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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생각

더 크로스 김혁건의 자서전 '넌 할 수 있어'를 읽고

가수 더 크로스 김혁건의 에세이 <넌 할 수 있어> 사진은 저자의 아버지인 사진작가 김광운님의 작품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더 크로스의 노래를 상당히 좋아했다. 특히 <당신을 위하여> 를 듣는 순간, 이 노래는 내가 여태 들어온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살면서 들은 노래 중 최고의 가창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성적이고 시원한 고음이 듣기 좋아 하루 종일 반복해서 듣곤 했다.


고등학교 삼 학년 때는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라는 노래도 자주 들었다. 당시에 짝사랑하던 대상이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분들의 노래만 알고 있었을 뿐, '멤버 구성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와 같은 자세한 상황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사실 내 중고교 시절은 아이돌 그룹이 인생의 반 이상이었던지라, 락그룹은 내 관심사와 거리가 멀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더 크로스는 내 기억에서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 중간고사-기말고사-실습-취업준비의 수순을 밟으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분들의 근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을 때는 나는 이미 일에 심하게 찌든, 이십 대 중반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게 작년 10월쯤이었다.


'이분들 새로 낸 노래는 없나?'

'슈가맨은 진짜 뭐했나, 이분들을 섭외 안 하고.'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더 크로스 근황'을 아무 생각 없이 검색했는데, 뉴스 기사의 헤드라인이 매우 충격적이었다.


http://m.entertain.naver.com/read?oid=018&aid=0002900854


망치로 머리 여러 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 중 가장 고음을 잘 뽑는 전설의 보컬리스트였다.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은 실력을 지닌 그가 사지마비로 다시는 이전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몸상태라니.


내가 생각한 건 이게 아닌데……. 신곡 냈다는 기사, 컴백했다는 기사, 이런 내용을 상상했었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실을 기사로 접하게 된 나는 소위 '멘붕'상태가 됐다. 하물며 상황을 직접 겪은 저자와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충격에 휩싸인 마음을 진정시키며 인터넷 기사를 더 찾아봤다. 유튜브 동영상도 검색해서 몇 개 봤다. 그리고 나서야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사고가 난 건 2013년이고, 긴 투병생활을 끝에 그는 재기를 준비하며 2016년 9월 30일에 <넌 할 수 있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그의 도전을 응원하고 싶어서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책을 구매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더 크로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그가 겪었던 눈물겨운 투병기, 그리고 투병생활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자세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더 크로스의 멤버는 캡틴 시하와 김혁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캡틴 시하는 작사 작곡 능력이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다. 메인보컬 김혁건은 시크한 얼굴을 한 락커라고 생각했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한 꽃미남형이었다. 그는 '레전드 가창력'하면 무조건 꼽히는 보컬 실력을 지니고 있다. 둘은 실용음악학원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어느 날, 캡틴 시하는 저자에게 '소개팅 시켜줄게'라며 꼬드겼고, 저자가 꼬드김(?)을 당해 간 곳은 다름이 아니라 엠넷 뮤직 페스티벌 현장. 캡틴 시하의 간절한 부탁 끝에 얼떨결에 부른 노래가 대상을 타게 됐고, 이를 계기로 둘은 더 크로스라는 록그룹을 만들어 활동을 하게 된다.


<Don't cry>,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별의 간주곡>, <당신을 위하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으나, 음악적 견해 차이로 메인보컬 김혁건은 그룹을 탈퇴하게 되었다. 그 빈자리를 김경현의 영입으로(기획사에서는 3인조 R&B 그룹을 만들 생각으로 사전에 발탁됐었다고 한다) 더 크로스를 재결성했다.


저자는 원하던 록음악을 하기 위해 <락밴드 크로스>를 결성하여 전국으로 공연을 하러 다녔다.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여 안정된 수입도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가족들과 주말마다 식사도 함께 했던 이 시기가 가장 행복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특전사로 군 복무를 하게 되었고 제대 후 컴백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불법 유턴을 하던 자동차와 부딪혀 사고를 당해 사지마비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는 원년멤버 김혁건이 아닌 김경현의 목소리였다.)


