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다 Apr 12. 2023

우리는 다른 모양의 테두리가 필요하다

영화 <결혼 이야기>


너무 현실적이라 영화 같지 않은 영화. 다만 스칼렛 요한슨의 존재감으로 중간중간 영화라는 감각을 일깨워줄 뿐이다. 표면적인 갈등은 LA에서 살고 싶은 아내와 뉴욕에서 살아야만 하는 남편이다. 이런 사유로 이혼하기엔 그들에겐 귀여운 아들이 한 명 있고 공유했던 무수한 행복의 순간이 넘쳐난다. 


    부부는 상담을 하러 간다. 상담자는 서로의 장점을 편지에 써오라고 한다. 남편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아내는 헤어지는 것만이 답이라는 태도로 화를 낸다. 이 마음 어찌 모를까. 남편은 문제가 없어요, 물론 저도 문제가 없고요. 단지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을 뿐이랍니다,라는 듯한 태도. 서로에게 허물 수 없는 벽 때문이 아니라 이미 허물어져 버렸지만 영역 만이라도 지키고 싶은 심정일 거다.


    "차라리 사랑이 식었다면 쉬웠을 거예요"

    아내가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하는 이유를 말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명대사다. 이미 마음으론 수십 번 이혼해 본 나도 항상 같은 생각을 했었다. 차라리 사랑이 식어버렸다면 쉬울 텐데 말이다.


    가장 여운이 오래 남은 장면은 부부가 각자 변호사와 함께 만나 이혼 조건에 대해서 협의하는 장면이다. 점심 메뉴를 고르는데, 남편은 너무 많은 메뉴에 뭘 먹어야 할지 몰라한다. 아내는 남편의 샐러드를 대신 주문해 주며 드레싱을 빼달라고 한다. 이혼하려고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남편의 입맛대로 식사를 주문해 주는 아내라니. 그럼에도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엔딩에는 부모의 역할만 남은 남녀가 나온다. 여자는 잔디밭에서 뛰놀며 웃고 남자는 여자에게 잠든 아이를 건네받아서 차에 태운다. 어쩐지 남자는 웃을 일 없는 사람처럼 쓸쓸해 보였다. 


    여자는 변호사에게 "결혼 생활에서 남편은 태양 나는 달이었어요. 태양이 비추어 주어야만 빛 나는 존재인 달, 말이에요."라는 말을 했었다. 이 대사는 내게 질문으로 다가왔다. 결혼의 탈출구가 과연 이혼일까? 혹시 전통적인 관념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는 영화 중반부에 멈추어 내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어 가고 있나 생각에 잠겼다. 


    영화와 달리 현실은 결말을 알 수가 없다. 끝이야 어떻든 오늘만 나눌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남편과 나누고 싶다. 남편과 내가 만들어 가는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