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3)

by 노용기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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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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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마지막 3편입니다.


가사노동을 분업하자.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을 최대한 나누어야 한다.

집안일을 미루고 물건들을 줄였다면 가사 노동에 들이는 시간을 상당수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일 중에는 미루거나 줄이기 어려운 몇 가지 일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는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일도 있고, 외부활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도 있다. 바로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먹는 것과 입는 것에 관련된 일이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이다. 우리의 삶을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결국 입고, 먹고, 자는 것이다. 그 어떤 단순하고 심오한 이론보다 인간의 삶을 아주 간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 바로 의식주가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의 삶에서 의식주 외에는 있으면 좋은 것들일 뿐이다.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도 모든 것은 다 버려도 이 세 가지는 결국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식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집안일을 나누어야 한다. 독신이 아니라면, 집안일에 모든 노동력을 활용해서 집안일을 분담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세상이 바뀌어도 가사분담 시간은 거의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이 가사노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 모두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가사노동이 한 사람에게 쏠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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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의 분배, 무엇부터 할 것인가?


우선 가사노동을 분배하기 위해 쉬운 것부터 실천해보자.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는 남편과 자신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도 정리하게 시키려면 큰 소리 몇 번 질러야 하는 아이들은 일단 잠시 뒤로 미뤄두자. 그보다 군말 없이 묵묵히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있는 가전제품부터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가전제품은 가사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준다. 그중에서도 세탁기는 17킬로그램에 달하는 빨래를 세탁하는 시간을 4시간에서 41분으로 거의 6분의 1로 수준으로 줄여주었다. [1] 또한 식기 세척기는 어떠한가? 4인 가족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면 보통 20분에서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식기 세척기가 있으면 짧게는 5분 정도면 설거지를 마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매일 저녁마다 식사 후 설거지는 참 골칫거리였다. 아내가 퇴근 후 요리를 하면 자연히 설거지는 나의 몫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쉽게 몸이 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바로 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됐다. 그때 생각한 것이 바로 식기세척기였다. 식기세척기를 구입 한 이후 우리 부부는 더 이상 설거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음식물만 쓱 닦아 낸 후 식기세척기에 넣어두면 식기세척기가 알아서 설거지를 다 해 주기 때문이다. 설거지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온화하게 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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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은 후 나는 시간을 벌어주는 전자제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사실 세탁기처럼 우리가 인지를 잘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위에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아껴주는 전자제품이 의외로 많다. 전기밥솥만 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밥을 지으려면 불을 때우고 그 옆에서 계속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쌀만 씻어 전기밥솥에 넣어주면 알아서 요리를 마쳐준다. 밥 짓는데 드는 시간은 고작 5분 남짓이다.


이러한 세탁기, 식기 세척기, 전기밥솥 외에도 시간 절약 가전제품에는 몇 가지가 더 있다. 몇 년 전 손위 동서인 형님께서 우리 집에 전기오븐을 선물로 주신 적이 있다. 나는 당시 가스 오븐은 봤어도 전기오븐은 처음 보았는데, 실제 사용해 보니 요리할 때 매우 요긴한 제품이었다. 특히 요리할 때 기름이 튀거나 냄새가 나는 돼지고기, 닭고기 그리고 생선 등에는 적격인 제품이었다. 고기를 전기오븐에 넣고 시간만 맞춰주면 기름기가 적절하게 빠진 담백한 요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기가 탈까 봐 계속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되어 요리 시간을 상당히 줄여 주었다. 요리시간이 줄어든 덕분에 그 시간에 아이들과 놀거나 책을 보는 것도 가능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아직 갖추지 못 한가 전 제품에는 로봇청소기가 있다. 기존에 사용하던 진공청소기가 고장이 난 적이 있었는데, 아직은 쓸만하여 고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수리비용이 많이 나와한 번 더 고장이 난다면 로봇청소기 구입을 고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청소 역시 아무리 미루고 짐을 줄여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가전제품을 통해 가사 노동 시간을 줄 일 수 있다면, 비록 처음 구매할 때 비용이 들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전히 집안일에 완벽을 기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제품 대신 직접 하는 경우도 많다. 빨래도 옷감이 상할까 봐 손빨래로 하고, 식기세척기는 왠지 깨끗하게 안 씻길 것 같아 직접 설거지를 하며, 청소 역시 무릎을 땅에 대고 손으로 직접 박박 문질러야 성에 차는 경우 말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이기에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얘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집안일을 너무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집안일보다 우리 삶에는 중요한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사노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내가 해야 할 가사노동을 최대한 가전제품과 나누어하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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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지 않고 아이와 가사 분담하기


이제 가사 노동을 나눌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남았다. 바로 가족들과 가사를 분담하는 일이다 가전제품은 일을 시켜도 토 달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나 남편과 아이들은 다르다. 아내의 경우 차라리 이들에게 일을 시킬 바에 내가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사실 대놓고 집안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강제로 시킬 방법은 없다. 그러나 각자 집안일을 서로 나누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데 실천이 잘 안 되는 경우라면 상황을 개선시킬 방법은 있다. 바로 사람의 심리 중에서도 동기(motivation)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동기부여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 부여 방법이다. 외재적으로 동기 부여 방법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성과급이다. 성과급은 사람들이 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주는 급여이다. 최근 성과급이 사람들의 창의성의 증진시키는 데는 오히려 해가 된다는 연구가 많다. 그러나 여전히 성과급은 단순 노동에는 효과가 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2]


