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일곱의 새로운 시작
37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만(滿)으로 치면 35년 11개월. 만 36세가 되기 1달 전인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한국 나이 37세는 누군가에게는 창창할 나이이고, 누군가에게는 아득한 나이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는 또래이다. 당사자인 내가 스스로 정의해 보자면, 37세는 '어중간한' 나이이다. 나름 사회생활을 꾸준히 해왔지만 어딘가 어설프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조금 늦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어중간함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37세의 청년들은(청년이라고 칭하면서도 이래도 될까, 내가 청년이 맞을까를 고민한다.)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 한다.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까? 20대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패기에 차 도전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 하지 않았던 나조차도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에 발을 디뎠다.
마음먹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취미로만 쓰던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취미로 읽고 쓰던 글은 요즘 흔하게 보이는 '웹소설'이다. 혼자서 끄덕이다가 같은 취미를 가진 인터넷상의 지인들과 공유하고 10개도 되지 않는 댓글을 보며 좋아하는 정도의 작은 활동이 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치듯 웹소설 출판사의 '투고 공지'를 보았다. 혹시 모르니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투고를 했다. 되면 좋고, 라는 마음이었고 내 글이 출판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공백 미포함 5만자짜리 단편이었다.
출판사가 제시한 투고양식에 맞춰 원고를 보내고 2주쯤이었을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하실 의향이 있으시냐'고. 설렜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내 글이 출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확인을 받은 것 같아 정말 기뻤다.
계약을 했다. 투고했던 웹소설은 누구나 들으면 아는 대형 플랫폼에 단권 e-book으로 출판되었다.
데뷔를 했으니 차기작이 이어져야 했다. 회사 생활을 제외한 개인 시간은 원고에 들여야 했다. 전같으면 가족들과 보냈을 주말에도 원고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가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하길 바라시는 어머니께서 섭섭해하실 정도로. 가족모임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숨겼던 작가로서의 데뷔를 가족들에게 알렸다. 이러하니 이해해 달라고. 가족들은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머니께서 궁금해하시기 시작한 것이다.
웹소설, 그것도 내가 쓰는 장르 웹소설은 어머니께서 읽으실 만한 글이 아니다. 그런데 자꾸만 궁금해 하신다.
"네 책은 어디서 볼 수 있니?"
"필명이 뭐라고?"
"나도 보고 싶은데."
보여드릴 수 없었다. 앞으로도 보여드릴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는 계속 보고싶어 하신다. 내가 장르소설 작가로서 글을 쓰는 동안 이 작은 실랑이는 멈추 않고 이어져 손톱 아래 거스러미처럼 신경을 쓰이게 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고, 답을 찾았다.
어머니께도, 가족들에게도. 나아가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에게도. 숨김 없이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37살 '지금', 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내보일 만큼 잘나지 않았다. 어디에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며, 어디에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착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 좋은 사람이라고 나 스스로를 칭할 수도 없다. 그렇게 흘러왔고 흘려 보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중에 손에 쥔 것은 다 흘러가고 고인 '생각' 뿐이다. 이대로 있다간 또 흘러가고 잊어버릴 '지금'을, 이제는 여기 기록해보기로 한다.
'나'를 쓰는 것은 처음이다. '나'를 내보이는 것도 처음이다. 그래서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렵다.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시작을 후회하는 결말은 맞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가질 수 있는 바람은 그것 뿐이다. 언젠가 오늘 쓴 글을 다시 읽으며 '아,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지.' 떠올리며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