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루플 <가장 별난 것>, 카라칼
외할머니는 딸이 아홉 있다. 외갓집은 초록물결 일렁이는 시골이었고 아빠 직장은 근처 도시였다. 구자매 중 둘째인 엄마는 아빠랑 결혼하면서 외갓집을 나왔다. 이모들도 데려와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다. 우리 집은 이층짜리 단독주택이었는데 일층에는 부모님과 나, 동생, 삼촌과 고모가 살았고 이층에는 이모들이 살았다.
처음에는 이모 여섯 명이 살았는데, 두 명 이모는 일찍 결혼을 해서 분가했다. 이모들이 외출하고 없는 오후에 나는 동생이랑 이모들 방에서 인형 놀이를 했다. 방에는 화장품 냄새만 둥둥 떠다녔다. 책장에는 제목부터 서늘한 <상실의 시대>, <앵무새 죽이기> 같은 책이 꽂혀 있었다. 주인 없는 방이라 긴장됐지만 해방감이 더 컸다. '뭘 또 어지르려고' 하는 엄마의 눈초리로부터 해방.
이모들이 쉬는 날에는 이층에서 나랑 동생의 이름을 동네 방송 마냥 크게 불렀다. '아휴 왜 또 불러' 하면서 꾸물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얼른 올라가 보라고 내 등을 떠밀었다. 동생과 손을 잡고 이층으로 올라가면, 우리는 이모들에게 얼굴을 내주어야 했다. 눈썹은 진한 갈매기 모양. 입술은 선을 따라 갈색 펜슬로 그리고 입술 면은 붉은색으로 칠했다. 뒤통수에서는 다른 이모가 머리카락을 다섯 갈래로 땋고 있었다. 뿌리부터 땋으려고 얼마나 당기던지. '아야' 하면서 눈물이 조금 맺혔는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최대한 가만히 있어야 빨리 끝났다.
이모들은 인형놀이를 마치면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와서 얼굴 사진을 찍었다. 나 한 번, 동생 한 번, 둘이 나란히 한 번. 그러고 나면 이모들은 그날 할 일을 다 마친 사람들 마냥 흡족한 표정으로 <라면 먹을래?>하며 물을 올렸다. 나 아직 대답도 안 했는데 이모들의 라면은 매운데. 매운 라면과 신김치로 차린 한 상에서 이모들은 후후 거리면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겨우 서너 젓가락을 먹었다. 서너 잔의 물과 함께 먹은 덕분에 배는 금세 빵빵하게 불렀다. 이상한 이모들. 아니, 별난 이모들.
메리 루플의 에세이 <가장 별난 것>에는 글자를 아주 크게 쓰는 미엘 이모가 나온다. 이모의 편지를 읽으려면 길바닥에 종이를 펼쳐놓고 지붕에 올라가서 읽어야 했다.
"그렇게 미엘 이모의 삶은 세상에 적나라하게 공개되었고, 그런 것에 아무 관심 없는 길 위의 아이들은 그저 자신의 글자를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 행복하고 안전하며 따스한 시간을 보냈다."
활자의 의미와 별개로 아이들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모가 보낸 편지의 글자 속에 들어가 놀이를 한다. 몇 번을 읽어도 어떤 감상을 느껴야 할지 애매한데, 나의 이모들과 연결하면 웃음이 난다. 내 얼굴에 진한 화장을 하고 디스코 머리로 땋아준 이모들. 그러고 보니 이모들의 알 수 없는 행위가 아이들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점이 닮았다.
그렇게 반나절을 이층에서 시간을 보내고 내려가면 마당 빨랫줄에는 젖은 빨래가 무겁게 널려 있었다. 거실 마룻바닥은 깨끗했고, 한쪽 구석에는 단정하게 접어진 옷들이 있었다. 아빠, 엄마, 나, 동생, 삼촌, 고모 그리고 이모들의 옷 말이다. 부엌에서는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이모들의 인형 놀이는 고단한 생활에 작은 유희이자, 조카에 대한 서툰 애정 표현이자, 엄마를 돕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나 싶다. 사실 그게 무엇이었든 우리 이모들은 아주 별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