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사람은 살면서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초능력을 꿈꾼다고 생각한다. 마블의 주인공처럼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수퍼 파워를 가지는 초능력부터 부자가 되기 위해 로또 번호를 맞추는 초능력까지 그 꿈의 범위는 다양할 것이다. 나에게도 한 가지 있었으면 하는 초능력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갖고 싶은 능력은 바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돌아가 원하는 만큼 잠시 살다 오는 초능력이다. (말 그대로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초능력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는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그리고 육아휴직 기간 중에 7살 딸과 5살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 비행기에 올랐다. (참고로, 엄마는 서울에 남아 가족의 생활비를 책임졌다.) 10월의 제주는 바람이 참 많이 불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아이들과 많이 친해지고 육아에도 자신감이 생겼지만 한 달간 홀로 온전히 독박 육아를 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선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책임져야 했다. 당시 나는 제주도 생활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자동차 렌트를 하지 않았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특히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봐야 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렸기에 제주도 버스를 타고 마트를 오고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어른 걸음이면 15분이면 갈 수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 가다 보니 1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많았다. 아이들은 버스 정류장을 가면서도 중간중간 모래놀이를 하고, 길가에 굴러다니는 자갈에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이들을 재촉도 해보고 둘을 두 팔에 안고 뛰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이들을 재촉하는데도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30분마다 오는 버스를 번번이 놓치고, 저녁이 다 돼서 집에 돌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식량을 구하는 것 외에도 아이들의 건강 문제는 항상 나를 곤두서게 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월의 제주는 추웠다. 집 앞마당에 앉아 있으면 바로 앞에서 선풍기 바람이 부는 듯했다. 내가 한 달간 거주했던 집은 제주 바다 앞에 위치한 집이어서 그런지 바람은 더 강했고, 때로는 뼛속까지 시리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아이들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아침에 늦잠 자는 아이들과 늦은 식사를 하고, 돈을 절약해야 했기에 간식 도시락을 쌌다. 그렇게 집에서 나오면 11시가 넘는다. 오후 12시 즘 버스를 타고 미술관, 해수욕장, 숲 길 등 주변 관광지로 소풍을 갔다. 그런데 제주도는 바람도 많이 불고 지역에 따라 비도 자주 내려서인지 해가 저물 무렵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항상 아이들이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나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병원에 가는 것도 녹록지 않았기에 나는 아이들을 매일 따뜻한 물로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뜨근한 온돌 바닥에 이불을 깔아 체온이 내려가는 것을 막았다. 덕분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제주에서 한 달간 머무르며 병원 행은 피할 수 있었다.
한 달간 제주 살기는 다소 고행이었다. 텔레비전에서 보고, 책에서 읽던 것과는 달랐다. 아내와 단 둘이 함께 한 여행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어렸다. 그런데, 최근 제주에서 생활했던 사진과 동영상을 볼 때마다 그때가 참 그립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마 나에게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나는 그때의 제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한 사진을 보고 있을 때면 그때 했던 고생도 어느새 추억으로 바뀌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주인공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주인공이 어릴 때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그 영화를 여러 번 보았지만 그 장면에서 그렇게 감흥은 없었다. 오히려 주인공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장면들과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 기억남을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영화의 엔딩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나에게는 초능력이 없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아빠,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빠는 무엇을 할 거예요?" 나는 그때마다, "그런 일은 만약에라도 일어나지 않아."라고 무심히 말한다. 그러나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게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그때의 제주로 돌아가고 싶다. 아쉽게도 초등학생이 된 현재의 아이들 성장 속도는 너무 빠르다. 7살과 5살의 얼굴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없다. 다만, 그때의 천진난만함은 아직도 남아 있는데, 그래서 정말 더 늦기 전에 그때로 돌아가 보는 삶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그 기회가 된다면 이 번에는 아내도 함께 하고 그리고 자동차도 렌탈을 해야겠다. 고생은 그때 많이 했으니, 이제는 추억을 더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