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이야기가 필요한 시간

<스포츠라이터> 리처드 포드, 문학동네

by 정다

자다가 분수토를 했다. 하필 저녁 메뉴는 토마토 파스타였고, 양껏 먹은 아이는 침대부터 화장실까지 붉은 흔적을 남겼다. 새벽 두 시였다. 끈적하고 시큼한 붉은 토사물을 닦으면서 온갖 걱정이 떠올랐다. 급체인가? 이틀 전에 둘째 아이랑 똑같은 증상인데 전염성 장염인가? 혹시 뇌수막염이면 어쩌지. 그나저나 내 연차가 몇 개 남았더라.


아이가 아플 때마다 요술 주문처럼 외는 말이 있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픈 건 당연하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다.' 요술 주문의 맹점은 상상 가능한 최악의 저 아래 바닥까지 내려갔다 온 후에야 떠올릴 수 있다는 거다. 침대 시트를 바꾸고 새 이불을 꺼냈다. 화장실 청소도 한바탕 해치웠다. 잠은 싹 달아나버렸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청하지 않기도 애매한 시간에는 지루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리디에서 <스포츠라이터>를 골랐다. 사건도 감정도 튀지 않는 목소리로, 고작 3일 동안 인생 전체를 말해버리는 소설이다. 프랭크는 이혼했고 한때 잘 나가던 소설가였지만 지금은 서랍 속에 미완의 원고를 넣어둔 채 스포츠 기자로 산다. 부활절 날 친구는 자살했고 애인에게도 차였다. 굵직한 사건과 다르게 프랭크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지루하지만 성실하게 흘러가는 우리네 삶처럼.


전자책 검색창에 "랠프"를 입력했다. 아홉 살에 세상을 떠난 프랭크의 아들이다. 이혼한 부부는 랠프의 생일날 새벽 묘비 앞에서 만나 시를 읽는다. 이토록 애틋하고 무력한 부모의 모습이라니.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도 부모 역할은 영영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어찌 됐건 랠프는 내 인생에 영원히 남을 기록이 될 테니까. 앞으로 아들의 죽음은 나를 정확히 아는 데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사건이 될 것이다."


아이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새벽에 나를 파고든 문장이다. 부모 역할은 아픈 아이 곁에서 걱정과 불안을 삼키고 숱한 밤을 견디며 계속 배워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신할 수 없는 고통을 슬퍼하면서, 그래도 곁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면서 말이다. 잠든 아이의 고른 숨소리가 커다란 위안을 주는 밤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