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일기3. 나와 나의 대화
카톡을 제일 많이 하는 상대는 누구인가?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연애를 하지 않을 때와 연애를 할 때가 다르다. 연애를 할 때는 연인과의 카톡 대화량이 월등히 많다. 그럼 연애를 하지 않을 때는? 친구도 가족도 업무관련인도 아니다.
바로 '나'다.
#. 나와의 채팅 기능1 : 기억하기 위한 메모
나와의 채팅창에는 이런저런 메모들이 많이 있다. 길을 걷다가 책을 읽다가 생각을 하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나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적어놓기 때문이다. 다른 메모 어플들도 있지만 카톡이 제일 편리하다고 느낀다.
메모의 종류는 매우 랜덤하다. 오늘 적은 내용들만 잠시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머리하기
퇴사라는 행위를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우리 남은 인생의 첫날
짧은 친구
통신요금 납부방법 변경
밥전
해야할 일과, 문득 떠오른 문장과, 유튜브를 보다가 감명받았던 표현과, 또 다시 자꾸 잊어버리는 해야할 일과, 시도해보고 싶은 간편요리 이름. 이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기억해놔야지'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그래서 메모는 중요하다.
#. 나와의 채팅 기능2 : 전달하기 위한 메모
나와의 카톡의 중요 기능 하나 더! 기억하기 위한 메모 말고 전달하기 위한 메모 기능. 이건 진짜로 '대화'의 기능이다. 나와의 대화. 살다보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가 있다.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그만했으면 좋겠기도 하고,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기도 하다. 응원해주고 싶을 때도 있고, 위로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와의 채팅에 적는다.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과 말로 소리내서 이야기하는 것과 카톡에 써서 눈으로 보는 것은 느낌이 각각 다르다. 생각한 것을 적어서 눈으로 한 번 더 보면, 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서 더욱 깊숙하게 와닿는다고 할까?
그래서 최근에 아주 진지하게 한마디 적었다.
몸을 사랑한다면 참아주세요.
무슨 뜻이냐고?
최근들어 폭식증이 심해졌다. 기본적으로 식습관이 좋지 않기도 하지만 요즘에 쓸데없이 너무 자주, 많이 먹는다. 남아도는 칼로리는 몸에 쭉쭉 쌓여 몸과 마음을 둔하게 만든다. 본디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마른 몸에 대한 갈망이 없기에 '다이어트'라는 행위를 해 본 적이 없다. 몇kg 내외의 몸무게 변화는 오르락 내리락 있었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기에 별다른 스트레스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심해진 폭식증은 나이가 들며 감소한 기초대사량이 감당하기 힘들었는지 몸이 점점 불어나는 느낌이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를 외치던 나는 어느새 그만먹어!를 외치고 있었다.
먹순이인 나는 그만먹어! 정도로는 자극받지 않는다. 괜찮아, 념념념. 먹고 싶은 대로 먹어서 스트레스 안받는게 최고야. 천하태평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는 동생과 대화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하게 먹는건 몸에 해로운 행위이고, 그건 나 자신을 위하는 행동이 아니야.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한다면서 왜 해치고 있지?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당장 나와의 카톡에 적었다.
먹고 싶은걸 참는 스트레스보다 과하게 먹는 것이 더 해롭다.
몸을 사랑한다면 참아주세요.
이렇게 적고 나니 건강하게 적당히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틈날때마다 반복해서 읽으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것이 바로 나와의 카톡의 순기능이다. 하찮아보이지만 효과가 제법 좋으니 한번쯤 해보시길.
회사도 직업도 없는 백수 상태이기에 나와의 카톡이 더욱 중요하다. 일적으로 소통해야 할 대상이 없는 대신 자기자신과의 소통에 충실하려 한다. 백수이든 아니든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의 소통이니까. '나'와 대화해본 적이 없고, '나'와의 소통이 어색하다면 하고 싶은 말을 카톡에 적어보자. '나'와 친해지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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