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생각하다

결혼, 출산 꼭 해야하나요?

어릴때 침대에서 방방 뛰어 놀곤 했다. 먼지 날린다며 엄마한테 혼났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운동을 못하는 나에게 유일한 놀이였다. 무언가를 배울 필요도 없고, 시행착오도 없는 단순한 과정이기에 귀차니즘 짙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였다. 로켓처럼 피융-하고 올라갈때마다 예쁜 드레스를 입고, 화려한 귀걸이를 한 엄마의 결혼사진이 보였다.


사진이 보였다, 말았다, 보였다, 말았다... 몸은 쿵쿵 뛰고 있는데 마음은 안드로메다로 가 있었다.


우와, 엄마 진짜 예쁘다. 나도 결혼하면 저렇게 예쁜 옷을 입을까? 나도 엄마처럼 큰 사람이 될까? 엄마 나이 되려면 몇살을 더 먹어야하지? 아직 멀었네. 그냥 놀자.




2019년이 밝았다. 올해도 한 살 먹었다. 액자 속 엄마의 나이가 됐다. 그리고 사진 속 엄마와 얼굴이 매우 흡사해졌다. 길 가면 내가 엄마 딸인지, 엄마는 내 엄마인지 사람들이 다 안다. 침대 매트를 정신없이 괴롭히며 놀기 바빴던 그때의 나는, 크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질거라 생각했다. (아이만의 특권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무도 안 알려주는, 알 필요도 없는. 그래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난 엄마 나이때쯤되면 번듯한 직장을 가져서 돈도 많이 벌고(그냥 버는 것도 아니다. 많-이 벌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현실은.. 말잇못(말을 잇지 못하다의 준말)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시집 언제 가냐고 물어온다. 딱 질색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다. 인생에 뭐 하나 도움준 적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궁금한 건 많은, 오지랖 넓은 유형. 속으로 생각한다. 결혼비용 보태줄건가? 그래,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내가 팍팍해진 면도 없진 않다. 아픈 사람,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사람, 부정적인 인간의 유형만 보니 안그래도 이래저래 생각 많은 내가 더 이런식으로 바뀐것같다. 다른 일을 택했으면 이렇게까지 바뀌었을까?


 중환자실을 그만두고 다른 곳에 면접 보러 다닐때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남자친구 있냐? 결혼은 할거냐?라고 물었다. 마음같아서는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나도 먹고 살아야 했나 보다. 얼버무려가며 대답은 했지만 결국 떨어졌다. 더 씁쓸한 건, 뭔가 물어볼 것 같아서 그 질문에 대비할 답도 준비했다는 것이다. 생각하지도 않은 결혼이 이제 내가 먹고사는 문제까지 침투하기 시작했다.


장년층이 된다면, 내 몸은 쇠약해질 것이다. 지금이야 건강하겠지만 이게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중환자실에 가거나 위급한 상황에 날 대변해줄 사람은 남편과 아들 딸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랬다. 심지어 가정폭력을 당한 여자도 보호자로 남편이라고 말할 정도니 결혼과 남편의 비중은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서 없이 글을 썼지만 추려보면

- 남들이 간섭하는게 싫어서(시집가라는 말에 스트레스가 쌓인다)

- 면접 볼 때 물어보는게 싫어서(답변하기도 뭐하고..)

- 나중에 아프면 나에게 보호자가 될 남편과 자식이 필요해서(보호자가 없으면 난감하니까,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현재 내 상황으로 봐서 대충 이정도로 추려보았다. 저 모든 이유가 ‘나’아닌 ‘남’에 방향이 맞춰져있다.


나도 모르는 내 인생에 쉽사리 비혼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겠다. 차라리 비혼이라고 확정짓고 본인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결단력이 대단해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한마디 변명해보자면, 저런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겠다.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억에 남는 한 집이 있다. 그 집 지하실에는 부부의 역사라는 주제로 밥공기, 지갑, 핸드폰, 고지서, 계약서 한장 한장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그정도로 애틋하고 진실히 사랑하면 결혼을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어서’, ‘결혼할 시기인데 나이는 먹어가고 사람은 없고 급해서’ 결혼하지는 않겠다. 왜 남한테 보이기 위해서 결혼하는가? 전문 연기자도 삐끗하면 발연기라고 욕먹는 세상에 그런 연기가 통할거라 생각하는가? 평생 직업으로 연기를 택할것인가?


나를 먹어 살릴 후손이 있어야겠다는 이유로 보험 식으로 아이를 낳는 짓은 하지 않겠다. 그거야말로 아이의 인생을 망치는 파렴치한 짓이다. 아이가 그 사실을 알게된다면 얼마나 충격먹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몸뚱이 하나도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세상에, 넓은 땅덩어리에 내 명의로 된 집 한채 구하기 힘든 세상에,


안낳는 편이 오히려 아직 없고, 없을 예정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내 사랑이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