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 여행 - 4일 차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포대기 속에서 번데기처럼 누워만 있던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다가 어느 순간 두 발로 서게 될 때, 그리고 아이의 작은 입에서 처음 아빠 엄마를 부를 때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아이는 매일 조금씩 몸을 뒤척이고, 일어섰다 넘어졌다는 반복 하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수도 없이 시도하며 성장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순간 아이가 첫 뒤집기, 첫걸음, 첫 한마디 말에 성공했을 때 부모는 그 짧은 순간에 놀라움과 경이로움 그리고 행복과 같은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을 아이와 함께 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의 그 첫 순간이 오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데 그 순간마저 매우 짧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양육하는 것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특히나 아빠들의 경우 아이가 성장하는 시기에도 가정 경제를 위해 일터에 나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한다. 그래서 아이가 성장해나가는 그 경이로운 짧은 순간을 목격하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대부분의 아빠들은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엄마들이 촬영해 준 동영상을 통해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이가 옹알이만 하다 처음 "아빠"를 외치는 모습, 매일 바닥을 기어가던 아이가 처음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번쩍 일어서는 모습들 말이다.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가끔씩 아내가 촬영해서 보내주는 영상으로 확인할 때가 많이 있었다. 아내는 그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나에게 오늘 아이에게 있었던 일을 말하지만, 나는 대부분 회사 일로 머리가 복잡하여 아내가 느낀 감흥의 10분의 1도 공감하기가 어려웠던 적이 많이 있었다.
하루는 퇴근 후 아내와 아이 둘과 함께 네발 자전거를 끌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온 적이 있었다. 어린아이들 자전거는 대부분은 부모가 뒤에서 자전거를 밀고 방향까지 조절할 수 있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처음에는 발 힘이 약하고 방향 감각이 없어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나는 첫 째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손잡이로 아이의 자전거를 밀어주고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운 소식이 있다며 이제 첫 째가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래?"하며 별 감흥 없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날 공원에 도착하여 아이가 자전거를 혼자서 타는 모습을 보았지만 왠지 남들 다 본 영화를 마지막에 본 것처럼 별 감동이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들의 성장과 관련하여 몇몇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이 번 방콕 여행 넷째 날에 그런 순간이 있었다.
첫 째아이는 수영을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첫째에게 수영을 좋아하는 게 꼭 물을 좋아하고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거랑은 조금은 다른 개념이다. 왜냐하면 첫째가 어릴 적 구명조끼 없이 튜브만 가지고 놀다가 그만 튜브를 놓치고 물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와 내가 수영장에서 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물에 뛰어들어가 아이를 구한 적이 있었다. 아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물에 빠져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상당히 겁을 먹었고 그 후로 한 동안 물을 무서워했다.
특히나 아이는 물속으로 얼굴을 넣어 잠수하는 것을 매우 무서워했다. 자기 발이 바닥에 닿아도 절대 물속으로 얼굴을 집어넣으려 하지 않았다. 아마 물에 빠졌을 때의 충격이 매우 컸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고 싶었지만 아이가 물을 무서워하는 것을 알기에 무리해서 가르치려 하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스스로 잠수를 시도하는 아이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다. 따로 가르치지도 한 번 해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아이 혼자서 도전한 것이다. 처음 잠수에 성공한 아이는 연신 재미있다며 혼자서 계속 잠수를 시도했다. 나는 오랜 기간 물에 대한 무서움을 떨치고 스스로 그 두려움을 극복한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아이 옆에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아이 바로 옆에서 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이게 격려와 칭찬의 한 마디를 해 줄 수 있어 아빠로서 참으로 뿌듯했다.
사실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집안은 어질러져 있고, 아이들은 계속 떼만 쓰고, 나 역시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피곤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화를 내며 혼내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된다. 왠지 나는 아이가 성장할 때 옆에서 칭잔과격려를 해 주는 아빠가 아니라 회사에서 돈을 벌어 집에 가져다주는 '돈 셔틀'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과 사이가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는 이러한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은 존재의 의미를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반대로 그 의미를 느끼지 못할 때는 마치 나라는 존재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면 당연히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으면 부모에게 달려와 보여 준다. 칭찬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한 칭찬을 통해 아이들은 성장하고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 그럴 때 부모가 옆에 있어 주어야 한다. 어른들도 회사에서 아무리 뛰어난 성과를 거두어도 아무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를 느끼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그리고 그 성장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만큼 부모와 아이에게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한다.
삶은 유한하다. 즉,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 우리가 죽기 전에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산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은 죽을 때 대학교 졸업장과 재산 목록을 찾지 않는다. 사람들이 죽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는다.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진다. 부장, 임원이라는 타이틀은 회사를 떠나면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죽을 때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 것처럼 돈도 영원히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현실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과 바꾸며 살만큼 가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행복한 순간들을 자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행복한 순간들이 쌓여간다면 우리의 존재 가치는 더 커져가고 우리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