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지 못해 방황하는 나에게

by 노용기

인생 계획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살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계획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다. 인생의 목표가 없는 것처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닐까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20대 중반 나는 60대까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인생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이제는 잊혀가고 있는 국내 최초의 SNS, 싸이월드 게시판에 한 구석 어딘가에 먼지 쌓여 있었다. 그러나 최근 우연히 싸이월드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의 추억들과 치기 어린 시절 세워놓은 계획 중에 지금 무엇을 이루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는 어렵게 잊힌 아이디와 패스워드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어렵게 로그인에 성공했다. 그리고 타임캡슐을 여는 설레는 마음으로 10년 전 나의 계획을 꺼내어 보았다.


나의 10년 전 내가 세웠던 계획은 지금 봐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쓰여있었다. 몇 살 때 어떤 조직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시기와 계획이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일을 하는 중간에도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60세 이후 은퇴 후에는 어떻게 남은 인생을 이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쓰여 있었다. 한동안 어렴풋이 기억 속에는 있었지만 뚜렷하게 텍스트로 되어 있는 계획을 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실 나의 계획은 20대부터 어그러졌다. 처음 인생계획을 적을 당시 20대 후반부터 60대 이후까지 삶의 계획을 적었는데, 처음부터 계획이 틀어진 것이다. 당시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회사에 입사를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일은 마치 나에게는 운명과도 같았고,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학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고,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하였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나는 한동안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아니 불과 몇 달 전까지도 힘들었다. 그 계획이 실현되지 못한 후부터 나는 인생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지 않았다. 그것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 그 꿈을 가슴속에 묻어 둔 채 일에서 만큼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저 당장 위에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을 뿐 그 일이 나에게 기쁨이 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열심히 하면 할 수록, 성과가 나면 날수록 허무감만 늘어갔다. 뭔가 잘못된 길을, 그것도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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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최근 어머니와 딸아이와 함께 오사카를 여행 했다. 여행 기간 내내 장마철이어서인지 오사카를 포함한 간사이 지방 전체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일기예보에서는 날씨 흐림과 비를 예보했고, 실제 여행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오사카에 도착한 둘 째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비가 내렸다. 그래서 나는 구글과 야후 날씨 검색을 통해 시간별 날씨를 파악하고 동선을 짜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최대한 도보 관광을 하고, 비가 내리는 시간에는 박물관이나 오사카 성 또는 카이유칸 같은 아쿠아리움 건물 안에 머물기로 했다.


스마트 폰이 있어서 인터넷 연결을 통해 실시간으로 날씨를 검색할 수 있어 여행에 참 유용했다. 그러나 때로는 비가 온다고 하는 시간에 비가 오지 않거나,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던 시간에 비가 오는 일도 자주 있었다. 슈퍼 컴퓨터도 날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했는데, 내가 구글과 야후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날씨가 너무 변덕스럽기도 하여, 처음에는 비가 온다고 표시되었다가도 몇 시간 후에 다시 검색을 해보면 구름만 끼고 비가 오지 않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대강의 날씨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정확히 앞날을 예측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여행 계획을 수정해야 했다. 오사카 인근 지역인 교토를 가려고 했다가도 비가 억수같이 내려 교토 여행을 취소하고, 오사카 시내에 있는 쇼핑센터나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온천으로 여행 코스를 수정하기도 하였다. 반대로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하여 박물관을 가려고 계획하였으나, 아무리 올려다봐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아 갑작스럽게 코스를 바꿔 기차를 타고 오사카가 아닌 다른 도시로 여행한 적도 있었다.


