 얼굴에 숨겨져있는 의지력이다. 그것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나보다 훨씬 어린 소년이지만 본받을 것은 본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소년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은가?


소년은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정세운 연습생, 아니 가수 정세운이다.




예전부터 쓰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실천한다. 이름하여 ‘전직 국민프로듀서의 뒤늦은 연습생 분석’


이 글을 내가 좋아하는 소년에게 바친다. 아울러, 소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열광했던 올 봄은 후회가 아닌 나를 성장시킨 한해였다고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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