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고 싶은 날이 있다. 죽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하게 없어지고 싶은 마음이다. 내 의지로 해결하지 못할 일이 닥쳤을 때, 복잡한 상황 속에서 용기보다 도망이 빨라 보일 때. 혹은 인생 일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사라지고 싶다. 주변이 온통 꼬인 실타래로 가득하다. 어디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까 가만히 들여다본다.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보인다. 주변의 실타래 말고 꼬이고 꼬인 나. 자기 자신도 풀지 못하면서 과연 어떤 실타래를 집어 들고 풀 수 있겠나 싶다.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천장을 바라본다. 팔은 자연스레 몸뚱이 옆으로 늘어져 있고 발 끝은 바깥으로 향한다. '사바아사나'. 우리 말로는 '송장 자세'다. 요가에서 휴식이나 명상하는 자세다. 깊은 숨을 세 번, 얕은 숨을 여러 번 반복한다. 내가 사라지지 못할지언정 몸속에서 답답함을 몰아내려는 숨이다. 깊은숨이 필요치 않게 되면 느껴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평한 무게감. 앉거나 서있을 때는 머리와 가슴만 무거웠지만 누워서 숨을 고르면 온몸의 무게감이 공평하게 느껴진다. '내가 바라는 건 고통의 공평이었을까.' 고통의 공평. 괴로움을 정확히 계량해서 나눌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계량부터 쉽지 않다. 계량한들 느끼는 사람마다 다를 테니 의미가 없다. 내가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 결론을 피하려면 송장 자세로 느긋한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편이 지혜로운 선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