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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태움에 대한 나의 생각 (2)

병원 내 자체 조사 결과, 태움이 심하지 않다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참으로 원통하다.

하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고인은 얼마나 답답할까.


난 병원 측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 당장 내가 말바꾸기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사직 면담을 할 때 수간호사는 나보고 언제 일할 수 있냐고 다그치기부터 했다. 반면, 어머니에게는 한달간 쉬게 해주겠다 했는데 따님이 병원을 그만두겠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당장 그만두려는 사람에게도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데, 사람이 죽은 심각한 상황에서는 얼마나 교묘하게 나올까? 그래서 난 무조건 피해자 편이다. 당장 내가 겪어봤기에 고인물의 말을 신뢰하지 못하겠다.




나도 그분처럼 죽으려 했다.

깜깜한 새벽 하늘, 살을 파고드는 추위, 쌩쌩 지나가던 차에 치여볼까 수도 없이 생각했지만 그러진 못했다. 죽을 용기가 없어서 살았다.


일을 그만두고 뭘 할거냐는 말이 가증스러웠다.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은데 그만두면 뭘 할거냐? 이딴 건 나에게 의미 없는 말이었다.


태움으로 첫 직장을 그만둔 날, 사표를 쓰러 병원에 가야 했다. 안 가고 싶었다. 벽에 머리를 계속 박았다. 이러면 쓰러질까? 유치한 생각에서 시작된 행동이었다. 하지만 두통만 생길 뿐 멀쩡했다. 엄마는 계속 병원에 들어가라고 다그쳤다.


쥐구멍보다 작은 개미집 들어가는 심정으로 간호사실을 찾았다. 나이트번 근무 사람들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벌레 보듯한 시선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새끼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라는 생각 아니였을까.


 남들 다 하는데 넌 견디지 못했다는 가족들의 질책도 아직까지 상처다. 이 일을 안해보면 아무도 모른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가장 위로가 됐던 건 역시나 내 입장을 알아주던 간호사 친구였다. 고인 역시 남자친구분에게 수많은 고민을 털어놨겠지만 빙산의 일각이라 생각한다. 간호사 친구와도 분명 연락했을 것이다. 구구절절 털어놓지 않았을까. 그 내용도 조사하면 진실에 보다 가까워지지 않을까.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 Y 등 시사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심도 있게 파헤쳤으면 좋겠다. 공론화되는 것이 고인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바람이자 고인이 삶을 끝맺은 이유가 아닐까. 최근, 간호사 태움을 검색해서 내 글을 보러 오시는 분이 부쩍 늘었는데 그 관심이 시들지 않길 바란다.


땅콩회항 재벌도 갑질로 처벌받는 시대에, 고인을 괴롭렸던 사람(같지도 않은 것)들을 부디 처벌하길.


병원에서 미미한 태도를 보인다는 건 가해자들이 일말의 양심도 없음을 반증한다. 죽어서 살인지옥에 갈 것들이긴 하지만 일단 살아서도 빵에 넣어야 경각심이 생긴다. 제대로 수사하길!


사람이 죽었는데 이딴 댓글 달고 싶을까? 태움 합리화하지 마라. 조무사는 같은 직종끼리 부둥부둥하고 본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데 간호사는 서로 잡아먹기 바쁘다. 그러니 조무사협회에 다 뺏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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