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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Mar 22. 2016

핀란드 사람들의 저녁이 있는 삶

    오후 4시. 수업을 마치고 헬싱시 시내에 있는 근처 해변을 찾았다. 저 멀리 포니테일을 하고 금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한 여자가 뛰어온다. 그 뒤로 선글라스를 쓴 근육질의 남자가 뒤따라 뛰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또 그 뒤로... 계속 사람들이 뛰어온다.


    '뭐야? 아직 4시밖에 안되었는데... 회사 안 다니나?'


    한 두 사람 정도라면 이해할 수 있다. '오늘 휴가인가 보군'하며 말이다. 그런데, 한 둘이 아니다. 무슨 스포츠 회사 광고처럼 것처럼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사람들이 계속 뛰어나온다. 마치 마라톤 경기라도 하듯 사람들이 줄 지어 러닝을 하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따뜻한 햇살 아래 양 쪽 귀에 이어폰을 꼽고 넓게 펼쳐진 해변을 따라 여유롭게 달리고 있었다.


    '뭐지...? 뭐지...? 이 사람들의 정체는 도대체...'


    오후 4시면 한창 일할 시간이다. 6시 정시 퇴근이 가능한 직장인들에게 오후 4시는 마지막 고혈을 짜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넘기면 밥 먹고 가라는 사람들이 유혹 속에 야근의 덫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핀란드 헬싱키의 도시 남녀들은 그 시간에 해변과 도심을 가로지르며 러닝을 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프리랜서인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백수? 유럽은 복지도 잘 되어 있다는데, 헬싱키 사람들도 나라의 지원을 받으며 저렇게 여유롭게 사는 건가? 그들에게 다가가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매일 운동으로 단련된 탄력진 몸과 180센티미터의 길쭉한 다리로 쭉쭉 뻗어나가는 그들과 나란히 달리는 것조차 나에게 역부족이었다.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 건 헬싱키에서 만나게 된 한 헬싱키 주재원을 통해서이다.

"헬싱키 사람들은 오후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현지 주재원의 집으로 초청을 받아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평소에 궁금한 것들을 하나씩 물어보았다.   

 "여기 사람들은 오후 4시만 되면 운동을 해요. 보통 퇴근 시간이 오후 3시이니까. 3시만 되면 여기는 러시아워예요. 평소에는 차들이 별로 안 보이다가도 3시부터 4시 사이에 도로가 꽉 막히죠."

"예? 3시에 퇴근을 한다고요? 아니 일은 언제 한데요?"

"점심도 안 먹고 일해요. 회사에서는 정말 일에만 집중하고 딴 거 안 해요."

"그렇게 너무 집중해서 일하면 회사에서 진이 다 빠져, 집에 오면 지쳐서 쓰러질 만한도 한데..."

"하하... 그럴 수도 있지만 여기 사람들은 노후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늙어서까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엄청 많이 하죠."


    여러 가지로 많이 달랐다. 내 삶의 모습하고 말이다. 매일 저녁 굶주린 강아지처럼 지친 몸을 이끌고 겨우 집에 도착한다. 샴푸도 제대로 씻겨내지 않은 채 샤워를 마친다. 허겁지겁 저녁식사를 하고 바로 침대로 직행한다. 매일 악순환의 사슬 끊지 못해 괴로워하는 이런 나의 모습과 그들의 삶은 너무도 달랐다. 내가 본 헬싱키 사람들은 매일 아침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여유롭게 자전거 도로를 따라 출근을 한다. 그리고 오후 4시가 되면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해변가를 달린다. 운동을 하는 이유도 다르다. 여름철 해변에서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몸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노년에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란다. 물론 그들에게도 젊은 날 아름답게 몸을 가꾸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 노년의 건강한 삶까지 생각하고 매일 오후 4시면 집 밖을 나와 운동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마치 하루살이처럼 매일 회사와 집만 오가며 조금씩 불치병을 키워가고 있던 나와는 다른 삶이었다. 내가 너무 좋은 면만 본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왕 다른 나라에 왔으니, 그 나라의 좋은 것을 보고 내 삶에 적용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있는 삶'은 나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저녁은 평일 가족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나는 아내와 아들의 눈을 마주 보고, 서로에게 미소를 건네며, 서로의 볼과 손을 부비며 하루를 위로받는다. 또한 저녁은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마음에도 없는 사람들 틈에 부대끼며 지쳐있는 나에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충천의 시간이다. 단지 잠만 잔다고 충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때론 땀 흘려 운동하면서 나를 돌아볼 때 비로소 진정한 완충이 되는 것이다. 언제부터 그리고 어디서부터 저녁 있는 삶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는 희미해졌지만, 그 소중한 저녁을 되찾겠다는 마음만은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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