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삶
진로와 관련하여 흔히 하는 고민이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잘하는 일을 할 것인가? 물론 가능하다면 좋아하면서도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잘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거기에 좋아하면서 잘하는 일을 찾는 것은 평범한 동굴에서 금광을 찾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나는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저 대학에 들어간 후부터 막연하게 전공을 살리고 싶다는 소망만 있었을 뿐이었다. 전공에 대한 적성 이런 것 보다도 그동안 배운 것이 아까워서였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공부만 열심히 하나가 졸업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당시 친구들은 졸업 전에 대부분은 직장을 구했는지만 나는 갈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었다. 아니, 갈길조차 알지 못했다. 그전까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는 잘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처음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나는 어떻게 자랐는지.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나는 왜 이 회사에 지원했는지. 이 업무를 잘할 거라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런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면서 조금씩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100여 장 넘게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낙방에 조금씩 거짓말만 늘게 되었고, 어찌어찌하여 회사에 입사를 하고 직업이란 것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직장에서 적응이란 것을 잘했을 리가 없었다. 첫 직장의 동료와 선배 중에는 나름 목표를 갖고 입사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전공도 나름 살린 분들도 있었고, 취미를 특기로 발전시킨 케이스도 있었다. 입사 전부터 어느 정도 지금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갖추었던 것이었다. 그들과 달랐던 나는 언젠가 나이가 들었을 때 그들과 경쟁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옛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감을 잃었고 시간이 지나 이직이란 것을 했다.
이직을 하면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했다. 그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흥미는 있었기에 그 호기심을 따라 직업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이직을 하게 되고 나이를 먹게 되었다. 그러다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팀장이라는 자리에도 앉게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이 없다 보니 어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경험과 지식은 있었지만, 내가 맡은 업무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함께 일하는 팀원들보다 부족했다. 그때 리더십도 흔들리고, 직장 내 위치도 흔들리고, 내 마음도 흔들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여기저기 떠돌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만의 기준이란 것이 하나 생겼다는 점이다. 직업과 관련하여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주는 조언, 예컨대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해라가 아닌 나만의 기준과 생각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사람의 말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만의 생각이 생기면 선택 후 마음의 동요가 덜하다. 내 선택을 후회하거나 잘못된 선택과 결과로 인해 남을 탓할 일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는 나름 오랜 경험과 나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축적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요즘 가끔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생각할 때가 많다. 이 질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나의 고민을 바탕으로 나온 답은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피하자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는 동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즉 갑/을 관계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다. 물론 을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관계는 갑/을로 나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가능한 을의 입장에서 하는 일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을이 되더라고 실수를 최소화해서 갑은 아니더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는 관계를 정립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직장이란 곳이 돈을 받고 다니는 곳이므로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이 더 옳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일로 하다 보면 내가 평생에 걸쳐 좋아하던 일이 싫어질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아침잠을 깨우는 모닝벨 알람으로 설정 해 놓으면 싫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잘하는 일을 일로 하다 보면 자칫 노예처럼 일할 수 있다. 회사란 곳이 잘하는 사람에게 일이 몰리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고, 잘하는 것은 조금 더 역량을 키워 퇴직 후에 프리랜서로 일할 때 활용하면 좋겠다는 것이 요즘 내 생각이다. 직장에서 하기 싫은 일만 줄여도 큰 불만 없이 회사를 다닐 수 있다. 그리고 그 정도만 되더라도 퇴근 후 우울한 마음은 좀 덜 할 것이다. 그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