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나에게

by 노용기

우리는 하루 대부분 시간을 직장에서 보낸다. 일반적으로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저녁 6시에 퇴근을 하는데 보통 이를 두고 하루 8시간을 근무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상사의 눈치로 인하여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회사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으며 퇴근 역시 1시간 늦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실제 근무 시간은 하루 10시간 정도가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점심시간 1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점심시간은 근로 시간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우리가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은 하루에 11시간이다. 게다가 출근 준비하는 시간 출퇴근 통근 시간까지 합한다면 보통 하루 최소 12시간 이상을 회사 일에 사용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는 하루의 반 이상을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 보낸다. 또한 우리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때인 20대부터 40~50대까지 직장에서 일을 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다.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의 학창 시절의 대부분도 어쩌면 20대부터 일을 하기 위해 보냈는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일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현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세 시대 귀족처럼 대신 일을 해 줄 수 있는 하인이나 농노가 있지 않다. 우리는 스스로 일을 하여 벌어먹고살아야 한다.


나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바로 일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내고 있는데 그 일하는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 말이다. 실제로 그저 매일매일 내 컴퓨터 이메일 계정으로 전달되는 업무 처리 요청에 답하느라 하루를 모두 다 써버리고 퇴근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면 가끔 우울감과 함께 인생의 허무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일을 하면서 행복과 희열 그리고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은 항상 나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이 내 인생에서 의미가 있을지, 이 세상을 마감할 때 내 인생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비록 직장생활 10년이 조금 되지 않은 짧은 경력의 소유자지만, 지금까지 일에 대해 내가 느낀 생각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꿈을 이룬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오랜 기간 나는 괴로워했다. 결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했기에 취업을 했지만 그 괴로움이 계속됐다.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꿈과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았으나 내 마음속은 '이건 내 꿈과 아무 상관이 없어'라는 생각에 그저 허무감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그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내 마음속에 불씨로 계속 남아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꿈에 대한 나의 생각과 태도가 조금은 변했다. 바로 '꿈을 이룬다고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씩 내 마음속에 자리를 잡아간 것이다. 나는 비록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의 목표들을 하나씩 이루며 살아왔다. 그 목표들을 이루기 전에는 '내가 목표만 이룬다면 내 인생은 행복해질 거야.'라는 생각과 믿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표를 이루었을 때 나는 하늘을 날 듯이 기뻐했다. 마치 그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목표 이루고 느꼈던 행복은 짧게는 1주일 길게는 3달을 넘지 못했다. 결국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다시금 정체감을 느낄 때쯤 나는 다시 목표를 세우는 일을 반복했다.


사실 많은 유명인들이 꿈을 꾸라고, 꿈을 이루라고 말한다. 나는 꿈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꿈을 꾸는 것 그리고 꿈을 이루는 것 역시 잠시지만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다만 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꿈과 현실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꿈은 계속 바뀐다. 대부분 어린 시절 과학자를 한 번쯤을 꿈꾸었을 것이다. 로봇 과학자가 되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는 꿈 말이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면서 그 꿈은 의사, 변호사, 판사로 변하다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면 초봉 4,000만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회사원을 꿈꾼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다 보면 CEO가 되어 나만의 사업체를 갖는 꿈을 꾸기도 하고, 어릴 때 꿈꾸었던 피아니스트나 연기자 등을 다시 꿈꾸기도 한다. 꿈은 이처럼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계속 바뀐다. 그리고 꿈을 이루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계속 새로운 꿈을 꾼다.


