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1)

by 노용기

가사노동의 현실


퓰리처 상을 수상한 워싱턴 포스트의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브리짓 슐트는 그녀의 저서 ‘타임 푸어’에서 여성들의 가사 노동의 수준이 1950년대와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녀는 여전히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더 많은 가사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고 했다. 기자로서 그녀는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회사 일과 함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기, 가족들 식사 챙기기, 아이들 숙제 봐주기 외에도 집안 청소, 빨래, 설거지, 공과금 납부, 명절을 챙기는 것 모두 그녀의 몫이라고 했다. [1]


이것은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부부들의 주중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이 평균 2시간 16분 남성이 24분으로 약 5배 정도 차이가 났다. 주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말의 경우 여성의 가사 노동시간은 2시간 35분인 반면 남성의 경우 43분으로 이 역시 약 4배 정도 차이가 났다. 그리고 맞벌이는 하는 부부의 경우 여성의 수입이 남성보다 높다 하더라도 남성의 가사 참여율이 크게 향상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성의 수입이 늘어도 남성의 가사 참여가 늘기보다는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


최근 나는 30대 중반의 가정주부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한 엄마는 하루 종일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다 보면 정작 자기만의 시간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른 엄마들도 맞장구를 치며 수긍을 하면서도 별다른 방책이 없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하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분들의 말에 모두 공감이 되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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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와 육아를 하다 보면 '나를 위한 시간'이 없다.


요즘은 조금 나아졌지만, 과거에는 회사일보다 집안일의 노동시간과 가치에 대해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도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남편들은 아내에게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도대체 뭘 한 거야?”라며 대사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지금은 부끄러운 말이지만, 사실 나 역시도 육아휴직을 하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기 전까지는 가사노동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맞벌이를 하다가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휴직을 하면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는 시간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거 할 시간이 없다며 차일피일 미루었다. 나 역시 회사에서 처음으로 남자로서 육아휴직을 할 때 직장 동료들이 집에서 공부하면서 이직 준비하려고 하느냐면서 농담 삼아 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실제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어보니 할 일이 적지 않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출근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보내고 나면 집안 청소와 빨래 그리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그리고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 후 저녁 식사를 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오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와서 아이들 샤워를 시키면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온다. 다시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책을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된다. 육아휴직 후 계속 이렇게 살다 보니 도통 나만을 위한 시간이 전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동안 작심을 하고 어떻게든 나만을 위한 시간을 만들어 보고자 새벽 4시에 일어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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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보수 노동의 현실과 가사로봇의 등장


사실 가사와 육아로 인한 시간 부족은 일부 국가에 한정된 문제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전 세계에서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적은 나라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경우에도 엄마들은 여전히 시간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고 한다. 네덜란드 엄마들의 약 75%는 시간선택제 근무를 통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상당수 줄였다. 이로 인하여 네덜란드 엄마들은 다른 어떤 나라의 엄마들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큰 이점이 되지 못했다. 바로 가사와 육아라는 무보수 노동에 들이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8시간을 일하고 때론 야근까지 하면서 가사와 육아를 하는 우리나라 엄마들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여전히 네덜란드의 엄마들도 자기만의 여가가 전혀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최근 나는 CNN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보았다. 기사 제목은 ‘엘론 머스크가 가사 로봇을 만든다’이다. (원제목: Elon Musk wants to build a robotthat does your house work.) 기사에 따르면 바로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CEO이자 민간 우주 항공기 개발사 스페이스 X의 대표인 엘론 머스크가 가사를 도울 수 있는 가사 도우미 로봇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3] 어린 시절 SF영화에서 보던 집안일을 해주는 가사도우미 로봇의 등장도 이제 머지않아 보인다. 사실 영화에서는 로봇이 인간과 친구처럼 지내다가도 갑자기 해킹을 당해 갑자기 돌변하여 인간을 해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가사도우미 로봇의 등장이 다소 불안한 면도 있다. 그러나 세탁기의 등장으로 인류가 빨래에서 자유로워지고 자유시간이 늘어난 것을 고려해 볼 때, 가사도우미의 등장 역시 어느 정도 인류를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가사로봇이 개발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기술개발을 통한 신제품이 어느 순간 해성처럼 등장할 수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기술적 장벽을 만나 한 없이 연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개발이 완료되고 상용화가 가능해도 기술개발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 제도로 인하여 실제 혜택을 받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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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그렇다면 가사도우미 로봇이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일을 마치고 삶의 영역으로 왔을 때 가사노동으로부터 최대한 해방되어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기에는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가사 노동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기 위해 변화를 시도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첫째, 가사노동을 최대한 미루어야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집을 쉬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집에 왔는데, 집에서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집에서 조차 충전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잠자는 시간 외에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만 하며 보내야 한다.


