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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작가 Dec 13. 2022

오늘 상점을 닫았습니다.

생애 첫 창업 그리고 폐업 이야기




클릭, 클릭, 클릭. 

그리고 간단한 텍스트 입력.

클릭, 클릭, 클릭.


됐다.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 정보 몇개만 입력하고 신청/확인 버튼을 누르니 바로 처리완료 팝업창이 뜬다.


신청되었습니다.


라니. 다시 한 번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고 느낀다. 10~20분 후에는 폐업사실확인도 할 수 있다. 실감이 나지 않아 과연 접수가 잘 된 것인지 신청내역 조회를 해 보았다.



- 민원사무명 : 휴업(폐업)신고
- 접수방법 : 인터넷
- 처리상태 : 접수완료


정확하게 잘 되어있다. 이제 사업자등록상태를 조회해 볼 차례다. 나의 생애최초 사업자번호는 과연 잘 정리되었을까?



- 폐업자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폐업일자 : 2022-12-09) 입니다.


방안에서 클릭 몇번으로 폐업자가 될 수 있다. 방안에서 사업자가 될 때도 '오, 이렇게 간단하게 사업자가 될 수 있다니!'라고 생각했는데 폐업은 더욱 간단하다. 참 편리하다.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간단하다고? 


편리해서 좋다고 생각하다가 허무해져버렸다. 내 생애 처음으로 차린 상점이었는데. 온라인 상점이라 정보 몇개만 입력하면 사업자등록증이 나왔고, 온라인 상점이라 실물은 없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근로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을 만들어 준 의미있는 상점이었다. 온라인몰은 어떻게 시작하는 건지 여기저기 알아보고, 사업자등록을 하고, 판매할 상품을 고르고, 잘 팔고 싶은 상품은 직접 촬영도 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상품설명도 쓰고, 낯선 시스템 사용법도 공부하고, 헤매면서도 부지런히 상품을 등록했다. 시간과 노력과 마음을 가득 담아서. 부족한 내가 부족하게 운영하는데도 첫 매출은 발생했고, 처음 상품이 팔렸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작은 매출이고 더욱 작은 수익이지만 '해냈다!'는 느낌. 회사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증명같은 사건. 


기억이 살아나고 추억이 돋아올랐다. 회사를 그만두고 꿈도 목표도 없던 나에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방황하던 나에게, 온라인 쇼핑몰은 희망의 빛 같았다. '저거라면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시작부터 몇개월까지는 퇴사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비록 문을 닫게 되었지만 이렇게 오롯이 수익을 창출해 낸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늘 불안했던 직장인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게 계속 불안했을 것이다.


쇼핑몰 성공사례는 흔하다. 하지만 주변의 사례를 통해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겪어서 느낀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남의 일은 남의 일일 뿐이다. 주변 사람들이 했으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과 실제로 하고나서 '나는 할 수 있다'는 확신은 확실히 다르다. 단단한 믿음은 현재 내가 어디에 있든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해 준다. 나의 작고 소중한 쇼핑몰은 나에게 이런 믿음을 선물해주었다.


믿음을 가지고 계속 열심히 했다면 나도 성공했을까? 성장세가 멈추자 쇼핑몰 권태기가 왔고, 나는 또 다른 분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쇼핑몰 방치가 시작되었다.


1년 가까이 방치해 놓았었기에 섭섭하다거나 아쉽다는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정말로 영영 없애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 이 상품은 꽤 잘 팔렸었는데.

- 단체주문 들어왔을 때 이대로 가면 부자될 줄 알았는데.

- 나중에는 거의 의무감에 꾸역꾸역 등록했었구나.


상품 하나에 추억과 상품 하나에 기쁨과 상품 하나에 고민과 상품 하나에 뿌듯함과... 이렇게 하나하나 감상하며 삭제했다. 물론 나중에는 지쳐서 일괄 삭제해 버렸지만.


2020년 1월 1일에 야심차게 사업자등록을 한 후, 폐업일 2022년 12월 9일까지 그래도 운영자답게 운영했다 싶은 기간은 1년 반 정도이다. 나머지 기간에는 폐업만 안했지 신규 등록 및 운영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씩 팔리는 상품이 있었고, 덕분이라고 해야할지 때문이라고 해야할지 마음이 자꾸 편안해졌다.


- 쇼핑몰을 가만히 둬도 상품이 팔리는데 다시 신경쓰기 시작하면 생활비 정도는 쉽게 벌 수 있을 거야.

- 지금은 흥미를 잃어서 적극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하면돼.


핑계에 가까운 안일한 생각. 이런 생각은 나의 '파이어족과 백수 사이' 생활방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파이어족에서는 멀어지고 백수에 가까워지게끔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이니까. 쇼핑몰 운영을 하지 않는 시간에 다른 일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다니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에 젖어 들기만 했다. 예쁘게 봐주자면 '다양한 경험을 쌓았구나. 이제부터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겠어.'가 되고 차갑게 바라보면 '이룬 게 하나도 없잖아. 마음잡고 한가지만 팠으면 벌써 뭐라도 됐겠다.'가 된다.


나를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서는 차가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폐업을 결심하고 결정하고 실행했다. 이제는 정말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다. 긴 안식년을 끝내야겠다.


열심히 키우지 않아서 작은 상점에 머물러있던 나의 온라인몰은 없애기가 아주 쉬웠다. 많이 커졌다면 정리하는데 고생 좀 했을 텐데 고맙다고 해야하나? 아니. 많이 커졌다면 아마 정리할 일이 없었을 거라고 반성하는 것이 맞겠다.



안녕, 귀한 깨달음과 경험을 선물해 준 나의 작고 소중한 상점.
이제 세상에 없지만 내 안에서 진화해 더 근사한 무언가로 나타날 그날이 올거야.
그 동안 고마웠어.


이렇게 상점을 닫았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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