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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 Feb 03. 2023

멈추어라 순간이여

긴 겨울 방학이 지나고 있다. 삼시세끼 따수운 집밥을 해 먹고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잔잔하기만한 일상은 어제 오늘 내일이 모두 같아져 버리기 일쑤다. 가끔은 일상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


특별히 보고 싶은 전시는 없었다. '그냥' 그림이면 족했다. 아이는 미키마우스 전시로, 나는 앙드레 브라질리에 그림전으로 향했다. 나처럼 매듭짓고 싶은 사람으로 붐볐다. 겨울 방학이 참 기네요, 정말. 붐비는 전시장을 혼자라는 가벼운 몸으로 투명하게 바라보았다.


앙드레 브라질리에, 오늘 처음 들은 화가의 그림은 우리 집 방바닥만큼이나 따수운 색감이었다. 브라질리에는 2차 세계대전을 겪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끔찍한 삶에서 그림으로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장장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그리고 있다. 그와 첫 만남에 나는 곧바로 존경하게 됐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은 눈 오는 풍경 <멈추어라 순간이여>였다. 전시를 기획하게 된 그림이라고도 한다. 부모님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집이자, 노년에 다시 살게 된 집에서 바라본 눈 오는 풍경이다. 푸른색과 말을 좋아하는 딱 브라질리에 그림이다.


눈송이 하나하나 점찍을 때 화가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창밖에 눈발이 예쁘게 날리고 집안은 따뜻하고 마음은 평온한 상태. 브라질리에의 마음 아닌 내 마음이었다. 이 화가는 정말로 그림으로 위로를 준다.


덕분에 일상의 매듭은 두툼한 코듀로이로 파란 리본을 묶었다. 브라질리에가 사랑한 파란색에 차가움은 없었다. 그래서 꼭 코듀로이로 만든 파란색 같았다. 브라질리에가 선사한 파란색 코듀로이 리본 같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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