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행복한 순간은 짧을까

나탈리아 긴츠부르크 <작은 미덕들>, 휴머니스트

by 정다

요즘 머릿속에 꽉 들어찬 생각은 공부다. 시험은 날마다 정확히 하루씩 가까워지고 있다. 책 두 권을 어떻게 하면 머릿속에 온전히 집어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생활에 쫓겨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겨우 한두 시간 정도. 몸집만 부풀린 걱정을 품고 살아가다 보니 나머지는 닥치는 대로 해치운다. 가령 여름휴가랄까.


세 달 전에 예약해 둔 홍천 비발디파크 체크인 알람을 받고 남편에게 사과부터 했다.

"여보 미안해. 휴가를 챙길 여유가 없어. 부탁할게."

우리 부부의 업무분장은 명확히 나누어져 있는데 내가 선을 넘기 시작했다. 점점 남편 쪽으로 미루게 된다. 내 담당인 알아보고 예약하고 챙기는 일을 남편에게 맡겼다. 나는 뭐가 있고 없는지도 모른 채로 오션월드 유수풀에 둥둥 떠다니며 뜨거운 여름을 맛봤다. 식사는 모두 리조트 내 식당에서 해결했다. 꼼꼼히 챙겨 다니지 않아도 그럭저럭 지낼만한 상황이 좀 웃겼다.

흐르는 상황 속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다른 여행객들도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가족 단위. 어린아이를 동반한 삼대 가족도 있고 사춘기를 보내고 있을 법한 자녀를 동반한 가족도 있었다. 화목해 보였다. 내가 다섯 걸음쯤 떨어져서 바라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워터파크를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예약을 또 했다. 이번에는 캠핑장. 주말 살림과 육아는 집돌이도 나가게 만드는 힘이 있나 보다. 수고로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군말 없이 '집'을 챙겨서 영월 산골짜기로 출발했다.(캠핑은 '짐'이 아닌 '집'을 챙겨야 한다.) 차창 밖으로 굽이진 길이 이어졌다. 길가의 논밭은 초록색 곡식이 빼곡했고 사방은 나무가 무성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캠핑장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봤다. 미리 계획했으면 밀키트라도 사 왔을 텐데, 솔직히 그럴 여유는 없었을 거야 하며 눈을 크게 뜨고 필요한 것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고기 상추 버섯 마시멜로 라면.


해가 기울어 캠핑장에 체크인을 했다. 나무 그늘 자리였고 산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아이들은 방방이를 뛰러 갔고 남편이랑 텐트를 치고 테이블을 세팅했다. 바로 옆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냄비밥을 하고 쌈야채를 씻고 고기랑 버섯을 구웠다. 우리는 별말 없이 그러나 고요하지 않은 산속에서 식사를 했다.

주위에 어둠이 깔렸고 캠핑장의 밤은 모닥불과 함께 깊어갔다. 불씨가 날리며 타닥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마시멜로를 구워 먹던 아이가 대뜸 속삭였다.

"너무 좋은데. 왜 행복한 순간은 짧을까."


덜컥 겁이 났다.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싶어서. 일렁이는 불꽃이 비춘 아이의 얼굴을 평온해 보였다. 제법 소녀티가 났다. 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우리의 삶은 희망과 그리움이 교차되는 사건 속에서 흘러간다."는 <작은 미덕들>의 한 문장이 스쳤다. 아이에게 하는 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꺼냈다.

"맞아. 행복한 순간은 짧게 찾아와. 그러니까 이때를 놓치지 말고 우리 마시멜로를 하나 더 굽자. 그리고 나중에 오늘을 꺼내 보는 거야."


집에 돌아와 옷에 밴 불냄새를 맡았다. 벌써 그리운 그 밤의 온기다. 동시에 함께 보낸 시간 동안 긴장과 불안을 잊었다는 걸 깨닫는다. 달력의 날짜는 차갑게 지나갔지만 나는 차분하게 암기를 시작한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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