꿈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우리는 꿈을 꿀 때 좋은 면만 보게 된다. 과학자가 되면 멋진 로봇을 만들고, CEO가 되면 많은 직원들을 거느리고 높은 자리에 앉아 회사를 경영하는 면을 보며 꿈을 꾼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게 떠 있는 것 같지만 그 물 밑에서는 힘들게 발을 앞뒤로 휘젓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최근 아나운서에서 변호사로 변신한 한 분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하였다. 그분의 꿈은 어릴 적부터 아나운서였다. 그래서 기상 캐스터부터 시작하여 오랜 시간을 거쳐 마침내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나운서도 엔터테이너로 인식되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할 수 있는 방송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나운서 일을 하면서 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던 중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지금은 아나운서 일을 내려놓고 변호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인터뷰에서 변호사가 되어 보니 이 직업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전문성을 더 인정받아 좋더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나는 앞서 꿈을 이룬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행복은 어디 있을 것일까? 내 생각에는 행복은 꿈을 이룰 때보다 꿈을 꿀 때 있는 것 같다. 나의 어릴 적 꿈은 286 컴퓨터를 갖는 것이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집에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나의 미래를 위해 거액을 들여 컴퓨터를 사주셨다. 당시 컴퓨터는 주문하고도 2주를 넘게 기다려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조금씩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그 컴퓨터를 갖게 되면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침내 나는 컴퓨터를 받게 되었고, 한동안 밤을 새 가며 컴퓨터에 몰입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내 컴퓨터는 구형이 되었고, 나는 새로운 컴퓨터를 원했다. 또한 때로는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비록 어린 시절 나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일에 대한 꿈보다는 무엇을 가지고 싶은 꿈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꿈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꿈은 계속 바뀌고, 꿈과 현실은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인생을 내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꿈이 있는, 꿈을 꾸고 있는 지금의 행복을 즐기고 누리고 사는 것이 인생을 사는 지혜가 아닌가 싶다.



2. 내가 있는 직장이 누군가에게는 꿈꾸는 곳이다.


몇 년 전 나는 이직을 생각하며 열심히 이력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내 친구 중 한 명이 직장 동료와 함께 우리 회사를 찾아왔다. 방문 이유인즉, 내 친구의 직장동료 분이 내가 다니는 회사에 입사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 입사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회사를 한 번 방문을 하고 싶어 해서 외근을 나왔다가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고, 마침 나도 시간이 되어 우리 회사에서 잠시 미팅을 가졌던 것이었다.


나는 내가 다니던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친구의 직장 동료분과 한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분이 입사할 수 있도록 이력서 작성 및 면접 방법 등 여러 가지로 도움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고, 내 친구의 동료 분도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다녔던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그 후로도 나는 가끔씩 내가 다녔던 그 회사에 입사를 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또 가끔씩은 현재의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에 입사를 원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물론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도 회사 그만두고 다른 회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있는 직장이 누군가에게는 입사를 꿈꾸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 말이다.


사실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 지원을 할 때면,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입사를 원하는 저 자리에 누군가가 일을 했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누군가는 그 일이 싫어 떠났겠구나'하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공석이 발생하여 채용공고가 나는 것이라 생각을 자주 한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자리도 내가 떠나면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 이력서도 쓰고, 면접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수고를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리고 혹시 이직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즉, 입사 전에는 내가 지원하려고 하는 그 자리는 누군가가 싫어 떠난 자리다. 입사 후 내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내가 있는 이 자리는 누군가가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자리다. 대게 입사 전에는 막연히 좋은 면만 보고 들어갔다가 이내 생각과 현실이 다름을 깨닫고 일에 대해 불만이 쌓이기 마련이다. 즉, 입사 전에는 좋아 보이다가 막상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면 안 좋은 면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꾸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한 번쯤은 '내가 있는 곳이 누군가는 꿈꾸는 자리'라는 생각을 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3. 일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결정감과 연봉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게 겉으로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 그렇게 말하는 삶을 들여다보면 돈이 삶의 중심인 경우도 많이 있다. 사실 돈은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돈은 무시할 수도 경시 여길 수도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직업의 선택에 있어 연봉을 포기하는 것이 지혜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봉이 전부는 아니다. 연봉은 내가 불만을 느끼지 않을 최소한의 정도만 받으면 된다. 높은 연봉만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영 컨설턴트들은 높은 연봉을 받는다. 1억 원 이상을 받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봉만으로 봤을 때는 연봉 1억 원을 받는 다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기 때문이다. 실제 월급을 일하는 시간으로 나누면 일반적인 직장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수입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허츠버그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동료들과 피츠버그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하였다. 면접을 통해 허츠버그는 직장인들이 일을 하면서 만족과 불만족을 일으키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밝혀내었다. 연구 결과 연봉은 만족과 불만족을 일으키는 요인이었다. 즉, 연봉 낮으면 불만족하고, 높으면 만족했다. 그러나 연봉이 높다고 해서 가슴이 뛰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가슴을 뛰게 하는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자기 결정감이었다. 자기가 스스로 일을 선택해서 성취하고 스스로 성장했음을 느낄 때 가슴이 뛰었다.


