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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로비오 - '앵그리 버드' 본사 방문기

by 노용기

한산한 일요일 아침. 대학원 동기 한 분이 헬싱키 외곽에 있는 한인 교회를 찾았다. 예배를 마치고 친교의 시간,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인 로비오(Rovio)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로비오는 '앵그리 버드'를 제작한 개발사이다.


앵그리 버드는 앙증맞은 캐릭커와 단순한 조작법 등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대학원 동기는 로비오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에게 기업 방문이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핀란드에 머물면서 마리메코(Marimekko)를 포함한 몇 개의 기업 방문 일정이 있었다. 여기에 핀란드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스타트업인 로비오를 방문할 수 있다면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에게 좋은 추억과 경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로비오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의 배려로 나와 동기들은 로비오를 방문할 수 있었다.


로비오는 헬싱키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에스푸 (Espoo)에 위치 해 있었다. 동기 중 한 분이 버스를 대절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헬싱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향하는 도로를 탔다. 저 멀리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그리고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s)으로 잘 알려진 슈퍼셀(Supercell)이 보였다. 20~30분즘 지났을까? 어느덧 버스는 로비오 본사 앞에 도착했다.


로비오에서 우릴 맞이 해 준 것은 동기 중 한 분이 교회에서 만났다고 했던 한국인 직원이었다. 그는 짧은 헤어에 구레나룻에서 턱까지 길게 턱수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흡사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겐도와 같았다. 그의 외모에서 회사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 그는 따뜻한 환영 인사를 건넨 뒤 우리를 로비로 안내해 주었다.


로비에 들어서자 널찍한 공간에 들어선 기념품 숍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로비오에서 만든 앵그리버드 티셔츠, 머그잔 등 다양한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었다. 로비오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듣고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개 층을 더 올라가 미팅룸으로 장소를 옮겼다. 미팅룸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앵그리버드 음료수 자판기와 회사 내에서 바비큐 파티가 가능한 30평 정도 되는 라운지가 보였다. 라운지에는 창문을 통하지 않고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개방 구조로 되어 있었다.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잠시 로비오 직원들의 파티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음료수와 맥주캔 등 바비큐 파티의 흔적이 보였다.


로비오 사무실 내 자판기에서 무료로 뽑아 먹을 수 있는 음료수


직원들을 위한 복지 시설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저기 통로를 따라 마침내 수십 개의 의자가 놓여 있는 미팅룸에 도착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한국인 직원분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시간이 오후 4시인데, 이미 퇴근을 한 직원들도 있고, 5시 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을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저희에게는 1시간 정도 시간이 있는데요. 그 사이 제가 저희 회사와 여기 생활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궁금하신 내용에 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몇 가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음은 그가 해 준 말 중에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내용은 요약한 내용이다.


1. 10시 전과 오후 3시 이후에는 미팅 금지!

로비오의 공식적인 출근 시간은 오전 10시이다. 그리고 공식적인 퇴근 시간은 오후 3시이다. 그러므로 미팅은 오전 10시 이전과 오후 3시 이후에는 잡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우리나라 일부 기업에서는 아직도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출근 시간이 오전 9 시인 경우, 미팅 시간은 오전 8시 또는 심할 경우 7시가 되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공식적인 퇴근시간인 6시가 가까워 오는 5시 30분에 갑작스럽게 미팅이 소집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팅이 끝나면 저녁 9시를 넘기는 경우도 있다.

로비오에서는 공식적인 근무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총 5시간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그 시간에 주어진 모든 일을 끝마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집중해서 일을 한다. 점심식사를 원하는 직원들은 사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지만 대부분은 샌드위치나 샐러드를 먹으며 일을 한다.


2. 확실한 이유가 있는 야근만 허용.

야근을 하려면 확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직원들의 대부분은 야근을 하지 않는다. 회사에서도 야근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한다. 야근 수당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야근을 자주 했던 한 직원은 월급의 2배 넘게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한시적으로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였다.

예전에 국내 연구소에 다녔던 한 지인으로부터 야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이 일과시간에는 대충 일하거나 딴짓을 한다. 그러다 저녁 6시가 되면 하나 둘 츄리닝으로 갈아 입고 일에 몰두를 했다고 했다. 너무 비효율 적인 것 같아 뭐하는 짓인가 생각이 들어 몇 달 일하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정시 퇴근을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아직도 야근을 근면성실과 회사에 대한 충성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시간당 노동 생산성은 매우 낮은데도 말이다.

실제 로비오에서 1시간가량 미팅을 마치고 오후 5시 즘 회사를 나오면서 사무실을 훑어보았다. 대부분 직원들은 퇴근을 하여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리고 통로에 있는 문들도 대부분 잠겨 있었다. 회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열광적인 콘서트를 마치고 관객 대부분이 떠난 텅 빈 공연장 같은 느낌이었다.


