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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Nov 06. 2021

나야, 무기력.

살다보면 마주치는 어쩔 수 없는 순간들.

위험하다.

삐뽀삐뽀. 빨간 경고등이 울린다.

안돼!! 이건 마음의 위험신호다.


며칠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말겠지라고 넘겼다. 주말에 맞은 코로나 백신 탓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계속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1. 요즘의 하루 일과


아침에 잠에서 깬다. 보통은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니다.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 눈을 뜨고 싶지 않다. 일어나봐야 하고 싶은 일이 없다. 그래도 계속 누워있자니 답답해서 일어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날씨가 쾌청하고 단풍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변해가는 계절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이끄는대로 끼적끼적 밖으로 나간다.


'쨍-하다'에 무게감을 두스푼 얹은 것 같은 짙은 색감의 노랑과 빨강 나뭇잎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색색이 물든다. 희미해진 마음의 색채가 돌아오는 느낌이다. 공기는 또 얼마나 상쾌한지. 선선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해서 깊이 들이마셨다 깊이 뱉어내면 몸속이 정화되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을 환기시킨 후 충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기분전환 성공이다.


이제 됐다. 일을 시작하자.


집 안에 꾸며놓은 작업실에 앉으면 전환되었던 기분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또 다시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오전 산책의 효과는 찰나에 불과하다. 내 손은 도무지 움직이려 들지 않고, 내 머리는 당장 즐거움을 가져다 줄 본능적인 것들만 생각한다. 예를 들면 군고구마 같은 것.


고향집에서 보내준 고구마가 있다. 에어프라이어에 몇개씩 넣고 돌리면 간단하게 군고구마로 변신한다. '적당히' 보다 꽤 짙은 강도로 달고, 알맞게 부드러워서 웬만한 과자나 디저트보다 감미롭다. 게다가 건강한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몸에 좋을 거라는 생각에 즐겁게 먹게 된다. 단점은 그래서 많이 먹는다는 것. 적량을 초과해서 상당히 배부르게 되고 나서야 섭취를 멈춘다.


배부름은 무기력을 가중시킨다. 분명 아무것도 하기 싫었는데 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침대에 잠시 눕는다. 편안하다. 졸리면 한시간 정도 더 잔다. 졸리지 않다면 핸드폰을 들여다 본다. 손가락 하나로 아주 넓은 세상을 펼칠 수 있다.


가로세로 2미터도 안되는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안에만 머무르는 동안에도 시간은 잘만 흘러간다. 햇살은 한창 맑게 빛나다가 조금씩 붉어진다. 부드럽고 탁해지면서 주변 하늘까지 물들인다. 햇살이 탁해지면서 공기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면 약간의 위기의식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가는 건가? 뭐라도 한가지는 해야 할 텐데. 하지만 나는 블로그 글쓰기도, 인스타 업로드로, 온라인 쇼핑몰 관리도, 판매용 상품기획도 하고 싶지 않다. 어제는 그래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나마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니까. 그저께는 뭘 했더라? 아! 그저께는 동대문 도매시장을 다녀왔다. 판매할 상품을 탐색한다는 핑계로 갔는데 내가 사용할 물건들만 잔뜩 사왔다.


요즘의 나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한없이 비생산적이다. 책을 읽거나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행위는 나를 먹여살릴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어떤 일을 도무지 하고 싶지가 않다. 큰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은 고요하다. 무사태평한 마음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2. 무기력의 기록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무기력했던 시기가 분명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때는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았을까? 회사를 다니는 것 장점은 무기력의 시기에 빛을 발한다. 내가 아무리 무기력해도 의무적으로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기력의 시기가 찾아오더라도 적어도 '회사를 다닌다'는 행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있고, 모든 일은 내가 하기 나름인 상태이니까. 무기력이 심하면 내가 하는 행위의 최저치는 '0'된다. 그래서 최근에 찾아온 무기력은 회사를 다닐 때 찾아왔던 무기력보다 무섭다.


매일 0을 기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적는다.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커피와 고구마로 카페인과 당과 칼로리를 풀 충전하고 글이라도 써야겠다. 글쓰기는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니까.


물론 좋은 글쓰기 머리와 마음을 같이 써야하기에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좋은 글쓰기가 아니라 0에서 0.00001이라도 만들어내는 글쓰기이다. 이건 생존을 위한 즉흥적 글쓰기이므로 퀄리티와 깊이는 배제하려 한다.


#3. 기록의 의미


퀄리티와 깊이가 배제된 낙서같은 글쓰기 의미가 있냐고?

나중에 또 다시 무기력이 반복된다면 이 기록이 도와줄 것이다. 반복되지 않는다면? 완전 땡큐지. 그 때는 이 기록은 추억이 될 것이다. 그땐 그랬지, 정도의 의미로 남을 것이다. 인생의 어떤 순간을 선명하게 남겨놓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2021.11.06. 하루의 끝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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