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보이는 게 아니라 내 마음

태국 방콕 여행 - 5 일차

by 노용기

태국 - 사파리 월드


오늘은 방콕 시내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사파리 월드에 다녀왔다. 오전 10시쯤 숙소에서 나와 우버를 탔다. 방콕 외곽으로 나가는 고속도로는 도심과 달리 꽉 막히지 않았다. 방콕에 와서 처음으로 시원스레 도로를 달려 본다.


사파리 월드에 도착하여 티켓을 구입했다. 사파리 월드에는 두 가지 코스가 있다. 하나는 투어 버스를 타고 야생 동물들을 구경하는 사파리 파크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동물들과 돌고래 쇼, 스턴트맨 쇼 등 다양한 쇼를 관람할 수 있는 마린 파크로 나뉜다. 우리는 투어 버스 티켓을 구입하여 사파리 파크를 먼저 구경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탑승한 차량은 마치 30년 전 우리나라 도로를 달렸을 법한 낡은 버스였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운전기사 옆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동물들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다만 이 명당에 단점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좌석 앞 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사파리 파크 투어를 마칠 때쯤 내 다리는 쥐가 나는 것처럼 저리고 아팠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한다. 사파리 파크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이 양쪽으로 열리자 마치 아프리카 초원에 온 듯 펠리컨, 기린, 하마 떼들이 우리를 맞이 하였다. 사파리 파크는 흡사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태국의 사파리 월드는 미국 디즈니 월드의 사파리 그리고 우리나라 에버랜드의 사파리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두 곳이 예쁘게 단장 해 놓은 인공 정원 같다면, 태국의 사파리는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사파리 곳곳에는 땅이 패여 빗물이 고여 있었으며, 동물들은 그 진흙 웅덩이를 뒹굴 거리고 있었다. 또한 사파리 안에 있는 나무들은 어느 누구 하나 손질한 흔적이 없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유지 비용이 많이 들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러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았다. 그리고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다른 나라의 사파리와도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얼룩무늬로 깔끔하게 페인트로 칠한 버스가 아닌, 마치 폐차장에서 방금 꺼내 온 것 같은 버스를 타고 사파리를 투어 하니 사람이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IMG_4946[1].JPG 자연 그대로의 사파리 월드


사파리 월드 - 사파리 파크


우리는 사파리 투어 버스를 타고 사자들이 살고 있는 맹수 지역으로 들어갔다. 보통 사파리에 가면 사자들은 잠을 자고 있는데, 여기 사자들은 먹이를 찾듯이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사자들의 눈빛도 살아 있었다. 마치 내가 버스에서 내리기라도 하면 당장 달려들어 잡아먹을 듯한 기세였다. 방콕에 오기 전 사파리 투어 중 부부싸움으로 아내가 화김에 차에서 내렸는데 마침 지나가던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자의 눈빛과 날카로운 이빨을 보면서 순간 그 기사가 떠올라 살짝 움찔했다.


사파리 파크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전반적으로 사파리 관리를 안 한 듯 보이지만, 동물에 대한 관리는 제법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일부 동물원을 가보면 마치 영실 실조라도 걸린 듯이 삐쩍 말라 있거나 털이 다 빠져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동물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 사파리 파크에서는 그런 동물을 보지 못했다. 대부분 동물들의 영양 상태는 양호해 보였으며, 그들의 몸에 난 털도 보드라워 보였다. 게다가 맹수 지역에서 보았던 사자처럼 다른 맹수들의 눈빛도 살아 있어 이곳에서 나는 잠자는 동물원이 아닌 진정한 사파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제 투어도 거의 끝나간다. 40분이 넘는 투어 시간 동안 버스는 사파리 안을 천천히 달렸다. 덕분에 대부분의 동물들을 아주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버스가 천천히 달렸음에도 가끔 도로 앞에 홍학과 펠리컨 들이 비키지 않고 버티고 서 있어 조마조마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버스기사 아저씨는 내 무릎만큼 오는 작은 조류들은 경적도 울리지 않고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다. 나는 혹시나 그 새가 깔려 죽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IMG_4955[1].JPG 먹이를 찾아 어슬렁 거리는 호랑이



사파리 월드 - 마린 파크


사파리를 마치고 우리는 마린 파크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쇼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동물원에서는 처음 보는 스턴트 쇼였다. 서부를 배경으로 한 쇼인데, 아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잔인할 정도로 여기저기서 폭탄도 터지고, 사람을 도끼로 찍는 시늉도 하고 그런다. 게다가 폭탄과 장총 소리가 매우 커서 아기들은 쇼를 보다가 놀라기가 쉽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나름 스릴이 넘치는 쇼다. 쇼 중간에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등장하기도 하고, 2층 높이에게 고꾸라져 뛰어내리는 장면도 있기 때문이다.