여행 계획을 수정한 것은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서 함께 한 6살 딸아이가 갑자기 아침 식사 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서서히 식은땀까지 흘리기 시작해 전철역까지 나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때도 있었다. 사실 그 날은 내가 이번 여행에서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아라시야마'에 가기로 했던 날이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인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예전에 여행 관련 방송에서도 보았던 곳이라 일본에 온 김에 한 번쯤 꼭 방문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다는데 여행을 강행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날 어머니와 나 그리고 딸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딸의 배를 만져주며 아이가 한국 집에서 가져온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책을 읽다가 우리는 거실 창가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아래서 낮잠도 잤다. 그리고 잠에서 깨자 아이는 배가 다 나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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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생 계획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점은 상황에 따라 계획이 바뀌듯이 인생의 계획도 계속 수정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단순하게 들리는 이 진리를 나는 근 10년간 깨닫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계획을 세운 후 달성되면 기뻐했다. 하지만 그 계획이 실현되지 못했을 때, 나는 좌절하고, 스스로를 실패자로 생각할 때조차 있었다. 왠지 한 번 세운 계획은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하고,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흔히 하는 말로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는 표현처럼, 계획을 세우고 금방 고치고 지우면 왠지 패배자가 된 느낌도 가지게 되었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배우 최민수 씨와 그의 가족이 나온 방송을 보게 되었다. 방송 전체를 다 보지 않아서 세부 내용을 알지 못하지만, 최민수 씨의 아들이 잠시 학업을 중단한다는 얘기를 가족들에게 전하자 최민수 씨 부부가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그때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최민수 씨가 아들에게 해 준 말이 있다.


바이크를 타고 가다가 길을 가다 보면 왼쪽 길이 있고 오른쪽 길이 있어.
그럼 뒤에서 항상 그래.
"형님, 어느 쪽으로 가야 돼요?"
그럼 아빠가 이렇게 말해.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가."
아들아, 꼭 맞는 길이 어디 있고, 틀린 길이 어디 있니?
그리고 그 왼쪽, 오른쪽 갈림길이 나중에 가다 보면 또 만나게 되어있어.
그래서 길은 길마다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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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인생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할 때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글이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 목표가 생겼다. 그 사람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그 앞에 거대한 산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산에는 다섯 개의 갈림길이 있었다. 그 사람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도저히 판단히 서지 않자 우선 가장 왼쪽에 있는 첫 번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길을 가도 가도 목적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이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다시 돌아와 그 옆에 있는 두 번째 길로 갔다. 이 길로 마찬가지로 아무리 열심히 가도 목적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돌아와 세 번째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끝내 목적지를 발견하지 못한 채 다시 ㄷ돌아오기를 반복했고 이제 나머지 하나의 길만 남겨 두게 되었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그는 남은 하나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산 정상을 넘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목적지에 도착한 그가 발견한 것이 있었다. 바로 첫 번째 길, 두 번째 길, 세 번째 길, 네 번째 길, 그리고 마지막에 끝까지 걸은 다섯 번째 길이 모두 끝에서 하나로 만나 목적지에 닿아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 글을 앞서 최민수 씨가 나온 방송을 통해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어머니와 6살 딸과 함께 했던 오사카 여행에서 실제 길은 달라도 결국 목표점에서 하나로 만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오사카에서 나는 날씨와 아이 컨디션 때문에 거의 매일 여행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면서 계획이라는 것이 꼭 한 번 세웠다고 강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사실밖에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원래 도보 여행을 하기로 계획했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가보고 싶어 했던 교토 아라시야마는 가지 못했지만, 나는 그 날 전철역에서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행복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 날을 오사카 여행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여행지에서 아이와 함께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여행의 원래 목표이자 계획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심사숙고하여 세운 계획을 우유부단하게 매번 계획을 바꾸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수정해 나갈 필요도 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릴 때 과학자를 꿈꾸었다고, 커서 과학자가 되지 못해 슬퍼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꿈의 형태는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뀔 수 있다. 다만 그 꿈을 꾸었을 때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만 그대로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과학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겠다는 마음만 계속 가지고 간다면 어떠한 형태로도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10년 전에 싸이월드에 적은 나의 인생 계획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20대부터 그 계획이 틀어져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실제 나의 인생 계획 중에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정확하게 이루어진 것은 없다. 내가 원했던 일,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꿨던 나이 등 모든 것이 틀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의 진정한 인생 목표였다. 바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나의 소명 말이다. 나는 지금도 다른 형태로 이 소명을 향해 조금씩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계획했던 인생길에서 멀어져 있다고 힘들어하지 말자. 아니 조금만 힘들어 하자. 모든 일생 길에는 다 각자 의미가 있고, 언젠가 그 길은 어떤 형태로든 나의 인생 목표점에 닿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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