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작가 Sep 24. 2024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건...

말한마디 전과 후의 세상이 달라지는 것.

출근시간 20분전. 

카카오톡으로 연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터졌다. 반복적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던 그 똑같은 패턴. 또야? 보통은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지만 오늘따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 됐어.


나도 싫어하는 말. 전달하고 싶은게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무참히 자르는 말. 니가 무슨 말을 하든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은 단절의 극치를 표현하는 말. 이 말을 던진 후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말을 한 건 난데.




상대방이 기분상할 법한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던진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내 기분도 상하기 때문이다. 난 기분에 민감하다. 내 기분에도 상대방의 기분에도.


문제는 감정기복이 심한 어떤 날에는 단순히 기분이 나빠지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안에서부터 무언가가 같이 우러나오면서 눈물이 터져버린다. 눈물을 흘릴만큼 속상한 일이 아닌데.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닌데. 사건 자체는 단순한데. 


출근을 앞두거나 누군가를 만나야하는 약속시간이 다가올 때 이런 일이 발생하면 몹시 난감하다. 아, 이러지 말자. 괜찮다. 이따 울자. 스스로를 혼내고 달래고 설명하고 온갖 방법을 다 써도 수습이 안되면 하는 수 없다. 눈물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빨갛게 된 코로 변명을 해야 한다. 


- 안구 알러지가 심할 때가 있는데 이게 또 올라왔네요. 좀 있으면 괜찮아지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대사를 날린 후 미소짓는 얼굴은 덤.


상대방이 믿는지 안믿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감정 제어가 안되서 아무데서나 질질 우는 성인은 보기 드문 존재니까 대충 믿지 않을까? 알러지는 질병이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하지만 알러지 이상으로 어쩔 수 없는 게 감정기복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나 말고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차라리 알러지가 낫지.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건 감정기복이 심하다는 단정한 표현으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괴상하게 괴로운 현상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과연 정상일까? 


됐어,를 날리기 직전까지 출근하는 버스에서 맑은 햇살을 보며, 갑자기 선선해진 가을바람을 쐬며, 무척 신났었다. 긴 여름 더위가 가고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왔네, 라고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출근 중이었다. 


그러다가 고작 카톡 몇줄에 감정이 날뛰고, 눈물이 제어가 안되서,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고려하는 사람. 이 사람은 정상일까? 병원에 가보지 않아서 그렇지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닐까? 진단을 받지 않아 모르는거지 비정상 수준의 마음상태인 건 아닐까? 호르몬이 문제일까?


씩씩할 땐 한없이 씩씩하고, 하고자 하는 일은 적당히 다 해내기 때문에 감정기복이 심하더라도 그저 '불편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지만, 가끔 오늘 같은 날이 찾아오면 이런 생각이 든다.


- 난 아픈게 맞아. 이건 아픈거야. 내일은 병원가야지.


그러나 보통은 내일은 내일의 밝은 내가 기다리고 있다. 밝은 상태로 병원에 가봐야 별 소용이 없을테니 가지 않는다. 이번에도 가지 않을 것 같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 왔다갔다 하다가 비정상쪽으로 많이 기울면 그때서야 가게 될까. 정상으로 기울어서 주책없이 우는 일이 없어지면 고맙겠지만 사람 갑자기 안변하니까.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준다던데, 우는 나에게 아이스크림 좀 사줘야겠다. 괜찮아, 뚝.

오늘도 병원대신 아이스크림으로 퉁쳐본다.


-end-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