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힘이 되어주는 음악

주식회사 - 좋을 거야

엄마와 오늘 오후 5시경 '정선희, 문천식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된 노래다. 우리 엄마는 드라이브를 할 때 라디오를 듣는 습관이 있으신데, 그때마다 90% 이상의 확률로 이 프로그램이 나온다.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차를 운전하셔서 그런 듯 싶다.


다른 프로그램 같았으면 "엄마, 나 음악 들을 거야! 라디오 소리 너무 커!"라고 하는데, 이 프로그램만큼은 두 분의 진행이 너무나 재미있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몰입해서 듣게 된다.


아참,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오늘 진행자 정선희, 문천식 두 분께서 정규직이 되셨다고 한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엄마는 사연이 나올 때마다 매번 "너도 한번 내 봐."라고 한 마디 하신다. 툭 던지는 말이긴 하지만 진심 같다. 당첨되면 백화점 상품권도 타고, 청소기도 받는다나 뭐라나. "작가 된답시고 글 써봤자 돈도 못 벌잖아, 차라리 여기다가 글 써!"라고 하시는데, 아직까지는 그럴 생각이 없다.


돈? 많으면 좋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갑부도 더 욕심내는 것이 돈이다. 하지만 나는 큰돈에 대한 욕망은 없다. 아니, 아직은 그만한 능력은 없다고 말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현재는 본업만 해도 내 한 몸은 건사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이곳에서 누구의 구속이나 속박 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의견을 피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내 글을 통해 내적, 외적으로 좋게 바뀌거나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후드득 비가 쏟아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활짝 갠 하늘을 보니 새로운 느낌이 든다. 빗물로 약간 촉촉해진 아스팔트 도로를 시원하게 내려감과 동시에 "오늘은 내일보다 더 좋을 거야."라고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음속에 답답했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음과 노래 가사가 내 취향을 저격했는데, 이대로 놓치기에는 정말이지 아쉬웠다. 그래서 가사가 또렷하게 들리는 부분만 따로 핸드폰 메모장에 입력한 후에 검색해봤다.


'흐르는 강물처럼', '이대로 좋아', '그래 왔던 것처럼', '흘러가는 거야, 맡겨보는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한참 동안 손으로 스마트폰 타자를 두드리며 찾는 도중에 정선희 진행자께서 "주식회사의 좋을 거야를 들으셨습니다."라고 멘트 한 줄을 날려주셨다. 이런, 헛걸음질 쳤네.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멤버들 나이를 합치면 200살이 넘는다.",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 장수한다."는 멘트를 언급하셨는데 정말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인터넷에 찾아봐야지. 진짜 200살이 넘나.


사실 '내가 가사를 제대로 들은 일부 구절'은 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무의식 중에 듣고 싶은 부분만 듣는다던데 내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답정너의 표본이 바로 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게 맡겨둬.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아무도 해 주지 않은 말.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욱 짠하면서도 힘이 난다.


제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구에게 말 못 할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사실 저도 그래요. 오늘 하루 정말 힘들었죠? 수고했어요. 지난 일은 흐르는 강물에 맡겨버려요. 힘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에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예요.




달콤 쌉쌀했던 첫사랑 얘길 안주 삼아
가볍게 취한 밤
아직 그대로인 하늘~ 바람~ 별빛~ 좋아
지나온 날들과 나를 기다리는 많은 것
난 어디쯤 온 걸까
때론 불안했던 시간~ 들과~ 서툰~ 사랑
흐르는 강물처럼 가는 거야
이대로 좋아 누군가 그래 왔던 것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거야 날 맡겨보는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술도 못 마시는 내가 냉장고 구석에서 이슬 톡톡 복숭아 맛을 꺼내 꼴깍꼴깍 마셨다. 아이고, 네 모금밖에 안 마셨는데 벌써 헤롱헤롱 취한다.


짝사랑 이야기, 한 번 풀어볼까? 나는 소심한 성격 탓에 수도 없이 짝사랑만 해왔다. 책 한 권은 쓸 수 있을걸.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짝사랑했던 적은 열다섯 살 때. 내 짝사랑의 대상이 됐던 그 애는 벌써 반년 전에 결혼사진까지 찍었다. 6년 전에 카톡 한마디 한 것이 그와의 마지막이다.


당시의 나는 패기 넘치는 대학 신입생이었는데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어쩌다가 번호를 알아내 먼저 카톡을 했었다. 하지만 할 말 없게 답장이 와서 결국 포기했다. (이놈의 소심한 성격 어디 가겠나)


"좋은 간호사가 돼렴." 그 애가 했던 마지막 말이다. 분명 그가 나와 연락을 끊고 싶은데, 할 말은 없어서 얼버무린 말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 그는 본인이 나에게 이 말을 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지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한마디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성찰하게 한다.


