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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휴식의 공간이다. 그리고 집은 치유의 공간이다.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듯이 집에서도 최선을 다해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무쇠가 아니기에 적절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병이 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적절히 휴식을 취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감시의 눈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여기저기서 나를 찾는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 화장실 가는 시간, 그리고 흡연을 하는 경우 동료들과 잠시 담배를 피우는 시간 외에는 잠시도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와서도 잠시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지 못하고 못한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앞서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집안일을 최대한 미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조금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만 가는 먼지와 여기저기 흩어진 물건들 때문에 집안일을 미루는데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집안일을 미루더라도 쾌적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육아휴직 후 한동안 집안일을 미루고 아이들과 놀러 다닐 때에 일이다. 아이들과 놀러 다니고, 때로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보거나 영화를 보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집은 점차 깨끗했던 옛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아내도 점점 집안일에 소홀이 한다며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조금씩 집안일을 미루다 보니 집안에 먼지 쌓이는 것을 보다 못한 아내가 청소기를 돌리는 일도 자주 발생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하면서도 집안일을 적게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버리기로 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은 집안일을 늘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만 알았지 정리는 하지 않았다. 결국 장난감들은 내가 다 정리를 해야 했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정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장난감을 버려야 할 첫 번째 타깃으로 삼았다. 망가진 장난감,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들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아파트 분리수거하는 날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버릴 장난감을 모아 놓은 상자를 아이에게 들킨 것이다. 몰래 버리려고 했는데 호기심 많은 첫째 딸에게 발각되었다. 게다가 아내 역시 저거 버리고 다른 장난감 사줄 거 아니면 버리지 말라고 한다. 육아휴직으로 돈도 못 버는데 새 장난감을 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장난감들을 다시 원위치시켰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안일을 줄이지 못하면 자유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에 싱크대로 시야를 돌렸다. 싱크대에는 오랫동안 쓰지 않는 냄비, 그릇, 접시, 수저 등이 가득했다. 나는 예전부터 안 쓰는 것은 버렸으면 좋겠다고 아내에게 말하였으나, 살림할 거 아니면 내버려 두라는 말에 그냥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육아휴직 후에는 내가 요리와 설거지 모두를 하고 있으니 이제는 내 관리 구역 안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싱크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버릴 것이 상당히 많았다. 집에 식구는 네 명인데, 수저가 50개는 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사 온 접시들이 싱크대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1년 넘게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다. 이번에도 아내와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물건 버리는 것을 강행했다. 그렇게 나는 틈만 나면 조금씩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여 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자 점차 집안일이 줄기 시작했다. 집안에 물건이 줄어드니 따로 정리할 필요도 없어지고 청소도 간편해졌다. 물건 찾는 것도 쉬워져 물건 찾을 때 짜증내는 일도 줄었다.
집은 창고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집을 창고처럼 쓴다.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물건들을 이곳저곳에 쌓아둔다. 막상 버리고 나면, 갑자기 쓸 일이 생겨 불편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버리는 것을 어려워한다.
최근 어떤 집을 방문했었다. 아담한 규모의 집이었다. 그런데 집의 규모에 비해 가구와 책 그리고 식기류가 너무 많았다. 거실의 반을 큰 식탁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구보다 2배나 많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집안 한쪽 벽면은 커다란 책장이 놓여 있었고, 책장 안에는 각종 전집과 위인전들이 빼곡했다. 그분은 집이 좁아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갔으면 하셨다. 그래서 나는 서울 집값이 비싸니 집을 늘리시는 것보다 짐을 줄이시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안 그래도 집 정리를 한 번 했고, 더 이상 버릴게 없다고 하셨다.
