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위험했던 I의 영업
내 MBTI 첫 글자는 I다.
필요에 따라 사회적 가면을 곧잘 쓰는 탓에, 때로는 “네가 I라고? 스스로를 너무 모르는 거 아냐?”란 말을 듣기도 하지만, 갑자기 약속이 취소되는 날엔 ‘오히려 좋아!'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몇 차례 만남 끝에는 반드시 재충전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걸 보면, 나는 천성 I임이 분명하다.
그런 내성적인 내가, 어떻게 직접 만든 책을 홍보하고, 팔기까지 할 수 있었을까?
우선, 나에 대한 부연 설명을 몇 가지 추가하는 게 좋겠다. 평소 나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나 못하고, 누군가 내게 하나를 베풀면 꼭 그 이상을 되갚아야만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사람이다.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믿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뭐 하나 밑지고는 못 살며, 부탁이란 것을 하기엔 낯짝이 얇아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하며 지레 포기하는 성격이다. 본디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이 많아, 내가 만든 책을 직접 소개하는 일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내가, 나름의 I만의 방식으로, 은밀하게 내 책을 영업한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난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순으로 정리했다.)
1.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내 책 제목 거론하기 (비교적 쉬움.)
2.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내 책 사진으로 교체하기 (책의 실물을 공개해야 하는 측면에서 상당한 용기 필요.)
3. 오랜만에 먼저 연락 오는 지인에게 자연스레 언급하고 넘어가기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가는 데 큰 노력 필요.)
4. SNS에 게시물과 스토리로 관련 포스팅 올리기. - 인스타 게시물, 스토리, 카카오톡 펑 (글을 쓰는데 꽤 공이 들어가며, 다음날 이불킥과 함께 게시물이나 스토리를 삭제할 가능성 매우 높음.)
5. 마지막으로는 지인에게 직접 먼저 연락하기 (가장 어려움. ‘사건‘이라 할 만큼 흔치 않은 일.)
이 다섯 가지 방법을 실행하던 중 겪은 아찔한 한 사건부터 소개해 보겠다.
평소 늘 한결같이 잠잠한 나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가 (내 책 텀블벅 홍보를 위해) 업데이트되어서인지, 오랜만에 작은 고모로부터 카톡이 왔다.
“지민아, 무슨 일 있니? 많이 힘드니?"
아무래도 나의 첫 책 제목 ‘오 마이 갓김치!‘를 보고 혹여나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안부차 연락한 모양이었다.
마침, 어떻게 내 텀블벅 프로젝트를 홍보할까 한창 궁리하던 차에, 먼저 연락이 오는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가만히 있는데 굴러들어 온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싶어, 고모에게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크라우드 펀딩 중인 내 책 텀블벅 얘기를 꺼냈다.
“고모~~ 내가 이번에 책을 냈는데, 책 하나만 사 주세용~♡”
없던 애교에 하트 이모티콘까지 섞어가며 카톡을 보냈더니, 고모는 자기는 그런 게 뭔지 모른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어른들에게 온라인 펀딩을 영업하는 건 무리인 걸까. 그래도 말 나온 김에 조금 더 해보자 싶어, 여기 이렇게 클릭해서 들어가면 링크로 연결되는데, 카카오톡 결제하기로 쉽게 바로 결제할 수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그랬더니, 한참의 침묵 뒤에 돌아온 고모의 답변.
“지민아, 이거 너 맞니? 너답지 않아서 물어보는 거야. 신고를 해야 할 것 같아.”
너무나도 예상 밖의 답변이라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했다.
어쩌면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을지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고모가 본 나는, 명절날 친척들이 모두 모여있는 거실을 피해, 작은 방에 혼자 조용히 쉬고 있는 모습일 테니, 갑자기 적극 영업하려는 내 모습이 낯설어 보였을 터.
그렇게 한껏 용기 내어 홍보라는 것을 시도해 본 나는, 졸지에 보이스피싱범으로 몰렸고,
역시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요청하는 일은 어른들에게 하는 게 아니다, 영업도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결국, 고모에게 책 안 사줘도 괜찮다고,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절대 보이스피싱범이 아니라고, 고모가 아는 지민이가 맞으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라고, 하며 모처럼의 카톡 대화를 마쳤다.
그렇게 나의 어설픈 첫 영업 시도는 대실패로 끝났고,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평소에 잘하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여기서 반전 하나.
놀랍게도 약 한 달 후, 나는 생애 첫 텀블벅 프로젝트를, 그것도 목표 금액의 무려 200% 이상으로 달성하게 된다.
이 연재는 올해 출간 예정인 에세이 《어쩌다 셀프 작가: 갓생사는 번역가의 1인 출판기》(가제)의 일부입니다. 책에 담길 이야기들과 그 초안을 미리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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