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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술이 먼저일까 인내심이 먼저일까

DT뜬 아저씨 환자 한분이 초인 같은 힘을 발휘해 계속 벌떡벌떡 일어나고 있다. 장담하건데 하루종일 같은 행동만 반복하다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간이 안 좋은 사람은 보통 황달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하지만 이분은 황달보다 미간에 움푹 파인 상처가 가장 먼저 보인다. 지금은 딱지가 생겨 아물었지만 상처의 깊이를 봤을 때 상당량 출혈이 있었을 거라 예상된다.


온 몸에 땀도 상당하다. 병도 병이지만 자꾸 용을 써서 체온이 더 올랐다. 차가운 얼음팩을 양 옆구리에 적용해도 무용지물이다. 돌덩이처럼 꽁꽁 얼려둔 것인데도 한시간만 지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해진다.


얼마 전에는 간질발작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혀를 세게 깨물어서 피도 철철 났다. 거즈에 보스민(지혈용도) 액을 묻혀 환부에 적용했지만 아직도 핏덩이를 뱉어낸다. 입가는 아무리 깨끗하게 닦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 뒤범벅이다. 피는 환자 상의에도 덕지덕지 묻었다.


술은 사람의 몸 뿐만 아니라 뇌도 퇴화시켰다. 알코올성 치매로 정신이 안 돌아오고 있다. 자꾸 병원을 떠야한다며 자신과의 대화를 하며 나가려는 행동을 보인다. 그래서 억제대를 적용한 것이다. 손과 발이 초록색 동아줄로 묶였기에 아무리 나가려고 발버둥쳐도 소용 없다.


“어디 가시려고요.”

“나 좀 풀어줘요.”

“풀어주면 뭐하실건데요.”

“밖에 가야지.”

“밖에 못가요. 술마시다 넘어져서 오셨잖아요. 간질 때문에 혀 깨물어서 피도 나는데 어딜 가요. 못가요.”

“밖에 안 갈거야. 풀어줘.”


말이 안 통한다. 뫼비우스의 띠, 악순환의 연속이다. 기가 빨린다. 이분은 안 건드리는 게 낫겠다. 하기사 dt 뜨는 사람에게 내 말이 통할 리가 있겠나. 나름 설명했는데도 자기 주장만 피력한다.


포기하지 않고 나가겠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종일 용을 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같으면 포기했을텐데. 다른 면으로 참 대단하다.


벌떡벌떡 일어나는 장면을 다른 아저씨 환자가 봤다. 그러고는 “저 아저씨 또 저러네.” 라고 말한다.


아저씨가 그렇게 말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 둘 다 알콜 중독자다. 아저씨 자리의 폐기물분리통에는 다 들어간 수혈 팩이 10개 가량 있었다. 대충 훑어보니 전혈과 혈소판을 수혈받은 모양이다. 같은 병으로 왔다고 말하면 오지랖 같아 보여서 그냥 아무 말도 안했다. 이 모순된 상황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내가 보기엔 두분의 차이는 단지 멘탈 뿐이다. alert한 것과 confuse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저 아저씨도 술을 더 마시면 돌변하겠지.


술은 이러나 저러나 사람을 병들게 만든다. 술만 아니였다면 저분들이 여기 올 일도 없었다. 아니, 생각해보면 술을 원망하기만 할 일도 아니다. 우리 모두 술에 노출돼있지만 전부 알콜중독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인내심의 차이다.


술이 먼저일까, 인내심이 먼저일까? 술을 인내심 잃고 마시는걸까, 혹은 어떤 이가 인내심을 갖고 만들어낸 것이 술인걸까?


닭이 먼저일까, 계란이 먼저일까, 라는 명제와 동급 같다. 어쨌든 이것저것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결론은 단 하나다. 나는 술이 정말이지 싫다.


*DT: 진전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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