쇼가 끝나고 우리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러 갔다. 여기서는 여러 동물들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그중에 기억이 남는 것은 기린과 바다코끼리였다. 나는 기린에게 먹이를 주기 전까지는 기린이 목만 긴 동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기린은 모든 게 길었다. 특히 혀가 굉장히 길었는데, 내가 당근과 바나나 등을 나무 꼬챙이에 끼워 주면 기린은 긴 혀로 꼬챙이에 꽂힌 야채와 과일들을 잽싸게 채갔다. 6살 딸과 4살 아들은 처음에는 먹이 주는 것을 무서워했지만, 이내 적응하여 서로 신나 하며 먹이 주기에 바빴다. 기린 먹이를 준 다음에는 바다코끼리의 먹이도 주었는데, 정말로 코끼리 만한 그 동물이 고등어 같은 작은 물고기로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러한 기린과 바다코끼리 먹이주기는 어지간한 동물원에게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라 나와 아이들에게는 나름 의미가 있었다.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나자 슬슬 우리도 배가 고파졌다. 때마침 하늘에서 빗방울로 조금씩 쏟아져 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간 식당은 뷔페로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식당은 대략 농구 코트 수십 개를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 홀을 갖추고 있었고 식당에 놓인 테이블도 100개는 넘어 보일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음식은 샐러드와 수프 등을 포함하여 총 10가지 내외 정도밖에 없었고, 그나마 그중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몽키 바나나 정도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다행이었던 것은 장인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은 그 식당에 있는 음식을 나름 잘 먹었다는 것이다. 다들 많이는 아니지만 한 두 접시는 비웠으니 말이다. 나는 며칠 전 장염이 걸린 탓도 있었고 그곳 음식이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아 그곳 뷔페 음식을 뒤로하고 비스킷 몇 조각으로 점심을 때웠다.


그나마 사파리 월드에서 음식 적인 부분에서 만족스러웠던 곳은 바로 동물원을 테마로 한 카페였다. 이곳에서 나는 가족들이 먹을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 그리고 슬러시 등 여러 가지 메뉴를 주문하였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메뉴는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였다. 아이스크림은 얼룩말 모양으로 된 작은 컵에 담겨 나왔다. 하얀색과 검정색상이 섞인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입에 넣자마자 스르르 녹으며 더위에 지친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나온 브라우니 안에는 초콜릿 한 덩어리가 액체 형태로 녹여져 있었다. 아마도 브라우니 안에 초콜릿을 넣고 전체적으로 뜨겁게 달군 듯했다. 뜨겁게 달궈진 촉촉한 브라우니와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조화는 정말 환상이었다. 아마 내가 카페 사업을 한 다면 이 곳과 계약을 체결하여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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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치며...


카페에서 기운을 차리고 우리는 오랑우탄과 바다사자 등 몇몇 동물들을 더 둘러본 후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사파리 월드를 나왔다. 더 보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늦으면 폐장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 아워 전에는 방콕 시내를 통과하여 숙소로 가야지 그나마 차가 덜 막힐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곳은 방콕 외곽이어서 그런지 우버는 부를 수 없었고 대신 사파리 월드 직원에게 요청하여 콜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장인어른께서는 오늘 하루 너무 많이 걸었다고 하시며 오자마자 바로 방으로 들어가셨다. 반면 하루 종일 땡볕에서 동물원을 거닌 아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수영장에 가자고 졸라 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체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오늘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밖에서 놀다 왔으면 지칠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그저 숙소로 오는 길에 택시 안에서 잠깐 10분 정도 눈을 부쳤을 뿐인데 그것으로 체력 충전이 다 되었나 보다. 나 같으면 한 2시간을 잠을 자야 체력을 충천될 텐데, 아이들은 잠깐 잠든 정도로도 완전 충전이 되었다. 역시 아이들과 나는 배터리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아이들의 배터리는 잠깐만 충전하면 하루 종일 써도 끄떡없는 신상이라면, 내 몸의 배터리는 자꾸자꾸 충전해줘도 조금만 사용하면 어느새 방전이 되어 버린다. 배터리를 새 걸로 바꾸면 되는데, 내 몸의 배터리는 새로 교체할 수도 없으니 막막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수영을 마치고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처음에 태국 방콕에 왔을 때는 이 곳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발유 냄새, 20~30분이면 갈 거리를 2시간이나 넘게 걸리는 교통 체증,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좀처럼 여유로움을 가지고 둘러볼 수 없었던 태국 왕궁 등 나에게는 어느 것 하나 그다지 마음에 와 닿는 구석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사파리 월드를 둘러보면서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마음에 들었고,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태국의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불쾌하기만 여겨졌던 오토바이 휘발유 냄새도 방콕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지고, 극심한 교통 체증도 방콕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여행의 일부라 생각되었다. 여행 5일 차가 되어 가니 점점 이곳도 익숙해지고 적응되어 가는 느낌이다. 역시 현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IMG_5071[1].JPG 새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모습. 사파리 월드에서는 다양한 조류들이 인큐베이터에서 커가는 과정을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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