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인생이 괴로운 나에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by 노용기

내가 가는 이 길이 맞을까?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 던지는 질문이다. 내 길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끊임없이 되뇌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살면서 자신이 가는 길에 확신이 서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삶에 확신이 서지 않는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타인의 꿈을 따라 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부모가 바라는 꿈과 남이 볼 때 좋아 보이는 꿈 사이 어딘가에 내 꿈을 위치해 놓았기 때문 아닐까? 그러니 자기 확신 없는 인생길에 의문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자주 방향을 바꾸게 된다. 그래서 방향보다 속도에 집착한다. 정북을 향하기보다 남보다 빨리 그리고 높이 오르는 것에 목적을 둔다.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자위한다. 하지만 이것이 자신도 모르게 경쟁에 내몰리는 이유다. 경쟁 사회에서는 남보다 뒤처지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기회가 보일 때마다 차선을 바꿀 수밖에 없다. 내가 가고 있는 길에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을 때, 내 앞길은 꽉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런데 다른 차선에서는 차들이 쌩쌩 지나갈 때, 지금 가는 그 길대로 가다가는 왠지 한참을 뒤쳐질 것 같을 때, 불안감은 스멀스멀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가끔 인생이 꽉 막힌 도로 위에 차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최근 딸아이와 자전거를 탔다. 아이는 자전거 뒤에 앉아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우리는 평소에 차를 타고 그 카페에 가곤 했다. 그래서 아이는 카페로 가는 길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딸에게 카페로 가는 다른 길을 보여 주고 싶었다. 카페로 가는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널찍한 도로 대신 좁은 골목길들을 택했다. 차들만 지나다니는 지루한 길보다 오밀조밀한 골몰길 투어가 훨씬 흥미로웠다. 골목길에는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덕분에 자전거 뒷자리에 앉은 아이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하나로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때마침 서늘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 주기도 하였다. 자동차 엔진 소리 대신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길을 딸과 함께 자전거로 달리니 마치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방황하는 시간을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인생을 살기 원한다. 그래서 멘토를 찾고 합격 수기를 찾아보며 지름길을 찾는다. 남보다 빨리 가기 위해, 아니 최소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우리는 지름길로 가길 원하지만 빙빙 돌기도 하고 전혀 다른 길로 향하기도 한다. 마라톤처럼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한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인생은 그 자체로 고행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나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인도자가 있다면, 어쩌면 내가 가고 있는 그 길이 잘못된 길이 라거나 벗어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도자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길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그 길을 통해 내 작은 시야로는 생각조차 못했던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삶을 나누며 더 넓은 세계로 내 인생을 확장시켜 주고 싶은 것이다. 앞 서보기도 하고 뒷서 보기도 하면서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여러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냇물이 아닌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넓고 깊은 호수와 같은 마음을 갖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계속 걸어도 되고, 때론 방향을 바꾸어도 된다. 지름길만을 찾아 방황하기보다 어느 인생 길이든 천천히 산책하는 마음으로 걷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 너머에는 한 가지 길만 존재하고 있지 않는가? 바로 흙, 죽음 말이다. 그 길을 애써 빨리 갈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인생길을 순례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걷는 것이 더 괜찮은 삶이 아닐까? 방황하는 인생이 어쩌면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른다. 현재 내 모습을 10년 전 아니 불과 1년 전에 예측이나 했는가? 그렇지 않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방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불안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대신 나에게 더 넓은 세계를 보여 주고자 하는 인도자의 안내를 따라 인생길을 떠나는 여유를 누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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