3. 연차 30일 + 크리스마스 2주 휴가 = 1년 54일의 정기 휴가

로비오에서 일 년 정기 휴가는 30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추가로 12월 크리스마스가 오면 2주 휴가를 받는다. 이는 로비오뿐 아니라 대부분의 핀란드 회사에서 적용하고 있는 휴가 규정이라고 한다. 30일 휴가 동안 사람들은 해외로 장기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15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근무년수가 2~3년이 지날 때마다 하루씩 휴가 일수가 증가한다. 요즘 우리나라도 휴가를 장려하는 분위기로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여전히 휴가만 내고 회사에 나와 일을 하거나 15일 휴가를 다 사용하지 못하여 1년을 마무리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핀란드는 인구가 적다. 핀란드는 우리나라보다 면적이 3배 넓지만, 인구는 우리보다 1/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여름이면 대부분 해외로 여행을 가니 헬싱키 시내는 텅 비게 된다. 실제로 헬싱키 시내의 오페라 하우스도 관광객이 몰리는 7~8월에는 공연이 없다. 내가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주인도 헬싱키에 있는 마케팅 스타트업에서 일하는데 1달간 요트 여행을 떠나느라 집을 비우고 렌트를 한 것이었다.


4. 휴가기간에 메일은 금지!

로비오에서 일하는 한국분은 처음에 30일 휴가를 받고 적응이 안되었다고 한다. 본인도 한국사람이고, 한국기업에서 일해보았던 경험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30일 휴가를 받았지만, 15일만 여행을 가고 나머지 기간은 집에서 메일을 확인하며 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료들로부터 돌아온 메시지는 '휴가기간에는 일하지 마세요!'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 휴가부터는 이메일일 열어보지도 않고 30일 휴가를 모두 사용했다고 한다.

나는 한 때 워크홀릭이었다. 휴가를 가면서도 한쪽 귀에는 블루투스 헤드셋을 착용했다. 휴가기간에 대한 안내를 했지만 계속해서 업무상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휴가기간에 대한 안내를 한 것은 연락하지 말라는 의도보다는 그 기간에는 정상적인 업무 처리는 어려우니 사전에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멋진 풍광을 보면서도 내 마음은 사무실에 있었다. 아내는 열심히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고, 나는 한쪽 구석에서 연신 통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휴가기간에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본인들의 요청사항은 빠짐없이 나에게 전달하였다. 여행지 숙소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잠이 들고나면 나는 조용히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메일함을 열었다.

휴가를 휴가 답게 쓸 수 있는 것은 회사 내 휴가규정뿐 아니라 직원들끼리 만들어 낸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기간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서로를 위한 배려 문화 정착되지 않았다면, 30일 동안 진정한 '쉼'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계 본사 직원들은 휴가 기간 동안 전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한국에서 급하다고 메일을 보내도 휴가기간에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한국 직원들도 적응하여 휴가 기간에는 유럽 본사 직원에게 업무 요청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5. 수익성보다 도전적이고 재밌는 일을 먼저 추구한다.

로비오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수익성보다는 '이 프로젝트가 재미있는가?'를 먼저 자문한다고 한다. 기업에서 수익성을 중요한 지표다. 그러나 직원들 스스로 재미가 없다면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실제 로비오에서는 직원들 스스로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재미있고 도전 가치가 있다고 느낄 때 많은 아이디어들을 낸다고 한다. 미팅 시간 모두 입을 꼭 다물고 상사의 의견만 구하는 우리나라 몇몇 기업에서의 미팅 현실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BA 과정에서 Design Thinking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파슨스 스쿨의 교수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 주셨다. 그분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은 사업 현실성과 수익성을 먼저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먼저 하다 보면 창의성이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회사를 다니며 굳어진 생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수업이 계속될수록 사업 현실성과 수익성을 생각하지 않으니 동기들의 머리에서 정말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아이디어를 조금씩 구체화하여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단지 생각의 순서만 바꾸었는데, 수업은 활기를 띠고 창의적인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핀란드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는 이유중 하나가 도전과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 외에도 제도적으로 실업 후 기존 급여의 70%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로비오뿐 아니라 핀란드 국민들은 실업을 당해도 기존 급여의 70%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실업은 곧 경제적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도전의식을 갖게 해준다. 핀란드에서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실업에 대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기 때문이라고 로비오에 근무하는 한국 직원은 설명했다.


로비오에서 기업 방문을 마치고 우리는 헬싱키 시내로 돌아왔다. 우리는 헬싱키에 도착하여 핀란드 가정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로비오 한국 직원도 함께 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 회사에서 시간상 미처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싱가포르와 영국 등 몇 개 나라의 회사를 거쳐 핀란드 로비오에 입사했다. 영국에 있었던 회사에서는 인종차별도 있었지만, 여기 로비오 직원들은 자신이 처음 왔는 때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지금도 모두 친절하게 대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핀란드에 정착을 하려고 생각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삶이 부러웠다. 그리고 다시 돌아갈 한국에서 언젠가는 그가 살고 있는 삶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물론 9시 출근 6시 퇴근을 기본으로 하는 회사를 다니면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 스스로 업무 시간을 정할 수 있게 시기가 온다면 오전 10시부터 3시까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일 년에 한 달은 여행을 가는 삶을 살고 싶다.


물론 이런 꿈같은 이야기를 하자, 어떤 동기는 현재 헬싱키 경제의 하락과 로비오가 앵그리 버드 이후로 마땅한 후속작이 없어서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 다 맞는 말이다. 매일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과 1년에 온갖 눈치를 다 보면서 겨우 15일의 휴가를 쓰는 나 역시도 아직까지 '하루 5시간 노동을 하고 1달 이상 휴가 가면서 일이 제대로 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일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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