내재적 동기 부여 방법은 눈에 보이는 보상을 제공하는 외재적 동기 부여 방법과 달리 사람들의 마음 건드린다. 즉, 상대방 스스로 어떠한 일을 스스로 하고 싶게 하거나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무런 금전적 보상도 없지만 오지에서 열정을 다해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재적 동기가 충만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가사노동을 분담하기 위해 어떻게 동기부여 방법을 적용해야 할까? 우선 상대적으로 쉬운 아이들부터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보통 외재적 동기에 의해 잘 움직이는 편이다. 우리 집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우리 부부는 보통 주말에 한 번 대청소를 한다. 집안 정리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이불도 턴다. 그때 아이들은 집안 정리를 한다. 사실 집안 정리 중 90% 이상이 자신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과 책들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집안 정리를 마쳐야 아내가 쉽게 청소기를 돌릴 수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자기들이 어질러 놓은 것도 정리를 잘 안 하려 들었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마치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여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우리 집은 TV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이렇게 가끔씩 만화영화를 보여 준다고 하면 아이들이 반응한다.


아이들 중에는 만화영화로도 잘 안 움직이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 이미 만화영화를 많이 봤다면, 잠깐 안 보는 것쯤은 참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만화영화에 흥미가 없는 경우일 수도 있겠다. 이럴 경우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외재적 보상으로 제공하면서 집안일을 나누면 된다. 분명 한 두 개 정도는 아이들이 열광하며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점을 제안하면 아이들도 집안일에 동참하며 자기 몫을 조금씩 감당해 나갈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시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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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지 않고 남편과 가사 분담하기


이번엔 어른, 그중에서도 통계적으로 가사 노동 참여 시간이 적은 남편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아이들과 달리 남편들은 외재적 보상에 움직일 확률이 아이들보다 낮다. 대부분 이미 직장 생활로 돈을 벌고 있고, 자신들이 가지고 싶은 것들은 적절한 범위 내에서 스스로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들에게는 내재적 동기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내재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으로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일을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 있다. 대게 집안일은 잘 해도 인정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아내들은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남편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고 간다.


처음에 집안일을 해주었을 땐 고마워하더니, 이제는 당연하게 느끼고, 가끔 피곤해서 하지 않을 때는 불평하고 바가지만 긁는다.”


사실 남편들도 아내들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지 않지만, 아내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면 금전적 보상과 승진이라는 사회적 지위 상승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집안일을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일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의미를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집안일은 왜 나누어서 해야 하는가? 나는 본질적으로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면 불평불만이 생길 것이고, 이는 곧 집안의 불화로 번진다. 하지만 반대로 적절하게 집안일을 분배한다면 서로서로 여유가 생겨 대화 시간도 늘어나고 저절로 집안에 평화가 찾아온다. 또한 아빠가 먼저 나서서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한다면 아이들 교육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실제 SBS 스페셜에서는 아직 성에 대한 역할 관념이 정해 지지 않은 7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성 역할 고정관념이 아이의 창의적인 사고 개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 역할을 균형 있게 키워줄 때 아이들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면서 훨씬 더 창의적이고 건강한 사회성을 가진 미래인재로 성장할 수 있음을 실제 사례를 통해 제시했다. [3]


즉 집안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아빠들의 가사 참여는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이 점을 알게 된 후부터는 집에서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집안일에 대해 의미와 가치를 깨달은 후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해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지금 하려고 했는데, 시키니까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경험 말이다. 집안일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남편들에게 계속 주입이 되면, 어느 순간 집안일에 참여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는 것이 있다. 티핑포인트는 어떠한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다가 한 순간에 갑자기 변화되는 점을 뜻한다. [4]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변하지는 않는다. 메시지가 주입되고, 그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 메시지에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일이 점점 늘어나면 어느 순간 변화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그때를 조금만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내재적 동기만 제대로 형성되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대게 이 시간을 인내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앞서 소개한 가전제품을 이용하거나 아이들에게 외재적 동기를 부여하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가사 노동을 나누며 때를 기다리자. 쉽지는 않지만 매일 집안 일로 다투고 화내는 것보다는 분명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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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집은 더 이상 노동의 장소가 아니다. 집은 당신이 충분한 쉼을 얻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곳이다. 나는 이 생각만 제대로 지켜도 가사노동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조금씩 실천해 나갈 수 있다. 이제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오히려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고,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해 보자. 이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하겠다고 하는 마음과 가족들의 공감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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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장하준, 부키

[2] 드라이브, 다니엘 핑크, 청림 출판

[3]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392524&plink=ORI&cooper=NAVER

[4] 티핑 포인트, 말콤 글래드웰,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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