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창 <네 인생의 이야기>, 엘리
나는 미래를 알고 있다. 보드라운 털복숭이 둘이 먼저 떠난 것처럼 내 숨도 언젠가는 멎겠지. 죽음, 살아있는 모든 것이 향해가는 종점이다. 내가 몰랐던 건 상실감의 크기였다. 알콩이 갈색 털의 촉감과 함께 전해지던 고소한 냄새, 젤리의 얇은 갈비뼈에 손을 얹고 있으면 전해지던 규칙적인 울림을 더는 느낄 수 없다는 허전함은 내 안에 깊은 구멍을 만들었다.
20대 모든 산책 길에는 털복숭이 둘이 있었다. 구글 포토가 울창한 가로수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리마인드 해줄 때마다 가슴이 아릿하다. 어느덧 나는 털복숭이 없이 산책한 날이 더 많아졌다. 붉은 혀를 길게 빼고 촉촉한 검은 코를 실룩거리는 남의 집 털복숭이가 다가오면 고개를 홱 돌리는 나날을 지나 이제는 물끄러미 바라볼 정도는 된다. 그러다가 하늘에 젤리와 닮은 흰 뭉게구름을 발견하면 진한 그리움을 담아 사진을 찍는다.
2023년도 기준 여성 평균 수명은 86.4세라고 한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은데, 어쩌자고 명백한 미래를 알고도 내 가슴에 깊은 구멍을 파버렸을까. 알콩이의 커다란 눈망울을 처음 마주한 날로 돌아간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긴 한숨이 먼저 나온다.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똑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알고 있단다. 자주 그 생각을 해보곤 해. 불과 몇 년 전,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자주 생각에 잠기곤 하지."
루이즈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다가 그들의 시간 관념까지 습득하게 된다. 외계인은 시작하기 전에 이미 끝을 알아버리는 시간 관념을 갖고 있었다. 루이즈의 미래는 평범한 죽음이 아니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살갗을 갖고 태어난 딸아이의 죽음이 먼저 있었다. 아이가 죽는 그즈음에는, 사랑하는 개리마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와 살고 있단다. 그럼에도 루이즈는 개리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예정된 결말을 향해 자신의 삶을 정확히 수행해 나간다.
표현할 수 없는 먹먹함이 밀려오고 나도 루이즈처럼 미래를 알고 있었다는 기분이 따라온다. 소설은 아주 느리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왜 사냐.' 만나면 헤어지고 결국 슬픔만 찾아오는데 기꺼이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유를 묻는다. 대답은 거창할 것 없다. 그저 우리도 정확히 하루치 분량을 수행하며 자신만의 인생을 완성해 나갈 뿐이다.
집에 돌아온 나를 반기던 털복숭이의 꼬리를 떠올리면 웃음부터 나온다. 어찌나 세차게 흔들던지. 뛰어와서 와락 안기던 두 마리의 몸집은 따뜻하고 묵직했다. 따스한 기억을 하나둘 꺼내보면 삶의 총합은 슬픔 때문에 기쁨이 사라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 루이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한쪽을 잃는 게 아니라 둘 다 얻는 <논 제로섬 게임> 같은 것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