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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우리 부딪혀가며 살아요

 일찍 자고 눈을 뜨니 새벽 다섯시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유튜브를 틀어 가장 먼저 보이는 영상을 눌렀다. 김미경 강사의 2014년 청춘페스티벌 강의였다.


 세상 참 좋아졌다. 내가 보지 못한 강의를 장소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시청할 수 있다. 나는 직업과 거주환경 때문에 문화예술을 누리기 힘들다. 지방에서 서울에 한 번 가는 것도 심호흡을 해야 한다. 왕복하면 반나절 걸린다. 삼교대 탓에 기쁜 표정을 지으며 강연을 보는 사람을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그래서 유튜브가 고맙다. 언제든 양질의 강의를 접할 수 있으니까.


 강의를 보고 나서,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망각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강의의 내용을 소개해주고 싶다. 이 시간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지구의 나이는 46억살인데, 사람이 살 만큼 쓸모 있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다. 퍼센트로 따지자면 지구는 90% 가량을 행성과 부딪혔고, 나머지 10%의 시기를 인간과 함께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40대에 ‘아, 나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사건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맞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질문할까봐 무서워서 피하지 말자. 수도 없이 깨지고 나면 비로소 쓸 만한 인간이 된다.


서른살 전까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 사람인가’, ‘어떤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가’, ‘만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좋은 부모가 될 자질이 있는가?’ 끊임 없이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특히 김미경 강사는 연애에서 많이 부딪혀 볼 것을 강조했다. 12명 정도는 만나야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 지 유형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20대 중반. 이제 몇 년 뒤면 서른이다. 내 나이대에 있는 사람들은 보통 무엇을 할까? 더 나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까만 정장과 면접구두를 신으며 사람이 터질 것 같은 지하철에 몸을 가두고 있으려나. 혹은 상사에게 죽어라 깨지고 ‘시발비용’ 으로 여자친구(혹은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술 한잔 하자고 카톡 한 통 보냈을까. 혹은 탄산 처럼 톡톡 튀는 목소리가 들리는 술집에서 노란 조명 아래 사진을 찍고 나서 인스타그램에 #데일리그램#셀스타그램 태그를 걸며 하루를 마무리했을까.




대학교 3학년인 동생이 바알간 틴트를 바른 입술을 오물거리며 “언니, 용돈 줘.” 한마디한다. 그럼 나는 “내가 너한테 빚졌냐? 조그마한 망설임 없이 돈 달라 그러냐.” 한마디한다. 동생은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깔깔 웃는다. 오히려 뻔뻔해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렇게 돈을 보냈다.


“언니, 바지 좀 골라줘.”

“이 바지나 저 바지나 똑같노. 그냥 지금 꺼 입어라 마.”

“똑같긴. 지금 입은 거 언니가 사준거잖아. 그것도 모르냐. 이건 어둡고 저건 밝잖아. 입는 바지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단말이야.”


서글프다. 동생한테 한번 먹힌 것 때문은 아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동안 대학 친구에게 잘 지내냐는 카톡 한마디 하지 못했다. 가끔 카톡이 와도 몇 마디 하다가 흐지부지됐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붙어 살았던 친구 결혼식에는 못갔다. 일에 치여서 미안하게 됐다는 말을 하며 축의금만 계좌로 보냈다. 이렇게 살아서 내가 얻는 게 뭐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면 성공할 수 있을까? 눈 감는 그날에 ‘나는 후회하지 않았노라’ 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아닌 것 같다.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현실 때문에 잠식됐을 때 나는 두 가지를 찾는다. 첫번째는 로또, 두번째는 연예인 인스타그램이다.


 ‘싯팔! 나도 좀 쉬면서 살자!’ 꿍시렁거리며 츄리닝에 삼선슬리퍼를 질질 끌고 로또가게로 향한다. 지역에서 당첨자가 많다는 대박 가게에 들려야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번번히 숫자 한 개 차이로 종이쓰레기가 된다.


조금 더 저렴한 옷과 가방을 사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시간과 돈을 환산하는 작업을 몇시간 걸친다. 대리만족을 하고자 나보다 어린 연예인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며 그들이 입은 명품, 둘러싸인 수많은 유명인사를 본다. 예쁘다, 화려하다, 부럽다, 를 연발하다가 이내 ‘내가 평생 뼈빠지게 돈벌어도 이 사람들 발톱도 안되겠지.’ 한탄에 잠긴다.


생각해보면 내 인생은 결핍과 관음의 결정체다. 중고교 시절에는 좋아하는 애한테 좋아한다는 말도 못했다. 못생기고 숫기 없고 공부도 못하는 나를 아무도 좋아해주지 않겠지, 라는 생각에 고개를 푹 숙이며 지냈다. 대학 다니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지잡대인 내가 너에게 카톡보내봤자 관심도 보이지 않겠지. 포기부터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실컷 생각해서 카톡을 보냈는데 답장이 없으면 ‘그래. 난 너에게 이런 존재였나 보다. 너를 생각한 그 시간 자체가 너무 아깝다.’ 체념부터 했다.


글과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내 얘기를 적은 이유는, 내 삶은 하나같이 피해가는 삶이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급우의 보복이 무서워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순순히 셔틀 노릇을 했다.

‘동생에게 용돈도 안 주는 언니’ 라는 굴레가 싫어서 내가 쓸 돈도 없는데 애써서 돈을 보냈다.

내가 그만둔다고 말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에 병원 돌아가기가 더 힘들텐데, 수선생님과 갈등만 빚을 텐데, 라며 삭이며 일을 했다.

‘나 같은 애를 누가 좋아할까, 남자는 다 똑같지. 한두번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며 여러 사람을 떠나보냈다.

첫 직장을 도망치듯 나왔을 때 엄마는 오열했고 동생은 나를 인간 취급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죄책감에 시달렸다.


생각해보면 주변 사람과 갈등 빚기 싫어서 그저 피해 다녔던 삶이였다. 찰과상, 타박상은 없지만 마음의 병이 나를 옥죄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20대 중반이다. 인생을 24시간으로 표현하면 이른 아침이다. 일이 힘들면 그만둘거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아한다고 말할거고, 내 마음을 정화하는 글을 계속 써나갈거다. 그렇게 조금씩 부딪혀나갈 것이다.


우리 모두

부딪혀 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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