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소노 아야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책읽는고양이

by 정다

스물에는 서른이 오기 전에 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친구들은 내 말을 가만히 들어줬다. 요즘말로 '글쿤' 정도의 태도였는데, 그날이 오겠냐며 아주 먼 미래처럼 여겼기 때문일 거다. 이십 대의 하루는 길었고 십 년은 짧았다. 진짜 29살 12월 31일은 다가왔고,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본 고통을 겪었다. 죽지는 않았다. 엄마가 되어버렸다.

그 당시에 이십 대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가. 돌이켜보면 대단히 폭력적인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구태여 내가 나를 죽이는 잔인한 방식이라니.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의 생후 30일, 50일, 100일을 세어가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꼈다. 정작 내 나이는 잊어가면서 말이다. 덕분에 나는 몇 살이 되면 죽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게 아이 때문에 산다는 말일까. 아이 덕분에 산다는 말이 바른 말일 거다.


소노 아야코의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마흔부터 적은 메모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자주 씻을 것부터 자살하지 말 것까지 짧은 글에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좋지만 세 번의 개정판을 내면서 달아놓은 세 개의 서문과 후기가 제일 좋다. 40의 아야코, 50의 아야코, 64의 아야코의 세월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서문 <자기 구제의 시도>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 사람이 다름 아닌 그 사람이라는 필연적인 이유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분명히 실감하게 된 것이다."

다시 스물의 나를 아이 대하듯 너그럽게 바라보자면, 지금껏 이룬 것도 없고 앞으로 이룰 것도 없다는 두려움이었을 거다. 왜 그리 조급했을까. 하기야 무엇이든 기다려야 한다는 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배웠기 때문에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삶은 길다. 소노 아야코가 같은 책을 세 번이나 개정할 만큼. 그러니 잃거나 놓치게 될 무언가를 셈하며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바깥에 나가 어제는 보지 못했던 들꽃 한 송이를 발견할 테다. 그 꽃의 이름을 찾아보고 아이에게 알려주고 함께 불러보는 즐거움을 오래오래 맛보고 싶다. 세상에 존재했지만 내가 몰랐던 영역을 넓혀가는 기쁨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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