좋은 간호사가 된 건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아닌 것 같기도. 여하튼 여러모로 반성하게 하는 말이다.


그의 카카오 스토리를 관음 해 모바일 청첩장에 익명으로 '결혼 축하하고 사실 어릴 때 너 좋아했었어.'라고 지질하게 글도 남겼다. 그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내가 그 애를 짝사랑했던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자, 그의 존재를 잊자,라고 결심했다. 내가 이렇게 길게 언급을 한 것을 보면 지겹게 좋아했나 보다.


두 번째로 짝사랑했던 애는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다. 모 개그맨과 동명이인이다. 처음에 그 이름을 듣고는 피식 웃었는데 이제는 웃기지도 않는다.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 국시 기간을 최악으로 몰아갔던-내가 일방적으로 정말 좋아했던-그 사람은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다. 번호도 지운 지 오래됐는데 자꾸 sns 친구 추천에 떠서 내 심기를 거슬리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오래도록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엇갈리기만 했다. 당시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지금은 그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지난 것들은 그렇게 강 흐르듯 흘러가서 오래 묵은 내 마음을 씻긴다.


이제 반올림하면 서른이다.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도 없고, 연애를 해야겠다는 간절함도 없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에 있을 그가 시나브로 내 옆에 찾아올 것이다. 혹은 내가 그에게 그렇게 다가갈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는 게 함정 :) 없으면 슬픈데..


더 할 이야기는 많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궁금하면 댓글로 메일 주소 알려주세요. 소설을 써서 보내드릴게요. 딱딱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구독자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답니다 호호.)


그나저나 나의 신비감이 떨어지고 있어! 재밌지 않은 우울한 이야기라 말해봤자 좋을 것도 없고.. 에잇!



뻔한 얘기지만 아직 철이 덜 들었나 봐
그래서 말인데 하고 싶은 일이 아이처럼 너무 많아
조금 늦더라도 조금 어리숙할 지라도
이런 내가 좋은 걸
항상 그대로인 하늘~ 바람~ 별빛~ 그리고 너
흐르는 강물처럼 가는 거야
이대로 좋아 누군가 그래 왔던 것처럼
쉼 없이 흘러가는 거야 날 맡겨보는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가는 거야 이대로 좋아 (이대로~ 오~)
누군가 그래 왔던 것처럼
흘러가는 거야 맡겨 보는 거야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을 거야
좋을 거야~~ 좋을 거야~~
좋을 거야~~ 좋을 거야~~


전국 맛집 투어도 하고 싶고, 여력이 된다면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내 방을 싹 치워서 책으로 가득 채우고도 싶고, 요가도 배우고 싶고, 영어랑 중국어도 더 잘하고 싶고, 내 이름을 된 에세이집도 발간하고 싶다. 철이 없긴 하다.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으면서 꿈만 많으니까..


그래도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몇 달 전부터 어설프게 영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훗날 내 글을 쓰기 위해서는 input이 많아야 하므로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서 2주에 한 권 가량 읽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나면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일이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남은 시간을 내 나름대로 꿈을 향해 개척하고 있다. 이처럼 삶을 건설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조그마한 노력을 하는 내가 좋다.


이전 직장을 삼 개월 만에 그만두고 새 출발을 한 지라 대학 동기들보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했다. 그 힘들다던 신규 간호사를 2년간 보냈다. 내 마음대로 직장을 그만뒀고, 또다시 직장을 구했다. 그 당시 부모님께서 나에게 무척 실망하신 게 눈에 보였다. 버티지 못했다는 친척들의 시선도 나를 힘들게 했다. 물론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그 상황으로 되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울고불고하며 첫 직장을 그만둔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그게 굉장히 심각했고 인생의 오점으로 남았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거기서 구겨진 마음이 따뜻한 스팀다리미로 쫙쫙 펴지고 있다. 그때는 '나는 늦었다. 뒤쳐졌다.'라고 좌절하며 조급한 마음만 가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간호사 업무도 시간이 약이다. 처음에는 바이탈이나 인재가 하는 속도, 기타 잡무 처리 실력이 미숙해 혼도 많이 나고 자괴감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확실히 정확해지고 속도도 늘었다. 그렇다고 지금 완벽하냐? 그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난 2주간 프리샙터를 하면서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는 경험도 했다.


앞으로도 험난한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것 역시 자연스럽게 흘러가겠지. 나중에는 웃으며 회상하는 날이 오겠지. 요령 피우지 않고 언제나 고군분투하는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하루를 보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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