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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환자에게 귀엽다고 말하는 건 실례지만, 할아버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이 말 뿐이라 유감스럽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할아버지 한 분의 인상이 상당히 기요미시다. 머리는 빡빡 깎여 있고, 이는 전혀 없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어르신은 하루종일 눈을 감고 계신다. 아침 인잭을 주면서 할아버지를 깨웠다.


“어르신! 이제 아드님 오시는데 일어나셔야지요!”


하지만 내 말에 꿈쩍도 않으신다. 보호자 면회 시간에 잠깐 눈뜨다 잠드신다.


점심 시간에 깨우면 잠깐 눈을 뜨신다. 오늘은 칼륨 수치가 부족해서 소금 4팩이 왔다. 이걸 다 먹여야 하다니 나도 참 잔혹하다. 좋은 일을 하는 건데 학대를 하는 기분이 든다. L tube가 있어서 코로 약을 먹이면 그나마 나을텐데.


소금을 성공적으로 먹이기 위해서는 어찌 해야 할까? 소금 4팩을 죽에 모두 쏟아부어서 먹이는 게 나을까? 아니면 소금을 한꺼번에 먹인 후에 죽을 먹일까? 나에게 대입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고심 끝에 먼저 소금을 한꺼번에 먹는 것으로 정했다. 나만의 논리지만 맛없는 음식을 먹고 나서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좋다. 맛없는 것을 극복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실컷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마지막에 짠 것을 먹으면 기분이 나쁘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소금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는, 각오하라는(?) 비장한 말을 했다. 할아버지는 마음의 준비를 한 표정이였다.


빠른 속도로 먹이니 할아버지는 짜다는 말을 연신 외치고는 인상을 썼다. 얼른 먹이고 물을 드렸다. “그래도 이제 맛있는 죽밖에 안 남았어요. 맛없는 거 먼저 먹는 게 낫지요?” 말하니 고개를 끄덕이신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쁜 소식, 좋은 소식 각각 하나씩 있다면 나쁜 걸 먼저 듣는 게 마음에 덜 무리를 준다.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이 동시에 있는데 둘 다 해야 한다면? 하기 싫은 것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기분이 좋다. 하기 싫은 것을 극복하고 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건 내 인생 철칙이다.


201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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