나는 연봉 수준을 불만족하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봉이 높다고 실제 직업적 행복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 나는 한 두 차례 이직을 하면서 꽤 많은 연봉 상승을 경험했다. 이는 첫 직장의 연봉이 매우 낮기 때문이기도 했고, 이직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실제 연봉이 많이 상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드디어 내가 오랫동안 바라고 원하는 연봉을 받았을 때 나는 한동안 행복했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겉으로 표현한 적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일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매우 체계화된 조직에서 그저 회사의 규정에 따라 일을 해야 했을 뿐이었다. 그 전 회사에서는 비록 연봉은 적었으나 내가 스스로 기획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었다. 직급은 높지 않았으나 많은 결정 권한이 부여되어 있었다.


결국 일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높은 연봉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불만족스럽지 않은 연봉을 받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 직업적인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높은 연봉을 받고 노예처럼 일하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낮은 연봉으로 인하여 궁핍한 삶을 사는 것도 모두 행복한 길은 아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내가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곳이 아니라 남의 일을 해주고 용역의 대가를 받는 곳이다. 내 맘대로 일을 하겠다면 스스로 사업체를 차리는 것이 낫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가 원하는 일에 대해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그에 불만족스럽지 않은 합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회사에서 일을 마친 후에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 나는 돈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일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이다.






나는 몇 년 전 한 여성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시댁에 갈 때 많은 고민이 된다는 것이었다. 왜? 시댁에 가야 하는지? 시댁에는 꼭 가야 하는지? 고민스러워 시댁 가는 것이 부담스럽고 때론 싫다는 것이었다. 반면에 나의 아내는 시댁 갈 때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저 어머니가 밥 먹으러 오라면 가고, 제사 있면 가고 하는 편이다. 즉, 시댁 가는 것에 대해 별 고민이 없다.


나는 시댁 갈 때 고민하는 그 여성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직장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가 그 여성분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직장을 다니면서 나는 항상 생각과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고민의 핵심에는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 내가 무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고, 찾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답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으며,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는 질문 중 하나이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고민 없이 시댁에 가는 나의 아내처럼 나도 회사를 갈 때 당연스레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싶었다. 아무 고민 없이 그저 매 달 받는 월급에 만족하고, 그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고민은 계속되었고, 여전히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육아휴직을 하며 지금까지 내가 찾은 답이 위에 적은 세 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의 고통 가운데서도 내가 희망을 찾는 이유는 내가 남들이 얘기하는 대로 사는 인생을 살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여전히 뉴스나 신문 그리고 포털사이트의 다양한 기사들을 보면 연봉과 복지, 근무조건 등 외견상 보이는 것들을 비교하며 어느 회사가 좋은지 비교하기 바쁘다. 나도 그렇고, 아마 취업 또는 이직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기사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기사들과 그런 기사들의 영향을 받는 태도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기사들은 참고할 만한 가치는 있고, 정보 공개와 공유의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내 인생의 답은 누가 정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만의 답을 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유명인사들이나 저자들은 이러한 인생을 살라고 하지만, 대부분 그들도 그들이 말하는대로 인생을 살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러한 그들이 말하는 인생은 그들의 삶에만 적용 가능한 답일 수 있다. 즉, 내 인생의 답을 나 스스로 찾아야 하며, 유명인사들 또는 멘토들의 말은 내 인생의 답을 찾는 과정에 참고하는 조언 정도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아침 대부분을 나는 그동안 내 머릿속에서 머물고 있던 일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보았다. 여기에 적힌 글들이 앞으로의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나의 여정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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