사지마비는 사랑하던 사람을 빼앗아가고, 평범한 일상도 백팔십도 바꾸어놓았다. 동시에 '장애인'이라는 사회적 낙인과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오롯이 견뎌내야만 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살아있지만 죽음보다 못한 삶'이라고 표현한다. 정말이지 이해 간다.


사실 작년 어느 날, 저자와 같은 경추부위를 다친 환자가 살기 싫다는 이유로 e-tube를 입으로 깨문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환자의 산소 수치가 80%대까지 떨어져서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화가 났다. '살려고 병원에 왔으면 치료에 협조를 해야지….'라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내 일이 힘들어서 발생한 이기적인 감정이었다.


한편으로는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정말이지 그 당시에는 보는 내 마음이 다 찢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 부른 '넌 할 수 있어'가 내 노래가 될 줄이야,라고 말하며 자책한다. 아침마다 머리맡에 '넌 할 수 있어'를 틀어놓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강한 정신력으로 부정-분노-우울-타협-수용의 단계를 거쳐가며 서서히 사회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저자의 투병기는 굉장히 눈물겨웠다. 중환자실에서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그의 사진은 내 일터와 흡사했다. 내가 본대로 서술하겠다.


입에는 e-tube가 실크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었고, 거기에 ventilator를 달고 있었다. 우측 쇄골하에는 다량의 약물을 주입하기 위해 c-line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으로 syringe pump를 통해 중요한 약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사진을 보고 내가 경악했던 이유는, 그가 맨 정신으로 눈을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빛이 생생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체위변경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등에 욕창이 생겨 그는 수많은 수술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가 마비되었기에 마취도 하지 않고 수술을 했다. 또한 기립성 저혈압 등 수많은 후유증을 이 악물고 견뎌내야 했다.


폐 기능을 잃어 이전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친구와 가족, 그리고 서울대 연구진들이 물심양면으로 돕는다. 그리하여 애국가 완창도 불가능했던 그가 <항해>라는 노래를 낸다. 캡틴 시하와도 재회하면서.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도 다시 불렀다. 과거에는 일부러 가창력을 뽐내려는 노래를 불렀다면, 지금은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을 넣을 수 있게 됐다고 그는 고백한다. 두 곡을 비교해서 들으면 확실히 다르다. 기교는 전자가 더 좋다. 하지만 후자는 '음악'의 '음'도 모르는 나조차도 감정이입이 된다. 그는 음악이 자신의 인생 전부라고 말한다. 비록 아픈 몸이지만 음악에 열정은 그 누구보다 앞선다. 저자의 강인한 정신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버지가 쓴 글'도 수록되어있다. 저자 김혁건의 아버지 김광운은 웨딩 사진의 창시자이자 사진 분야의 거장이다. 또한 국문학, 컴퓨터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만능 엔터테이너다. 이런 그가 아들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모든 삶을 아들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은 정말이지 가슴 아팠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저자가 좌절을 극복하고 장애라는 산을 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게 된 원동력을 이 부분을 통해 짐작했다. 아마도 힘든 가정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수없이 도전한 끝에 성공을 이끌어낸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그 외에도 책에서는 <경추야 놀자>라는 경추 장애인 카페를 언급하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고충도 고백하고 있다. 강연을 하면서 생긴 비하인드 스토리와 장애인 음악교실에서 노래 지도를 하는 등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의 삶 역시 적혀 있다.


사실 내 글 하나로 이 책의 내용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한다. 책 한 장 한 장이 가장 처참한 장면에서 최고를 만들어낸 인간승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저자였다면', 혹은 '내가 그의 부모님이나 친구였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또한 나는 의료진인지라 저자가 병원에 관한 언급을 할 때 얼굴이 빨개졌다. 내가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부끄러움 투성이었다. 간호사의 불친절함에 상처를 받았던 그의 고백에 나 역시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일이 힘들다고 생각하며 투덜거리기에 바빴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한 사람 같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여기서 이 고생을 하나.', '다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다닐까?'라는 생각만 수없이 했다.