이점에 있어 나와 아내는 견해가 달랐기에 결혼 초기에 다소 의견 충돌이 있었다. 아내는 집에 오면 일단 청소기와 세탁기부터 돌렸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청소기를 돌려 집안에 모든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그날 입었던 옷은 세탁기로 돌려야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나는 집에 오면 좀 쉬자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 먼지가 많은데 그리고 빨래가 저렇게 쌓여 있는데 어떻게 편히 쉴 수 있냐고 하였다. 아내 입장에서 나는 집안이 조금 더러워도 편히 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내 입장에서 아내는 집안에 먼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청소 습관은 잘 바뀌는 것 같지 않다. 지인 중에 가사노동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분 역시 나의 아내처럼 회사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가사에 몰입한다. 집 청소하기, 빨래하기, 저녁식사 준비하기, 설거지 등 하기 등 모든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 내려고 한다. 또한 가사를 어느 정도 마치면 자녀들의 숙제를 봐주고, 내일 학교에 가지고 갈 준비물을 챙겨주며 저녁시간 대부분을 보낸다. 하루는 그분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가보았다. 정말 집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 모든 가재도구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음식은 정갈했으며, 모든 음식들은 밖에서 사 온 것 없이 모두 집에서 만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대화를 하면서 그분은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청소하고 저녁 식사 준비할 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가 있어요?”

“왜 아이들에게 화를 내시는데요?”

“집안일할 때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잘 지내고 있어야 되는데 말도 안 듣고 서로 다투니까 그러는 거 같아요.”

“그럼 청소 같은 집안일은 뒤로 미루고 아이들을 보면 안 되나요?”

“집이 항상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야지, 안 그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비단 그분 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난 상당수의 맞벌이 부부나 집에서 가사만 하는 가정주부들도 집 청소 및 정리하는데 하루에 두세 시간씩 쓰면서 자기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분들께도 집안일을 뒤로 미루고 좀 더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고 하였지만, 수긍을 하는 듯하면서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은 어려워하는 듯했다.


나 역시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집 청소와 정리로 보낸 적이 있었다. 바로 육아휴직 초기이다. 당시에 아이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면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책을 읽어 주곤 하였다. 그때 아이들은 일단 레고와 같은 블록 상자를 바닥에 쏟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럼 블록이 거실 곳곳에 어질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 저 책 꺼내 보고는 제자리에 다시 꽂지 않고 모두 바닥이 널부러 놓은 채 등교하러 갔다. 그 모든 것을 정리하고 치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한 동안 나는 집 청소와 정리를 즐겼다. 그동안 마음이 있어도 몸이 피곤해서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했으니 맘 놓고 집안일을 하며 아내를 집안일로부터 쉴 수 있게 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그러나 집 청소와 정리에만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 걸리고 아무리 치워도 아이들이 와서 한 몇 십분 놀다 보면 다시 어질러지니 조금씩 허무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했는데, 집안일을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육아휴직 후 몇 달간 그렇게 하루에 두세 시간 이상을 집안 정리와 집 청소하는데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청소만 하며 보내다가는 소중한 육아휴직이 끝나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안일을 하나둘씩 미루기 시작했다. 매일 돌리던 청소기는 이틀 또는 삼일 걸러 한 번씩 돌렸다. 대신 청소하는 시간을 줄이고 육아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전에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집안일을 했다면, 집안일을 미루고 아이들과 함께 나가 놀았다. 시내에 나가 뮤지컬도 보고, 호수 공원에 가서 자전거도 타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뷔페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다. 그랬더니 삶이 전보다 더 좋아졌다. 뭔가 허무감보다는 중요한 것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격적으로 집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도 모두 상표가 보이도록 맞춰놓고, 책장에 먼지 하나 없이 집 청소와 정리를 완벽하게 해 놓는 사람들 말이다. 집안일을 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청소나 설거지를 할 때 내 마음도 깨끗이 비워지며 힐링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집안일은 유익이 된다. 그러나 집안일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집이 항상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때론 집안일을 미룰 필요가 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 공부를 할 때 꼭 책상 정리를 한 다음에야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물론 책상 정리가 되어 있으면 공부할 마음이 생기고, 공부에 집중이 더 잘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책상 정리하다가 시간이 다가서 정작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게 된 경험. 그리고 책상 정리하다가 지쳐서 정작 공부는 손도 못 대고 잠들어 버린 경험. 그러다가 엄마에게 혼난 경험 말이다.


우리는 가끔 뭐가 더 중요한 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중요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집안 일도 마찬가지이다. 가사에 치여 정작 가족들과 대화할 시간을 놓치기도 하고, 때론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또한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 후 집안일을 하면서도 정작 나를 돌아 볼 잠깐의 시간 조차 가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혹시 퇴근 후 책 한 권 읽을 시간, 시 한 편 볼 시간, 음악 한 곡 들을 시간조차 없다면, 집안일은 잠시 뒤로 미루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자. 매일 청소기를 돌려야 마음이 안정되는 사람에게 집안일을 미루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날 해야 할 일을 그 날 꼭 마쳐야만 하는 강박에 쌓인 완벽주의자에게는 더더욱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리고 조금만 참아보자. 책상 정리는 공부 다 하고 해도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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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푸어, 브리짓 슐트, 더퀘스트

[2]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6/06/21/20160621002909.html?OutUrl=naver

[3] http://money.cnn.com/2016/06/21/technology/elon-musk-robot-artificial-intelligence/index.html




가사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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