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튼볼 빌리기
나이트 업무 중 하나가 스펀지 캔을 설거지하고 나서 그 안에 코튼볼을 채우는 것이다. 일을 실컷 하고 보니 이런, 코튼볼이 하나도 없다.
전날 나이트 번이 센스 있게 빌려왔으면 일하기 수월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내 몫의 일이 돼버렸다. 어쩔 수 없다. 남 탓해봤자 소용없으니..
나이트 액팅은 나 혼자다.
나이트는 여사님도 없다.
방법은 하나뿐. 내가 빌려야지!
사실 나는 전화 공포증이 있다.
누가 전화를 걸어오면 무섭다.
내가 전화를 거는 것도 두렵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지내는 것이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각 병동에 공손한 말투로 전화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중환자실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코튼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네, 오세요."
"감사합니다!!!"
안된다고 말한 병동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빌려준다는 곳이 더 많아서 다행이다.
저번에 석션할 때 쓰는 튜브를 빌렸을 때는 다들 없다고 했었는데.. 사실 그때처럼 최악의 상황이 될까 두려웠다. 환자에게 반드시 써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하게 되는 거니까.
내 할 일을 해야 하는 시간에 물건을 빌리러 가는 것이라 빛의 속도로 달렸다. '쟤 왜 이렇게 뛰어다녀?'라고 말하는 듯한 병동 간호사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준비물은 카트와 플라스틱 통. 9층, 8층, 6층 순서로 가면 된다. 높은 층부터 낮은 층으로 내려가야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사실 이건 엄마 일 도우러 치킨 배달 갈 때, 전단지 붙이러 다닐 때 깨우친 요령이다. 이 스킬을 간호사일을 하면서 쓸 줄이야. (엄마 고마워요!!!)
카트를 엘리베이터 중간에 걸쳐놓으면 엘리베이터가 자동으로 닫혀서 내려가는 일이 없다. 건물 자체에 엘리베이터가 별로 없기에, 이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십시오."
라는 말을 연신 외치면서 코튼볼을 챙겨갔다.
내가 일하는 동안에는 걱정 안 하고 쓸 수 있지 싶다. 이제 감독님도 복귀하실 테니 발주를 넣어주시겠지?
병원 동선도 길어서 여기저기 다니니까 땀이 나고 다리가 터질 것만 같다.
간호사는 간호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잡다한 것에 긴장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하고,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무진장 바쁘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잡일을 조금씩 공개하고자 한다. 간호사는 간호업무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싶다.
내 글로 인해 다른 간호사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간호인력을 늘리고, 처우개선이 돼서 간호사가 간호업무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바로 이 글을 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