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대 모두 까기, 다양성 없는 다양성 문단
「하긴」(이미상, 『이중 작가 초롱』, 문학동네, 2022)
86세대는 60년대 출생, 80년대 학번에서 나온 용어다.
86은 엄밀히 말하자면 특정한 시대적 조건 하에 형성된 독특한 엘리트 집단의 명칭이다. 1980년대에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이들은 결코 많지 않았고, 이들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만이 군사 독재와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조직화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발화 주체로서의 위상을 장기간 독점한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86은 세대의 이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p.242-244)
주인공 언론인 “김”과 학원 선생 “문”은 86세대 학생 운동권 출신이다. “김”은 자신의 딸 김 보미나래의 대입을 위해 “문”의 컨설팅을 받는다. “문”은 과거 자신을 고문한 경찰의 딸의 스펙을 만들어 대학에 보내 거액을 받는 학원 강사가 되었다. “김”의 계획은 대안학교, 생태 공동체 유학, 아빠가 만들고 딸의 이름으로 출품한 영화 등 외부 스펙을 이용해 대학에 진학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이중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김”은 자신의 딸이 반항적으로 크길 원한다. 독재에 반항했던 자신 세대의 영광이, 기성세대에 반항하는 딸의 삶을 통해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멋지지 않은가? 우리가 우리 부모에게 가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것을 우리에게 가하는 새끼를 길러낸다는 것이. (중략) 부정당함으로써 아래 세대를 고양하는 발판으로서의 정(正), 그런 내 짝으로서의 딸” (이미상, 「하긴」)
작가는 86세대의 반성은 반성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과거를 과시하는 행위에 불과함을 꼬집는다.
그러나 위선에서 출발한 아비의 바람은 와르르 무너진다. “김”의 딸은 미국 유학 중 흑인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다. 부모는 아이의 임신보다 애 아빠가 흑인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들이 외쳐온 평등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들의 위선이 다시 한 번 드러난다. 결국 김보미나래는 사용한 임신 테스트기를 강박적으로 모아두는 증세를 보이며 작품이 끝난다.
소설 자체는 문제가 없다. 서사도, 주제도 훌륭한 작품이다. 진짜 문제는 2019년의 문제작이 2025년에도 문제작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다양성을 담겠다는 혁명이 일어난 한국 문단은 오히려 다양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비록 문학이 이삽십대 여성들의 ethnography가 되어 한국 문학의 다양성이 심각하게 짓눌리고 있는 듯도 하지만 문학이 (중략) 보통의 독자 사이에서 읽히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히 긍정적인 현상이다.” (김은하,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 p.73)
다양성 상실은 정말 별 문제가 아닐까? 젊은 작가상 심사위원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런데 이 상에서 거론하지 않은 작가 중에도 대단한 성취를 이룬 작가가 적지 않다. 순문학 장르 안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그 많은 작가가 다뤄지지 않는지 의아했다. 어쩌면 이 상은 한국 문학이 겪고 있는 가장 치열한 변화를 포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황현경, 어느새 부터 젊작은 안 멋져, p.270)
여성 문학은 공고히 쌓인 문학계의 권력을 전복했다. 필요한 일이었고, 대단한 성취였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권력을 전복시킨 힘이 또 다른 권력으로 굳어가는 모양새다.
소위 말하는 요즘 소설을 읽다보면, 여성 문학의 그림자를 맴도는 작품이 주로, 주류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속된 말로 메시지만 있고 서사는 말아먹은 짜치는 작품은 이제 덜(?)나오는 것 같지만, 주제의 통일성은 여전하다. 소설은 훨씬 다양한 인생과 질문을 담을 가능성이 있는데, 문단은 스스로 그 가능성을 닫아버렸다.
다양성과 평등을 외친 혁명 뒤 문단은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는가?
비약일 수 있겠다만, 시가 텍스트 힙(text hip)으로 환영받는 이유는 분량이 짧아서가 아니라, 소설이 잃어버린 문학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담) 혹시 괜찮은 여성 문학을 추천하자면
강화길, 「음복」
가부장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여성(며느리)이, 가부장제를 공고히하는 인물(시어머니)이 됨을. 사실 가부장에제 권력 구조에서 남성은 아무것도 모르는 수동적인 존재임을 꿰뚫어본 역작이다.
- 「하긴」「하긴」
김초엽, 「관내 분실」
도서관 안에서 잃어버린 책을 관내 분실이라 한다. 절대 모성의 이름으로 한 인간의 삶은 사라지고, 엄마의 삶만 남은 한 어머니. 그런 엄마의 삶(데이터)를 추적하는 딸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