집을 방문해보면 각 사람들마다 취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여행지에서 사 온 인형이나 기념품들을 집안 곳곳에 전시 해 놓았다. 그리고 거실 한 구석에 장식장이 있어 그곳에 화려한 접시를 놓아두거나 각종 희귀 술병을 모아 놓은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에게도 몇 가지 취향이 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내 방 한 켠에는 책이 가득하다. 그동안 이사하면서 70~80%를 버렸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수량의 책들이 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책들 중에는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도 많다. 읽는 속도보다 책 사는 속도가 앞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취향들로 인하여 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이렇게 취향이 담긴 물건들은 쉽게 버리기가 어렵다. 그 물건들이 나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렵게 구한 희귀 제품은 더더욱 손에서 놓기 어렵다. 비록 몇 년간 사용하지 않고 집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도 말이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집에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한 채 살아간다. 최소한의 가재도구와 의복으로 살아가며 삶의 터전인 집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은 미니멀리즘, 즉 최소한의 요소만을 사용하여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는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를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 및 문화 사조가 최근에 들어와서는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는 뉴스를 통해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한 가정주부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녀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집안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고 살았다고 했다. 그래서 작심을 하고 안 쓰는 것부터 하나 둘 버리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렇게 조금씩 집 안에 물건들을 정리해나가자 자유시간이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전에는 집에 와서도 또 일해야 해서 힘들고 짜증 났는데, 이제는 집에 들어오면 바로 쉴 수 있어 좋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집안의 물건을 버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을 사놓고 제대로 쓰지도 않은 채 버리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까지 들기 때문이다. 또한 물건을 버리고 나서 갑자기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과 물건을 버리고 난 후 텅 빈 공간을 바라볼 때의 허전함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조금씩 짐을 줄여 나가야 한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는 사람들만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하루 집안 청소에 매일 1시간 이상 쓰고 있다면 어느 정도 결단이 필요하다. 나 역시 물건을 버리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집안일에 치여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다음의 몇 가지를 실천하였다.
내 경우 우선 안 쓰는 물건을 한 곳에 모아 두었다. 막상 물건을 버리려고 해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갈 경우 마음이 쓰라린 경우가 있다. 그동안 추억이 담긴 정든 물건도 있고, 또 언젠가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일단 다용도실 창고에 넣어둔다. 그리고 몇 달 심지어 1년이 지나도 그 물건들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과감하게 버린다. 1년이 지나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앞으로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또한 혹 사용할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 공간에 대한 보관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버리는 것이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정말 필요하다면 그때 가서 다시 구입하면 된다. 그런데 막상 필요해도 안 사게 된다. 어차피 잘 사용하지 않을 걸 경험으로 알고, 사도 다시 버릴 걸 생각하면 다시 안 사게 된다.
물건을 버리기 전에 나누어 줄 곳이 있으면 더 쉽게 정리를 할 수 있다. 즉, 누군가에게 증여 또는 기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버림으로써 드는 죄책감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특히 아이들이 놀았던 장난감이나 책들은 주위에서도 원하는 사람이 많으므로 그냥 버리기보다는 나누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책 역시, 최근에는 중고 서점들이 많으므로 무조건 버리기보다는 중고서점에 판매하는 것이 환경도 지키면서 약간의 수입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짐을 정리하다 보면, 집안일이 훨씬 쉬워진다. 대게 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집 정리를 먼저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할 짐이 줄어들면 청소시간이 반 이상 줄어든다. 실제 나도 이런 과정을 통하여 매일 2~3시간씩 했던 집안일을 2~3일에 한 번씩 1시간 정도로 줄였다.
나는 몇 주전 ‘입관체험’이란 걸 했다. 살아 있을 때 죽음을 미리 체험해 본 것이다. 관에 들어가지 전에 까슬까슬한 삼베옷을 입고 천천히 관에 누었다. 관에 눕자 주위 사람들이 천천히 관 뚜껑을 닫았다. 나는 그때 인생의 결말을 보았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없다는 것을, 결국 몸을 뒤척일 수도 없는 좁은 공간이 내가 마지막으로 머물게 될 공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수없이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실제 관 안에 눕고 보니 그 사실이 절실히 느껴졌다.
사실 관에서 죽는 것도 이제 소수이지 않나 싶다. 대부분 화장터로 향해 한 줌의 재가 되어 결국 작은 용기 안에 담기니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의 결말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은 더 가지라고, 그래야 더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 행복은 아주 잠시 뿐이다. 오히려 그 물질에 짓눌려 사는 날이 더 많다. 그리고 그것들을 깨끗이 닦고, 정리하기 위해 우리의 소중한 시간의 상당 부분을 사용한다. 뭔가 잘 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에 따르면 물건의 소유가 늘어날수록 행복 지수가 오히려 낮아진다고 한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1970년 독일인들은 평균 6,000개의 물건을 소유했다. 그리고 2011년 독일인들은 평균 10,000개의 물건을 소유했다. 그런데 이렇게 소유가 늘어났지만 행복지수는 오히려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 불필요한 물건들에 매일 조금씩 시간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물건들을 정리하고 청소하는데 나의 소중한 여가 시간의 상당 부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이제 시간 날 때마다 안 쓰는 물건들은 하나씩 집안 한쪽 구석에 정리해 보자.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거나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자.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으나, 그것이 진정 나를 자유롭게 하는 길임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가사노동으로부터의 자유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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