"너희들 나 환자 만들어서 돈 받아 X 먹으려고 하지??"라는 환자의 말에 속으로 욱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 이 말만 각기 다른 환자에게 열댓 번은 더 들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생각을 하며 하는 말이지만, 나에게는 환자들의 수많은 패턴 중 하나로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다. 보통 이럴 때는 그냥 참는다. 그게 차라리 서로에게 편하니까.


그런데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환자분 치료한다고 제가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돈 생각했으면 이 일 절대로 안 했어요. 그만두고 말지." 톡 쏘아 말했다. 그 사람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상당히 미안한 짓을 했다.


이랬던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씩 바뀌었다. '넌 할 수 있어'라는 노래를 반복하며 들은 결과 이전보다 수월하게 나 자신을 다독일 수 있게 되었다.


이 노래는 정말 마법 같다. 한숨만 쉬던 내가 나도 모르게 '넌 할 수 있어, 힘들지만, 언제나 이겨내 왔잖아'라고 노래를 혼자 흥얼거리게 되다니.




저자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마음에 팬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은 저자가 직접 댓글도 달고, 팬들과 소통하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나도 책을 읽고 나서 글 하나를 남겼다.


글 쓴 날짜: 2016년 10월 31일
제목: 혁건 님 에세이를 읽어봤는데요

저는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는지라 항상 전지적 간호사 시점으로 사고하고 행동했었어요.

많은 환자에 밀린 업무를 제시간에 처리해야 하니..라는 자기 합리화 속에서요..
하지만 혁건 님 글을 읽으니 환자 시점으로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제가 아무렇지 않게 routine job으로 했던 기저귀 갈기, 드레싱 등이 그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과 , 소변줄 때문에 환자 혈압이 올라가는 걸 제가 실제로 봤기 때문에 정말 공감이 가더라고요.

제 경험도 경험이지만 폴리를 보면 혁건 님 글 생각이 나서 요즘에는 더더욱 주의해서 보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니 점점 글이 길어지네요...
쉬는 날에 느낀 점들을 조리 있게 적어서 혁건 님께 보여드리고 싶어요.
(부끄럽지만 제 목표 역시 제 경험을 책으로 쓰는 거예요ㅠㅠ)
그리고 먼 훗날 그 내용을 엮어서 제 에세이에 혁건 님 위한 페이지로 남겨두고 싶네요.
두서없는 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ㅎㅎ..
다음에 남길게요, 글..


저자는 '모두를 위해 좋은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응원합니다'라는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었다.


또한 카페 매니저님 역시 좋은 간호사가 될 거라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다음에 남길게요 글..'


카페에 글을 남기고 나서 약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사실 저 시기의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글 쓰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막연히 꿈만 꾸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저자가 '브런치'라는 플랫폼의 작가로 글을 작성하는 것을 보고, 나도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훗날 책을 쓰는 데 조그마한 발판이라도 되지 않을까?'가 그 시발점이었다.


'브런치 작가로 모시지 못해 안타깝다' 류의 답변을 두 번 받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내 꿈에 발도 들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세 번의 도전 끝에 올해 초부터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이 보잘것없는 내 인생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를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이 책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올해 초, 그는 '불후의 명곡'에 가수 박기영과 함께 출연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아침마당에 출연해 패널 가요제에서도 우승했다.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경희대학교 박사과정에도 입학했다.


최근에는 책을 읽을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해 '넌 할 수 있어' 오디오북을 만들어내서 북 콘서트 준비에 박차를 기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공연도 했다. (멤버들의 돈독한 우정이 매우 좋아 보인다.)


나는 저자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그를 활발한 활동을 언제든지 응원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가 지금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닉 부이치치로, 희망의 대명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사적인 얘기를 덧붙이자면, (작년에) 카페에서 깜짝 팬미팅을 가진다는 소식과 연탄 나눔 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이지 참석하고 싶었다. 북 콘서트 역시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서울에 살지도 않을뿐더러 삼 교대 근무를 하다 보니 일정이 겹쳐서 가지 못하게 되었다. 굉장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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