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이상한 그림(変な絵)》(우케츠(雨穴), 双葉社, 2022)

by 아람
91QITwey4jL._SY466_.jpg 《이상한 그림(変な絵)》(우케츠(雨穴), 双葉社, 2022)

우케츠의 최신작 ‘이상한 지도’를 보고 나니 과거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싶어 졌다. 작년에 ‘이상한 집’ 이후에 몇 권이 더 출간된 건 알고 있었지만 미뤄뒀었다. ‘이상한 집’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한동안 계속 그 내용이 생각이 나서. 좀 지워지고 나면 읽자, 했던 게 지금까지 왔고 최근에 나온 ‘이상한 지도’를 먼저 읽었던 것. 작년에는 ‘이상한 집’이 너무 강해서 좀 있다가 읽자, 했던 것과 달리 이번 ‘이상한 지도’ 이후에는 어째서인지… 우케츠만의 그 분위기를 지금! 더! 읽고 싶다! 가 되었고 결국 아마존 재팬에서 바로 원클릭 결제를 해 버렸다.

우케츠가 두 번째 출간한 ‘이상한 그림(変な絵)’ 이다. 말 그대로 ‘그림’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는 우케츠식 수수께끼 추리소설. 시작은 한 초로(初老)의 심리학 교수가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며 제시한 그림이었다. 극심한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엄마를 죽인 소녀가 그린 그림에는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없는 집과 예쁜 미소를 지어야 한다는 강박에 자화상의 입모양을 몇 번이나 지우고 수정한 흔적이 있다. 나무에는 동그란 둥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고, 나무가지는 그 새를 지키려는 가시처럼 그려져 있다. 교수는 심리상담사로 일하기 시작한 초반에 이 소녀의 상담을 담당했고, 이렇게 판단했다.

이 아이는 갱생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유는 나무 안의 새 둥지에 있었다. ‘자신보다 약한 자를 지키고 싶다’, ‘안전한 장소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림에서 드러나 있다는 해석이었다. 이 무척이나 상냥한 마음을 키워주면 공격심은 완화될 것이라는, 당시 자신의 판단에 자신도 가지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린 아이는 지금 행복한 엄마가 되어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 소녀의 그림과 심리학자의 판단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수수께끼인데…. 첫 장부터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가 나열되기 시작한다. 우케츠 세계관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쿠리하라’가 또 등장해서 반갑기도 했던 첫 장! 한 남자가 일기 형식 블로그에 올린 그림 다섯 장. 임신한 아내가 그린 행복한 ‘미래예상도’. 이 에피소드는 우케츠의 유튜브에도 게재되어 있다.


https://youtu.be/8K0gkCtL9HI?si=UoUXgbDSgtzWsZvI


두 번째 장은 더 관계가 없어 보인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와 둘이 사는 소년의 이야기였다. 두 번째 장을 읽다가 ‘이거 단편집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에이, 우케츠가 설마’ 하고 계속 읽긴 했지만.


image.png?type=w773 変な絵 (雨穴) 본문 중, '콘노 유타'가 유치원에서 그린 엄마


세 번째 장은 어땠냐면, ‘하… 이걸 또 어떻게 연결 하려고?’ 하는 기대감에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성실한 고등학교 미술 교사가 캠핑 갔다가 살해를 당했는데 그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끝나 버린 에피소드가 이전 에피소드와 도대체 어떻게 이어진다는 걸까. 물론, 이 장에서 눈에 확 띄는 힌트가 주어지며 아! 하고 깨닫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완전하지는 못했기에.


image.png?type=w773 変な絵 (雨穴) 본문 중, 미술 교사가 죽기 직전에 그린 산 풍경


결론적으로 모두 하나다. 심리학자부터 시작해서 블로그, 모자(母子), 교사까지. 그러니까, 우케츠는 사실 전부 보여주면서 하나씩을 빼 놓은 거다. 나열해 놓은 수많은 사건과 힌트에 매달려 빈 공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이거 스포인가…?)


작가가 의도적으로 빼 놓은 ‘무언가’를 발견한 순간(이마저 작가의 의도)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어쩌면 한동안, 혹은 계속될지도 모를 정도롤 강렬했다.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말로 다하지 못할 감정의 소용돌이가 이 책이 남긴 마지막 감정이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 것.


그리고 또 하나. 그 무엇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 물론 이렇게 써놓고 보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라고 하겠지만 의외로 대다수가 잊고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보이는 한 가지로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고 규정짓는 일은 당장 주위만 둘러봐도 흔하디 흔한 일이니까. 조금 더 깊게, 더 넓게, 보이는 것만이 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늘 가슴에 담아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우케츠의 세계관은 어딘가가 일그러져 있다. 한 부분일 수도 있고 더 많을 수도 있다. 본인 피셜(일본의 인터뷰에서 그가 직접 언급) ‘불안이 없다는 이유로 불안해지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불안을 찾고, 그 불안 속에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그의 작품에서는 ‘일그러진 가족애’가 자주 등장하는데 정작 본인의 집안은 평범하고 화목하다고도 하더라. 그러나 일그러져 있다. 불안에 차 있다. 결국 그 불안이 그의 ‘천재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탁월한 ‘억측’의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