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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민 Apr 30. 2018

취미생활

thoughts

최근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바로 드로잉이다. 그것도 펜으로만 그리는 펜화.

해마다 취미에도 유행하는 종목(?)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요즘에는 드로잉이 유행인 것 같다.

각종 일러스트와 여행 드로잉, 보태니컬 드로잉 등을 담은 사진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유행에 많이 민감한 편인데(귀가 얇아서인지, 남들 는 건 다 해봐야 하는 성격 때문인지) 그래서 한동안 SNS에서 떠도는 각종 드로잉 사진을 감상만 하다가 어느 날 용기 내어 직접 도전해보게 됐다.


개강 후 바쁘다는 핑계로 통역, 번역 일거리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돈도 아낄 겸 학원에 가는 대신 동호회에 가입해서 무작정 드로잉 책을 보며 따라 그리고 있는데.

이게 웬걸~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

드로잉 책을 보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습했다.
선 연습용으로 좋은 ‘젠탱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카페에서 펜으로 끄적끄적 그림을 그린 지가 이제 한... 두 달 반 정도 되어가는데.

별 기대 없이 슥슥 그리기 시작한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실력이 늘고 자신감이 쌓이면서 이제는 사진을 보고 꽃을 그릴 수도 있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그릴 수도 있게 됐다.

매주 연습하다보니 이제는 직접 사진을 보고 그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즈니의 인어공주

그림을 그릴 때 겁내지 말고 틀려도 된다는 생각으로 힘을 빼고 조금씩 하다 보면, 기대한 것보다 잘 되기도 한다.
눈앞에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그러면 그게 하나하나 쌓여서 최종 결과물로 나타난다.


어릴 적부터 나는 미술에 워낙 관심이 많았고 실기 성적도 좋아서 항상 미술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그 갈증으로 학부 때는 주전공인 국제학과 더불어 예술대학의 의류학을 복수 전공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직장생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미술에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고 가끔 전시회에 가서 유명 작가의 그림이나 구경하는 데 그쳤다.

그러다가 이렇게 매주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정말 내가 좀 소질이 있나?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는 것에 한번 도전해볼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말린다.

'워~워~~. 오버하지 말자.'

내가 지금 그림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지 부담 없이 취미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무언가를 꾸준히, 그것을 본업으로 삼아 전문적으로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처음에는 좋아서 시작하게 된 모든 일을 취미처럼 즐기지 못하는 걸까.

 영어에는  beginner's luck이란 표현이 있다.
네이버 사전에 검색했을 때 나오는 정의는
"초심자에게 붙는 행운(새로운 것을 처음 하게 될 때 뜻밖에 맞게 되는 행운이나 성공)"이다.

즉, 뭐든 처음에 부담 없이 즐길 때가 잘되고, 재미있고, 또 의외로 운도 따르는 법이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하게 되어 어느 정도 잘하는 경지에 오르고, 그 후에 진정한 고수가 되려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잘하고 싶은 마음, 잘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전처럼 그 일을 즐기면서 집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히려 전보다 더 안 되는 것 같다.

그런 어려움이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동기가 된다면 좋겠지만,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스스로를 비하하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


나는 아직까지 다양한 일을 함에 있어서 beginner's luck만 경험해봤지, 일이 진전되면서 진정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뛰어넘는 ‘고수의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아직 내적으로 덜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반성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통역과 번역에 있어서 나는 초심자의 행운을 넘어 진정한 어려움을 극복한 고수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연습하고,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그로 인해 좌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야 한다.

그런 과정을 잘 해내기 위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숙지해서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야 쉽지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최근에 본 광고 중에 인상 깊었던 카피가 떠오른다.

"끈기가 최고의 재능"이라고.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으며 '참 그때 그랬지. 많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때 하길 잘했지.' 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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