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순리
나이가 들면 신체 기관이 하나씩 그 기능들을 잃어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한 밤중에 잃어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나거나, 그로 인해 잠을 자도 피곤한 것도 그 한 예이다. 나의 경우에는 최근 소화 기관이 특히 예전 같지 않다. 저녁으로 고기를 즐기거나 파스타 같은 면 종류의 음식을 먹는 날이면 소화가 되지 않아 밤늦게까지 몸을 들척인다. 최근 그 심각성은 더해서 저녁에 항상 즐기던 맥주와 간단한 주전부리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의사의 말로는 찬 음식이 위 활동을 더디게 하여 소화 기능을 낮춘다고 한다.)
10-20대까지 성장기에는 내가 먹었던 모든 것이 뼈와 살 그리고 피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작은 고깃덩어리 조차 소화를 하려면 오랜 시간 서있거나 움직여야 위를 통과해 대장으로 가는 것 같다. 이제는 예전처럼 많이 먹지 말라고 몸이 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운동을 하는 한 친구도 그랬다. 나이가 들면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기초 대사량이 줄어드니 전보다 몸이 더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살이 찌게 된다고. 즉, 굳이 많이 먹지 않아도 되는 나이인 것이다. 나의 몸은 그렇게 나에게 신호를 주고 있었다.
최근 코로나로 인하여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확실히 움직임도 줄고 체중도 부쩍 늘어나게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을 줄이는 것뿐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배고픔을 잘 못 견딘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위장병을 앓았는데, 그때 속 쓰림을 자주 겪었다. 나는 배가 고플 때마다 일정 수준의 속 쓰림을 경험하는데, 이 느낌이 싫어 먹을 것을 찾는다. 그러나 계속되는 소화불량과 체중 증가로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배고픔을 즐겨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항상 그렇듯 처음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배가 불러 소화 안 되는 괴로움 보다, 속이 비어져 약간의 속 쓰림을 느끼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속이 비워질 때 속 쓰림은 예전만큼 길지 않았고, 약간의 물과 100ml 우유 정도면 속 쓰림이 금방 지나가기도 했다. 속이 비워지면 마치 늘어났던 위장도 원래 크기를 되찾아 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로 인해 자연히 몸도 조금 더 가벼워졌고, 힘들게 벨트를 채우는 일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속을 비워가던 중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비움을 즐기게 되었다. 모든 것이 소화되어 위장에 최소한의 음식만 남아 있는 상태, 그 상태가 포만감보다 나에게 더 좋은 기분을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다이어트라는 것이 이렇게 비움을 즐기지 않고서는 궁극적으로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속이 비워지는 그때를 기다리고, 점점 점 조금씩 비워져 가는 그때의 기분을 충분히 즐겨야 하는 것이다. 때론 무언가를 채우는 것보다는 비우는 것이 몸과 정신을 맑게 한다. 그리고 나이가 먹을수록 뭔가 계속 채우는 것은 뭔가 순리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몸이 그것을 말해 준다.
PS. 속을 비우는 걱은 마치 방을 청소하는 것과 우사하다. 방안에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비워내면 빈 공간이 주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위장을 인위적으로 비워 내려면 많은 고통과 비용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야하므로, 적게 채우고 비워질 때까지 기다리고 배고픔의 순간을 두려움과 고통이 아닌 기대감과 즐거움으로 보내야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